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
[테마기획] 한글 7
관리자(2009-10-09 16:47:39)
한글-한글에 새옷을 입히는 사람들
한글 디자인, 우리 정서를 담아야 생명 얻는다
여태명 서예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성과 편리성을 가진 문자라 평가받는한글. 일찍이『대지』의 작가 펄벅은“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며 한글을 극찬한 바 있다. 한글은 과학적 우수성뿐만 아니라 뛰어난 표현성을 갖춘 문자로 디자인 측면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한글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 전시와 패션쇼 등이 잇따라 열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효봉 여태명은 한글 고유의 미에 눈을 떠, 한국적 질감을 담은 다양한 한글 서체를 개발해온 문자예술가다. 그는 캘리그래피를 이용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해체하고 조합해 새로운 한글의 이미지를만들어낸다.‘캘리그래피’는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란 뜻으로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서예 및 글자체의 상업용 디자인을 말한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와 미의식을 한국적 캘리그래피 디자인으로 담아내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서예를 상업화한다는 서예계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캘리그래피를 이용한 한글 서체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묵묵히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전파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한글 서체가 요즘에는 다양해졌지만 이전 글씨체는 다 똑같다. 하지만 글꼴이라는 것은 시기별,연대별로 다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전주의 완판본을 살펴보자. 완판본에는 그 시기에 가장 유행했던 서체가 담겼다. 이러한 서체들을 보존하고 자료로 남겨야 또 다른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는 우연히 전주의 한 골동품상에서 조선시대 민간 서체의 필사본을 보고 글꼴‘민체’를 개발하게 됐다. 여태명이 만든 글꼴‘민체’는 우리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서체로 친근감과 서정적 정서를내포하고 있다.한글과 캘리그래피는 그에게 한국적인 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알릴 수 있는 동반자다. 하지만 그는현재 한글 캘리그래피 디자인이 무분별하게 활성화되고 있는 시장에 대해 염려의 목소리를 전했다.“한글에는 제작원리가 있다. 한글 캘리그래피 디자인을 연구할 때자칫 잘못하면 문자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최소한의 것은 지키면서 디자인해야 한다”.“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이어야 살아 숨 쉴 수있다”는 효봉 여태명.그는 한글을 캘리그래피에 담아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세계화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한글자전과 컴퓨터용 폰트 추가작업에 들어간 그의 열정으로 한글 글꼴의 대중화는 또하나의 새로운 성과를열어가고 있다.
캘리그래피, 한글의 표정을 담아내는 그릇
오민준 캘리그래퍼
“한글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 구성요소를 조합해보면 조금 더 예쁘고 멋있는 글씨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디자인을 전공한 선배 덕에 자연스럽게 디자인을배우게 됐다는 캘리그래퍼 오민준씨. 그는 최근 붓 이외에도 다양한 재료가 캘리그래피에 사용되면서 표현력이 더욱풍부해졌다고 했다. “요즘은 전각이라고 해 돌이나 뿔 등을 이용하기도 하고, 붓이 아닌 막대기, 풀잎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캘리그래피는 어떠한 재료든지 사용해 글씨를쓸 수 있다”. 다양한 재료는 작가의 개성과 함께 단어가 가진 뜻과 의미를 더욱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캘리그래피와 한글 디자인. 최근 캘리그래피를 이용한한글 디자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글과 캘리그래피 조화의 접점은 어디에 있을까. “아무래도 정서적인 부분 같다. 붓에서 나오는 정서적인 부분들이한글과 캘리그래피를 서로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그는 캘리그래피의 섬세한 면이 한글과어우러졌을 때 더욱 효과가 증폭된다고 말했다.“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상당히 디자인적이다. 단어를 표현하는데 있어 한글은 한자보다 단순하면서도 폭넓다. 한자는 서체가 정해져 있어 그 범위를벗어나면 가독성에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한글의 경우 자유스럽게 표현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 있다. 즉, 표현하기가 쉽고도 넓다는 것이다”. 그는 한글은 어떻게 쓰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과 회화적인 느낌이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것이 그의 의견이다.그는 한글 서체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훈민정음』,『 용비어천가』등 한글의 고전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재료와 풍부한 표현으로 앞으로 더 많은 서체가 개발될 것이다. 가장 한글다운 서체를 표현하기위해서는 고전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꼭 필요하다. 한글 초창기의 서체를 모태로 발전해 나가야만 한글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표현할 수 있다”.앞으로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지속해나가고 싶다는 캘리그래퍼 오민준. 대중과 함께 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한 시기의 유행만으로 끝날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한글 디자인은 전통과 미래, 그리고 사람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한글은 글자, 그 자체를 주목하라
한재준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한글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왜 사랑하고, 자랑하고, 세계화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매체나 기관도 찾기 어렵다”. 서울여대 한재준 교수는 구호와내용만 있고 조직과 전략은 없는 한글 운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한글의 본질적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글의 장래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화 되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글자의 최우선 가치는 기록과 소통이다. 한글 창제 철학의 핵심가치 중 하나가 소통의 불편을 겪는 백성에 대한 배려심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교수가 이토록 한글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지궁금했다. “1940년에『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된 이후 그때부터,한글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즘에 와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 심지어는 한글과 한국어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는 한글과 같은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아직도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서 한편으론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한글의 진정한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활자꼴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는 한교수는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글자 한글의 기본에 대한 연구로 한글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 한글타이포그래피의 올바른 체계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나 절차에는 무엇이 필요할까.“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올바른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활자꼴의 표준화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활자꼴이란, 산업화된 글자를 말하며, 산업화에는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잘 알고 계시듯이, 글자는 약속된 기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법, 어법, 서법이 있듯이 자법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근거는 훈민정음의 제자해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자법이 세워지고 적용되면, 요즘 말로 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문제는 자연히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그는 앞으로 음소글자 한글의 특성을강조한 활자꼴이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하며 사라진 자모를 재활용하거나새로운 자모를 개발하는 일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글 속에 담긴 다양한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널리 알리고활용하는 일에 더 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기임을 강조했다.
한글, 그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이용제 계원대학교 교수
“<한글꼴연구회>라는 글꼴디자인 소모임에서 글꼴을 디자인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직업으로 이어졌다”는 이용제 교수. 그는 천상 한글 글꼴 디자이너다. 그는 자신을 단지 좋은 글자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만큼 소박했고, 직업에 대한 신념이뚜렷했다.“한글은 상상력을 일으키는 좋은 대상이다. 창제 원리와 과정이 밝혀져 있고, 만든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생각으로 한글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된다면 한글을 이용한 창작은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는 한글 디자인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한글 창제원리와 철학을 이용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한글을 이용한 타이포그래피는 캘리그래피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타이포그래피와 캘리그래피는 글자를 가지고 창작한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는 활자를 다루는 것이고 또한 복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캘리그래피는 서예와 같이 일획성과 일회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그는 이러한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글꼴을 디자인하기 위해 2004년 글꼴디자인 회사 <활자공간>을 열었다. 그런 그가 최초의 세로쓰기 전용서체인‘꽃길’을 개발해 주목을 끌었다. 가독성을 이유로 가로쓰기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최초의 세로쓰기 전용서체라는 위험성을 안고 개발한 이유는 분명했다. “가독성은 글자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또한 가독성은 매우 상대적이기 때문에 가독성이라는 말로 모든 글꼴을 획일화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획일화된 생각이 이 땅에서 세로쓰기 문화를 없앴다고 생각했다”.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문화 중 하나인 세로쓰기를 좀 더 쉽고 편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서체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앞으로 한글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필요한 글자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이교수. “2009년 9월부터 계원디자인예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글디자인 교육과 한글 타이포그래피 교육에 좀 더 시간을 쓸 생각이다. 그와 함께후배들이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직업으로 삼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시장과 사회에 관련된 일을 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타이포그래피 시장이 좋은 시각문화를 만들어가고 그렇게 되기 위해 좋은 글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