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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
[테마기획] 한글 2
관리자(2009-10-09 16:46:13)
왜 각수들은 반듯한 글자를 새겼을까 - 한글과 완판본 - 이태영 전북대학교 교수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위상 ‘심청전, 열여춘향수절가’로 알려진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한글의 역사 안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한 일제시대의 한글 교육과 많은 관련을 갖고 있다.첫째로, 한글의 역사에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위상을 알아보기로 한다. 한글이라는 문자가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말로는 우리말을 쓰고 글로는 한자를 쓰는 이중적인 언어생활을 하였다. 우리말을 표기하려니 마땅한 문자가 없으므로 한자를 이용하여 때로는 약자로 줄여서, 때로는 음을 이용하여, 때로는 뜻을 이용하여 기묘한 구결과 이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어휘를 표기하기도 하고, 조사나 어미를 표기하기 위하여 새로운 한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결과 이두는 배운 사람도 어렵거니와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아예 글을 쓸 수 없었다.1443년 세종대왕께서는 일부 지식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 그리고 1446년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가 기록된『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문헌을 세상에 반포하셨다. 그리고『용비어천가』라는 최초의 한글로 된 문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수많은 한글책들이 출판되었지만 출판된 문헌의 대부분은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본들이었다.한문을 써온 사대부라는 지식인들은 여전히 한글 사용을 기피하고 한문을 써야만 지식인으로 행세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문서와 학술서적은 한문으로 쓰고, 개인끼리 주고받는 편지나 소설에서는 주로 한글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글은 아녀자들이 많이 쓰게 되었다.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주 쉬운 문자인 한글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순전히 한글로만 쓴 문서로는 편지가 많았다. 선비들도 부인이나 집안사람들과 한글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편지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그 다음에 손으로 쓴 이야기책이 많았다. 이 책들은 공식적으로 인쇄되어 판매되었는데 목판본 한글고전소설은 한글로 쓰인 책이다. 이 책들은 조선 후기 에 한글을 보급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책이라 할 수 있다.문맹자를 위한 한글 교육,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둘째로, 전주에서 발간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왜 해서체(정자체)로 되어 있고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은 반초서체(반흘림체)로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주에서 1823년에서 1932년까지 발간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거의 대부분 해서체(정자체)로 되어 있다. 같은 한글이라도 초서체는 식자층이 읽고, 해서체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출판한 것이다. 서울의 경판본 한글고전소설이 모두 반초서체인 궁체로 되어 있어서 식자층을 염두에 두고 출판한 반면, 전주의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정자체로 되어 있어 일반 소시민을 위해 발간한 것이었다.왜 이렇게 각수들이 반듯한 글자를 새겼을까? 정자로 글자를 새긴 이유는 소설 한 권을 다 읽으면서 우리 한글을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어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발간 목적은 재미있는 소설을 발간함은 물론 문맹자를 위한 한글 교육용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글고전소설『언삼국지』의 첫페이지에‘가갸거겨’로 시작하는 자모음표인 반절표가 붙어 있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소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한글 교육을 거의 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재미있는 한글고전소설을 읽으면서 한글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지금도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할 때 소설을 읽으면서 외국어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전주에서 발간한 완판본 고전소설은 셀 수 없이 많이 팔렸다. 실제로 책에 필사된 책 주인의 주소를 보면,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을 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전라도를 대상으로 한 한글 교육은 물론 전국적인 한글 교육에 크게 공헌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고전소설이 보여주는 글자체는‘민체’라 하는데 기존 옛 책이 갖고 있는 글자체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글자체를 가지고 있다. 이는 경판본이 갖는‘궁체’와 대조되는 글자체여서 식자층이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출판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당시 전주가 근대시민의식이 매우 강한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일제치하인 1910년대에 가장 왕성하게 출판되는데 이상하게도 인쇄문화가 발달한 전주에서 한글 교과서를 찍은 흔적이 전혀 없다. 일제의 검열을 받던 시대라 한글 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발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잘 극복하면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이 한글 교과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완판본 속에 들어있는 전라도 방언 셋째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에는 전라도 방언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1908년에 전주에서 발간한 완판본『심청전』에‘ 각질 두세 번의 숨이 덜걱 지니(패깍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지니『) 심청전上,8ㄱ』’라는 예가 보인다. 심청의 어머니인 곽씨 부인이 심청을 낳고 몸조리를 하다가 몸이 쇠약하여 딸꾹질을 두세 번 하다가 숨이 끊어지는 모습이다. 완판본『심청전』에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어휘인‘패깍질’은 표준어로는‘딸꾹질’이다. 전주가 고향인 필자는 어려서부터‘딸꾹질’을‘태깍질’이라고 듣고 써왔다. 전북 전주에서 발간된 한글고전소설에 전주지역에서 쓰는‘태깍질’이 아니고 어째서‘ 각질’이쓰였을까?‘한국방언자료집’을 찾아보면, 전남방언에서는‘포깍질’이 일반적이고, 전북방언에서는‘포깍질, 퍼깍질, 태깍질’이 일반적이다.‘패깍질’은 남원 운봉에서 쓰이는 것으로 보고된 바있는데 이 지역은 경남 함양과 인접한 지역으로 경남 방언이 많이 사용되는 지역이다. 따라서‘ 각질’형은 전남과 경남에서 사용하는‘포깍질’과 전북에서 사용하는 방언‘태깍질’이 접촉지역에서 서로 섞이면서‘패깍질’을 만든 것이다.표준어‘딸꾹질’을 말하는‘ 각질(패깍질)’이 완판본『심청전』에 나타나는 사실은 이 소설이 남원의 동편제 판소리의 원고가 전주에서 목판으로 발간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동편제는 판소리 유파의 하나로 전라북도 운봉, 구례, 순창,흥덕 등지에서 많이 부른다. 한글고전소설에서 궁금한 점 하나는『열여춘향수절가』,『심청전』과 같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을 목판으로 만들 때 원고본이 있었을 것인데 과연 그 원고는 어디에서 누가 썼을까 하는 점이었다. 틀림없이 누군가 필사를 한 원고를 다가서포나 서계서포에 가져다주었을 것이고, 목판에 새기는 일을 맡고 있는 각수가 그 필사본 원고를 보고 나무에 글을 새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필사본 원고는 어디에서 온것일까? 또한 전라도에서 발생한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생생한 전라 방언은 판소리의 전성기인 18세기 언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우리가 흔히『춘향전』이라 부르는『열여춘향수절가』는『심청전』, 『토별가』, 『적벽가』와 더불어 판소리 소설이라 불린다. 이들은 판소리의 원고를 그대로 소설화시킨 것이다. 흥미롭게도『열여춘향수절가』에는『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남원의 말씨가 그대로 살아있다. 남원은 전남과 경남의 접경지역이어서 평소에도 전남과 경남의 말씨가 많이 사용되는 곳인데『열여춘향수절가』에 많은 남원 지역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이 소설에 나오는 일반적인 방언은 전라도의 방언 현상과 매우 흡사한데 예를 들면‘짚은(깊은), 목심(목숨), 귀경(구경), 거무(거미)’등이 그것이다. 완판본『열여춘향수절가』에는‘상단아 미러라’라는 예문이 나오는데 여기서‘상단이’는 누구일까? 이는‘향단이’를 전라 방언으로‘상단이’라고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형님’을‘성님’이라 하고, ‘혜아리다’를‘셰아리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열여춘향수절가』가 독특한 방언을 보이는 것은 바로 전남의 말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만니 엇지 와겻소? (어머니 어찌 오셨소?) 『춘향下,33ㄱ』’에서 쓰이는‘와겻소?’는 실제로 전남에서‘언지 와겠소?’와 같이 쓰이는데 아주 많이 사용되는 존대표현이다. ‘와겠소?, 진지 잡사깃소’등의 표현은 필자가 서울에서 여수행 기차를 타고 전주에 오면서 여수에 사시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쓰던 말로 귀에 익숙하게 들었던 전남 방언이다. 이 표현들을 보면 전남의 언어가 남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완판본『열여춘향수절가』는 남원의 동편제 판소리의 원고를 전주에서 목판으로 출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라북도 남원이 낳은‘춘향’은 한국문학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춘향’의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열여춘향수절가』가 남원에서 불리는 동편제 판소리의 원고를 바탕으로 전주에서 목판으로 찍어 출판했다는 사실은 지극히 마땅한 결과라 생각한다. 이처럼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경우 판소리 사설에서 유래한『열여춘향수절가』, 『심청전』등은 동편제 사설을 가지고 소설로 만들었으며, 『홍길동전』은 전라도 서쪽 지역의 방언을,『 장경전』과같은소설은전라도북부지역의방언을반영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처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특정지역 방언 현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매우 드물다. 여기에 추가하여 그간 손으로 쓴 필사본 한글고전소설을 포함하면 그 양은 매우 방대한 양이 될 것이다. 또한 전라도에서 발생한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생생한 전라 방언은 판소리의 전성기인 18세기 언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태영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전북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장,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위원에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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