2009.10 |
[환경]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관리자(2009-10-09 16:50:31)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집짓기, 삶의 철학이 담긴 창조물
며칠 전 귀농한 젊은 부부가 우리 집에 들렀는데 새댁 눈길이 다르다. 문하나, 벽장하나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물었더니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집터를 발견했단다. 거의 계약 직전이라면서. “설계도까지 그렸다니까요!”그러면서 자기들이 짓고 싶은 집 이야기를 들려준다.지금 꿈에 부풀어 그리는 집 그림이 실제 집으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했으니 언젠가 맨땅이었던 곳에 그이들의 보금자리가 생겨나리라. 머릿속 그림이 뼈와 살을 가진 집으로.무에서 유로, 집이라는 창조물이 갖는 철학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아파트에서살던 우리 식구가 귀농해 시골 빈집을 빌려 살기를 4년. 그 사이 터를 구하고 준비기간만 2년 끝에 집을 지었다. 그때만 해도집짓기는 모두 손수 할 자신이 없어, 부분부분 전문일꾼의 손을빌려가며 지었다. 뒤이어 남편이 손수 광을 혼자 지었고. 몇 년뒤 큰애와 함께 아래채를 지어 지금의 우리 집이 생겼다.이렇게 우리가 집을 지어보고 남이 집짓는 걸 보면서, 집이야말로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스며있다는걸 알았다. 말로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 보아도 보이지 않던 한사람의 내면에 깔린 욕구가 기초 하나에서부터 문짝의 손잡이하나에까지 드러난다. 콘크리트 집을 짓는 사람과 흙집을 짓는사람이 가진 문화와 욕구가 같을 수 없으리라. 또 돈을 주고 다지은 집을 사는 사람과 어찌됐든 자기 손으로 뚝딱뚝딱 집을 짓는 사람이 같을 수 없다. 시골서 산 덕에 한 번도 건축 일을 해본 적 없던 사람도 손수 집을 짓는 걸 여러 번 지켜봤다. 전문일꾼이 아닌 보통 사람이 손수 지은 집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자기 나름대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살리려고 한다. 그 결과는 좋게 말하면 독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설프다. 전문가가달리 전문가인가. 집 하나에도 그동안 쌓인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전문 영역이 있는데, 주먹구구로 손수 짓다보니, 몰라서 못하고 알고도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다가 후회하는 일이 없겠는가.하지만 나는 결혼해 가정을 꾸린 젊은이라면 부부가 힘을 모아 한번 집을 지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 사람 인생에서 진정한 창조물이 몇 개나 되겠나. 자식, 집…. 자급자족 가운데 손수자기가 살 집을 짓는 일. 이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몇 안 되는 창조활동이라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세우는 일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자식을 기르며 살 수 있는.집터는 인연이다집을 지으려면 먼저 터가 있어야 한다. 한데 시골서 터를구하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도시와 달라 부동산거래소가 활발하게 움직이거나 매물이 많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입에서 입으로 소개를 받아야 할 때가 많다. 또 맨땅은 집을 짓기에 적당한 터인지, 아닌지 조차 불분명하다. 시골서 집터를 구하는 일은 그래서 신랑감을 구하는 일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전망 좋고 햇살 좋고 게다가 땅값마저 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 내 조건에 맞는 땅을 찾는 일은,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인물에 성격까지 좋은 사람을 찾는 일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가리고 따져서 고르고 골라도 막상 결혼해 살아보면 엉뚱한 사람이더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집터 역시 마찬가지다.사기 전에는 몰랐던 흠이 하나둘 밝혀질 밖에.그 흠을 보듬어 안고 터에 맞는 집을 짓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집터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집터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무얼까? 나는‘물’이라고 생각한다. 수돗물을 먹는 것과 달리 시골에서 살아보면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래서 나는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진 집이 가장 부럽다. 그 다음이 지하수인데,이건 잘 생각해 보는 게 좋다. 관정이란 자연스런 물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밖에 다른 건 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전망 좋은 터는 바람이 세기 쉽고, 햇살 좋은 터는 넓기가 어렵고, 좋은 땅은 비싸기 마련이다. 전기와 전화를 끌어들이기 어려운 산 속에 집을 짓는 사람을 보았는데, 태양광으로 발전을 하고 손 전화를쓰면 되더라. 하지만 물이 마땅치 않다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시골에서는 인공보다아직은 자연의 힘이 더 크다는 걸 잊지 말자.자연에서 집을 새로 지으려면 그 터를 닦은 뒤 일 년 이상 관찰한 뒤 집을 짓는 게좋다. 장마도 겪고, 겨울에 땅이 얼었다가 녹는 것도 겪어 봐야 한다. 집에서 가장중요한 건 기초니까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반석은 아니더라도 터를 닦고 일 년 정도 겪어보면 거기가 집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옹골찬 집을 짓고 싶다면 욕심을 버려야그 다음으로 설계에 들어가야 한다. 집 설계를 집주인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모양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지으려면 집을 한 평 늘이는데 그만큼 등짐을 질 일이 늘어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큰집을 좋아하지만, 자연에서 단독으로 집을 짓고 살려면 집이 클수록 애를 먹는다. 게다가 우리 동네처럼 일년에 반이 겨울인 산골에서는 난방 문제가 장난이 아니다. 시골집이라는 게 허허벌판에 서있는 집이라 아무리 단열을 한다고 해도 사방으로 열을 뺏길 수밖에 없다.그래서 나는 집은 작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욕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버리고 버려서 되도록 작게. 작지만 옹골차게.생태건축을 하면 더욱 그렇다. 흙집에서 살아보니 집이살아있는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벽이나 나무기둥을 벌레가파먹지를 않나, 비어놓은 방에 쥐가 주인 행세를 하지를 않나, 처마 밑에 말벌이 집을 짓지를 않나…. 한 식구처럼 살면서 집주인이 그때그때 돌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건축일수록 집주인이 손수 짓는 게 좋겠다. 그래야 끊임없는하자보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생태건축 집은 늘 공사 중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니까 말이다.집이 옹골차려면 지붕이 중요하다. 지붕으로 열을 많이뺏기기 때문이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다락방을설치한 집에 겨울에 가보라. 겨울에는 거실에서 사람이 살기 어렵다. 잘 모르면 옛 어른들이 그 고장에 지은 집을 잘보고 그 원리를 따르는 게 비결이다. 우리 옛집에 다락은부엌 위에만 설치하고 다락과 집 사이에는 문을 꼭 해 달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이렇게 옹골찬 집을 지으려면 자기 욕구를 잘 다스려 욕심을 최대한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본 것도넣고 싶고, 저기서 본 것도 하고 싶은데, 공사기간과 돈은빠듯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하나를 얻는 대신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대충하고 눈에 보이는 건 잘하고 싶은데, 눈에 보이는 건 나중에 바꿀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건 평생 가더라.생태건축도 요 몇 년 사이 눈에 뜨게 발전했다. 더불어 기술이 있어야만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도 자기 집을손수 짓기 시작했다. 수입기계를 포장했던 나무들을 재활용해 만든 목조주택에서부터 흙을 쌀부대나 양파망에 넣은후 척척 쌓아올리는 흙부대집(http://cafe.naver.com/earthbaghouse)도 있다. 또 볏짚을 쌓아짓는 스트로베일하우스(http://cafe.naver.com/strawbalehouse)도있고, 돌이 많아서 돌을 척척 쌓아 집을 지은 이야기를 <귀농통문>에서 본 적도 있다. 화전민들이 산골에서 나무를우물 정(井)자로 쌓아올려 지은 귀틀집 역시 어렵지 않게지을 수 있고, 비닐하우스를 뼈대로 하고 조립식 자재인 샌드위치 판넬을 세운 세모모양의 집을 본 적도 있다.마지막으로 빈 터에 집을 지을 때, 먼저 아래채를 원룸으로 하나 짓고, 거기 살면서 시나브로 본채를 지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더라.날이 쌀쌀해지니 저녁이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자려고 누우면 등짝이 따끈따끈하고, 연한 재 내음이 난다.도시에 살 때는 아파트 수도꼭지 하나도 전문가의 손을 빌어 갈아 끼던 우리가 주먹구구식이지만 손수 집을 짓고 산다. 남편의 팔뚝 근육으로 만들어준 이 집에 사는 맛은? 비밀이다. 다만 이게 빠지면 자급자족은 고무줄 없는 빤스가아닐까 싶다.
장영란 산청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지난 98년 무주로 귀농하여 온 가족이자급자족하며살고있다. 자연에서느낀생각을담은『자연그대로먹어라』,『 자연달력제철밥상』『, 아이들은자연이다』등여러권의책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