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
[문화칼럼] 한글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관리자(2009-10-09 16:47:57)
한글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승재 국립국어원 언어정보팀장
올해도 어김없이 한글날이 찾아오는 시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한글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대답을 하지 못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막상 한글의 정확한 뜻에 대해서 묻거나 현재 한글날이 국경일인지 아닌지를 물으면 그것에 대해서 명료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왜 이러한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우리가 어렸을 때부터배워 온 한글이라는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한글의 뜻은 국어사전을 찾으면 알 수 있고 한글날의 지위에 대해서는 몇 군데사이트를 참조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한글이나 한글날에 대한 인식을 별로 깊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무척 어려운 대상인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중의 하나인 한글에 대해서 일상적인 국민적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글의 의미가 매우 불명료하게 쓰이는 경우도 많다. 특히한글날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동의어로 사용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한글의 뜻과 우리들이 평소에 인식하고 있는 한글의 뜻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국어사전에서는‘한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은‘우리나라 고유 문자의 이름’이라고 풀이하고 있고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우리말큰사전은‘우리나라 글자의 이름’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며연세대학교에서 발간한 연세한국어사전은‘한국의 글자, 또는 그것의 이름’으로풀이하고 있다. 또한 북쪽에서 발간한 조선말대사전은‘조선인민의 고유한 민족글자인 <훈민정음>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하면서‘주시경을 비롯한 국어학자들이 <<정음>>의 뜻을 고유어로 풀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해설을 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요즘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전인 네이버 백과사전에는‘훈민정음의 현대적 명칭’이라고 되어 있고 한글 위키백과에는‘한국어의 고유 문자’라고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글이 표음 문자 가운데 음소 문자에 속하며 2009년에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족의 언어인 찌아찌아어의 공식 표기 문자로도 채택되었다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현재까지 나와 있는 사전을 참조하면 한글의 뜻에 큰 혼란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표현들을 접하다 보면 비로소 혼란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혼이민자를대상으로한한글교육’,‘ 방과후학습과한글지도’,‘ 한글이세계공용어가됐으면’등의 표현들은 최근 신문에 보도가 되었던 표현들이다.그런데이표현들이말하고자하는바는다소혼란스러워보인다.‘ 한글교육’과‘한글 지도’는 국어사전의 뜻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의 문자인 한글을 교육하고지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의 내용은 문자로서의 한글도 가르치지만 우리말 전반을 가르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들은 한글을 교육하거나 지도하기도 하지만 한글로 우리말(한국어)을 교육하거나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하지만 마지막 표현에 쓰인‘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됐으면’이라는 구절은 다소이해하기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한글은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문자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위의 표현에서처럼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영어를 적는 문자로 쓰이는 알파벳이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없는 것과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지는 것은 문자인 한글이 아니라 언어인 한국어이고 위의 표현은‘한글이 세계 공용 표기 문자가 되었으면’으로 수정되면 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한글이 한국어를 적는 문자이고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한글과 한국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다 보면 이러한 구분이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글이 가진 상징성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도처에서‘한국어’를 사용해야 할 자리에‘한글’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문자가 없는 소수 민족 중의 하나인 찌아찌아족이 사용하는 찌아찌아어라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한글로 찌아찌아어를 표기한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였는데 이에 대한 국내 네티즌들의 반응이 매우 다양하였다.인도네시아 정부에서 한 일은 찌아찌아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한글을 사용하기로 한 것인데 이는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기로 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어에는 한글이라는 고유의 문자가있으나 찌아찌아어에는 고유의 문자가 없어 한글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들의 언어를 글자로 적을 수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국어를 적을 수 있는 고유의 문자가 없어 한자를 사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찌아찌아족이 한글로 표기된 교과서를 통하여 배우게 된 것은 그들의 언어인 찌아찌아어이지 한국어가 아닌 것이다.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한 댓글도 있었지만많은 댓글들이 찌아찌아족들이 이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곧 더듬더듬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게 된 것이다. 일부 사이트에는 많은 국가들이 영어를 의사소통 언어로 사용하지만지역별로 매우 다른 변종의 영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한국어도 지역별로 변종의 한국어가 생기는 것으로이해하면 될 것이라는 설명이 달린 댓글도 있었다.인도네시아에서 한글을 표기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분명 한글이 국제무대로 진출한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글의 국제화가 바로 한국어의 국제화를뜻하지는 않는다. 한글과 한국어의 국제화는 문자로서의 한글만 보급하는 일과 이를 발판으로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보급하는 일, 그리고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하여 표기 수단인 한글도 함께 보급하는 일 등 세 가지 종류의 국제화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들을 해석할 때에는 그것이 어디에 해당하는 개념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세종대왕께서 후손들에게 남겨주신 것은‘훈민정음’으로 이름지어진 우리 고유의 문자인‘한글’이다. ‘한글’은 예로부터 존재해왔던 우리말(한국어)을 적절하게 표기하기위하여 만들어졌고 이는 오늘날 현대 국어에맞게 다듬어져 사용되고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새로운 글자를 만드신 후 새로운 글자의 사용법에 대한 책자를 만드셨는데 그 책자의 이름 또한‘훈민정음’이고 이 책자는 유네스코에서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유네스코에서우리의 글자인‘훈민정음’(한글)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훈민정음’은 뜻글자인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혁신적인방법을 도입하여 만들어진 소리글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소리글자는 한자와 달리 다른 나라의 언어나 의성어, 의태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를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글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평가를 받는 한글이라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어와 더불어 21세기 정보 사회에서 그가치를 더욱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더욱중요하다.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부분의 정보는 디지털화되어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불과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레코드판 형태의 음반과 CD 음반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런 의심 없이 CD 음반을 선택하고 있다. 아니 레코드판 형태의 음반은 이제 일부 귀중본을 제외하고는 구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게다가 CD 음반에 들어있는 음악이나노래도 이제는 MP3 파일로 만들어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세상이 이렇게 변하는 사이 인터넷은 정보의 공유라는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며 또 다른 한쪽에서 세찬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데 정보의 유통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디지털화된 정보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제적으로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많은 정보들이 한글을 사용한한국어 정보라기보다는 대부분 로마자를 사용한 영어 정보이다. 초기 농경 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신분 종속이 문제가되었고 이후 산업 사회에서 국가 간의 경제 종속이 문제가되었다면 이제는 콘텐츠로 표현되는 정보 종속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와 있다.한글과 한국어의 국제화는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 강제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일도 아니고 그렇게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이는 한글과 한국어가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한글과 한국어로 만들어진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그 질이 우수해지면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폭넓은 양질의 정보는소수자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글과 한국어에 부단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때만이 가능하다. 오늘부터라도 많은 사람들이 한글과 한국어의 서로 다른 용법에서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볼 수있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이승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와 동 대학원 석사,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현재 국립국어원 언어정보팀장으로 재임중이며, 국어정보화 사업과 국어사전 편찬 사업을 담당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