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
[테마기획] 한글 5
관리자(2009-10-09 16:46:59)
한글, 춤이 되어 무대에 서다
이숙재 한양대학교 교수, 밀물현대무용단 대표
오늘날 경제와 문화전쟁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를 그 근저에서부터 억압하고 심지어 정신적인 식민지화를 조성하고 있는 것은‘영어’다. 청소년층은 이제 그들 미래의 국제화된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도구로서 그것을 바라보고, 때론 경외하게 된다.그러나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인 에드윈 라이샤워(E. O. Reischauer, 미국)는“한글은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계이다”, 재프리 샘슨(Geoffrey Sampson, 영국)은“세계 인류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이다”, 우메다 하로유키(Umeda Hiroyuki, 일본)는“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면서 로마자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자질문자이다”라고 언급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거의 모든 문화적, 교육적 가치관을 영어에 맞추다 보니알게 모르게 생존을 내세우면서, 문화적 사대주의에 무의식적으로 빠져 있는 가운데 한글은전 세계적으로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 중이다.한글의 우수성현존하는 3천여 문자 중 창제자와 창제일이 밝혀진 유일한 문자로‘꿈의알파벳 (John Man 영국의 역사가)’으로 칭송받고 있는 한글은 유네스코에서 인류가 보존해야 할 기록문자 유산으로 지정하고 매년 문맹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세종대왕상을 수여하고 있다.또한 근래에 들어 한류의 확산과 함께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문화예술의고부가가치는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열어 놓고 있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인이 먼저 알아주는 소중한 한글에 대해 이제 우리도 우리의 정신문화에 대해 서서히 더 깊은 주체성과 자긍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한글은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바탕으로 한 화합의 근본정신으로,백성 사랑의 높은 뜻을 담은 탁월한 글자라는 점을 깨우쳐 주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로서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늘 일깨워주고 있다.그 이유는 쉽게 읽히고 구사되면서 거의 모든 지상의 소리를 문자화할수 있으며, 닿소리는 입의 움직임을 본떴으되, 홀소리는 우주가 만들어진원리를 본뜨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우주에 이르는 무한히 넓은 공간이 펼쳐지며 그뿐 아니라, 음양오행의 형이상학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과학과 철학이 우리 한글에는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셈이다.즉, 한글은 그 낱소리 글자 하나하나에 겨레의 자주정신과 민주정신을옹골차게 담고 있으며, 한글로 글자살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겨레얼을 지켜 내고 있는 것이다.필자는 20여 년간 한글과 무용의 만남을 통해‘한글춤’이라는 창작무용을 1991년부터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무용 페스티벌에 90여회 선보이게 되었다.한글춤을 창안하기까지한글춤을 창안하게 된 계기는 이화여대 무용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강단에 서게 되면서 해외연수를 계기로 미국의 뉴욕대학교 대학원 무용과에 입학하여 4년여에 걸친 석·박사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지도교수인 닥터 로(Dr. Patriea Rowe)를 만나게 되었다.그의 안무수업을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대무용의 개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안무소재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수업 중 각 나라의 대표적인 문화를 토대로 안무주제를 찾아야 했다.‘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되었다. 한국은 동양 문화권의 테두리 안에서 고대로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 온 탓에 우리나라는 사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면 별 문화적 특징 없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조그만 아침의 나라정도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가야금이나 부채춤, 기와집, 종교 등은 중국이나일본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서양인들의 시각에 비쳐지고 있기 때문에내세울 수 있는 독특한 한국적 소재가 너무도 희귀함을 필자는 낯선이국땅에서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그때 마침 닥터 로는 나에게“안무는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자기자신의 예술세계를 발견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일 때 가장 국제적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고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뉴욕한국문화원을 방문하여 고심 끝에 발견한 것이 한글이었다.살아 숨 쉬는 문자, 한글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의지로 실천에 옮기고자 귀국 후 1984년 한양대학교에 재직하게 되면서 밀물현대무용단을 창단하여 1991년 <홀소리 닿소리>를 시작으로 <신용비어천가>(1993), <한글기행>(1995), <한글누리>(1996), <뿌리깊은 나무 >(1997), < 세종은 오늘도 잠들지 않는다>(1997), <샘이 깊은 물>(1998), <한글 그 가상공간 속으로 >(1998), < 땅울림 >(1999), < 한글, 새 천년의 꿈>(1999), <한글춤 2000>(2000), <한글춤 2001-큰 만남을 위하여>(2001), <움직이는 한글>(2002), <춤추는 한글>(2003), <한글아 놀자>(2004), <한글춤 대탐험-훈민정음>(2005), <한글 25시>(2006), <사맛디>(2007), <한글춤 2350>(2008), <훈민정음 보물찾기>(2009) 등 39개의작품을 창작했다.또한 국내외 공연을 통해 우리민족의 자랑인 한글을 무용예술로 승화시켜 무용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부상하고 있는 한류에 일조하면서 우리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20여 년 동안 작업해 오면서 느낀 것은‘한글춤’은 그추상적 조합체가 인간 신체의 형상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한 문자의 탄생이 우리 인간 신체와 어쩌면 깊게관계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뜻에서 추상미와 신체미의 결합을 동시에 이뤄내고 있는 한글은 몬드리안의 추상화보다도 더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고, 또 다르게는 컴퓨터 화상 위의 문자판보다도 더 빨리 우리 머릿속에 인지되며 또 새롭게 풀어져 조합될 수 있다.지금까지의 한글의 몸짓 형상화 과정을 바탕으로 문자이전의 소통체계인 우리 몸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몸짓언어의창조적 기능성으로 우리글 한글, 그 자체를 형상화하는‘한글춤’작업은 필자에게 있어서 문화를 혹은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었고, 지치지 않는 의욕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었다. 한글은 우리 겨레의 값진 문화유산일뿐 아니라 세계에 내놓아 자랑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류의 걸작이며, 아름다운 공연예술로 누구나 볼 수 있게 승화된 사실은 겨레의 큰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끝으로‘한글춤’이 그동안 무대예술작품으로 인식되어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한국의 문화지표가 되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대표적 문화콘텐츠로서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성공적인 사례로 발전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이숙재 1991년 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 예술가상과 2003년외솔상 실천부문을 수상했다. 한양대학교 생활체육과학대학학장과 한국무용학회 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밀물현대무용단 대표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