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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
[테마기획] 한글 1
관리자(2009-10-09 16:45:58)
소중한 우리말이 사라져 가고 있다 - 한글날 단상 - 윤석민 전북대학교 국문과 교수 21세기의 인류사회는 이제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와 휴대폰, 그리고 인터넷의 영향으로 인해 물리적 개념의 국경선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하나의 권역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고립하여 존재하기 힘들게 되었으며, 우리 인간의 삶도 이웃나라와 대립하는 관계를 넘어서 상호 교류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울타리를 형성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교환됨에 따라 삶의 방식과 형태가 유사해지면서 의사소통의 원활함이 추구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류사회의 이러한 새로운 삶의 패턴을 바꾸고 그 틀을 든든히 해 주는 변화의 한 복판에 언어와 문자가 자리하고 있다. 고마워요, 세종대왕님! 얼마 있지 않으면 한글날이다.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세계 많은 나라 가운데 유독 우리만이‘글자’를 위한 국경일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얼마나 자기 문자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국경일로까지 정해 기념하는 것일까.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것이 세종 28년(1446년)이니까 올해로 벌써 563돌이 된다. 모든 사람이 쉽게 배워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 하려던 세종의 바람은 이제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한글은 이제 당당하게 우리말을 적는 표기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만의 표기수단을 넘어서 글자가 없는 소수 민족의 언어를 적는 데까지 활용되고 있으니 정말 자랑스럽다. 한글날에 보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하지만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글이 정작 우리 말글살이에서는 그리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아주 이상한 말이나 글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의 그런 말이나 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음의 몇 가지만 보더라도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야기 하나: 무늬만 한글?>다음은 어느 방송의 참여자들 간 대화 중 일부를 옮겨놓은 것이다.“oo이는 글래머러스하게 보일 수도, 섹시하게 보일 수도, 큐티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oo이는 골드펄드 썼고, 아이라인 강조했어요”.“제가 블로셔를 강조했거든요”.“앞머리는 컷했고, 헤어를 뱅하고…”“보이시한 컨셉을 선택한 oo이…”“oo이는 빈티지하고 젠틀한 느낌을…”이 방송의 대화에는 너무 많은 외래어가 사용되어 무슨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을 적은 것이 대략 위와 같은 정도이다. 조사와 어미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말들이 외래어여서 이것이 한국어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 말인지 구분이 안 된다. 더욱이 방송에 자막으로 넣은 장면 전환 안내도‘street vote’나‘desire’,‘ chapter1’따위로 아예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이 보았다면 아마 통탄해마지 않았으리라.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려 적으라고 만들었건만 우리말은 뒷전이고 아예 외국어의 보조 수단 정도로 쓰이는 모습이 못내 분하고 억울하실 지도 모르겠다.<이야기 둘: 한글이 외계어(外界語)라고?>인터넷상의 말글살이도 심각하다. 청소년이 사용하는 글들을 보면 머리가 혼란스럽다.-‘ 방가’(반가워), ‘금’(그럼), ‘설’(서울), ‘ㅎㅎㅎ’(하하하),‘ ㄴㄱ?’(누구세요?),‘ ㄱㅅ’(감사합니다)-‘마자’(맞아), ‘추카’(축하), ‘어이엄따’(어이없다), ‘띤구’(친구),‘ 이써여’(있어요),‘ 나뽀’(나뻐)-‘음야’(지루하다/졸리다), ‘허걱’(놀랍다), ‘헐’(황당하다),‘ 짱나’(짜증난다)-‘아 ’(감탄사),‘ P~’(한숨),‘ ㅂ’‘( 그만’과 비슷하게 꾸짖는 말)새로운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는 인터넷을 통해 먼 곳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런 문명의 이기(利器)를 자기 방식대로 활용하는 능력은 필요하다. 문제는 오히려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위력이다. 자신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친근감을 표현하고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표기를 사용할 수는 있다. 어쩌면 여기에는 자유롭고 재치 있는 청소년들의 개성이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러한 긍정적 측면은 사(私)적인 차원의 소통에서만 가능하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제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이 접속하고 그 안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우 소수의 개인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언어 규범에서 의도적으로 일탈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실제로 이러한 인터넷상의 표현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된 시험답안지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일은 이제 선생님들의 일상사가 되었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말은 도무지 국적도 뜻도 오리무중이다. 오죽하면 외계어(外界語)라 부를까? 컴터 고장-_-; 난감 데쓰, 지금. read me book 중이 시다…ㅋㅋㅋ,‘옵ㅎ℉를_ㅁ│てつ효_∩▽∩★’(오빠를 믿어요)….<이야기 셋: 콩 심은 데 콩 난다> 청소년들만 욕할 것이 아니다. 보고 배운다고 했던가.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는 대로 아이들은 따라할 뿐이다. 어른들이 우리말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데 아이들보고만 제대로 사용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파트 이름 : 힐스테이트, 타워펠리스, 더샤ㅍ, 롯데캐슬, 센트레빌, 아이파크, 블루밍…. -언론 이름 : 뉴스레터, 뉴스플러스, 비즈니스앤, 코리안 네트워크, KBS, MBC, SBS, YTN….-프로그램 이름 : 아이조아, 매직키드 마수리, 개그콘서트, 뮤직뱅크, 경제매거진M….-담배 이름 : 디스, 타임, 시마, 리치, 시즌, 루멘, 레종, 제스트, 더원, 에쎄, 멘솔, 클라우드….도대체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는 모든 말들이 외래어요 외국어 투성이다. 이들에게 왜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우리말로 쓰면 재미가 없고 현대적이지 않으며 그 뜻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우리말을 쓰면 그렇고 저렇게 외국어로 쓰거나 우리말을 이상하게 잘못 쓰면 재미있고 정확하다는 것일까? 정말 우리들은 어느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 큰 문제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우리 말글을 알맞게 사용하는 것보다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우리말이 없으면 우리도 없어진다! 조지 오웰의 소설『1984』를 읽다 보면 새삼스레 우리의 말글살이를 되돌아보게 된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점에 기초하여, 소설에서는 독재자가 사람들의 의식을 단순하게 만들어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언어를 조작하는 얘기가 나온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다고 생각해 보라. ‘자유’라는 말을 없앰으로써 사람들은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그래서 결국 사람에게 자유가 사라진다면? 끔직하다.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니 자유를 추구할 수도 자유를 위해 투쟁할수도 없다는 논리는, 조금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말과 글을 가리켜‘세계를보는 창’이라고 했지 않던가.이쯤에서 이제 우리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자유롭게 우리 스스로 결정하여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에서 보여준 오늘 우리의 일그러진 말글살이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자.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남용하고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는 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우리 고유의 생각과 행동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밀려드는 외래적 문물과 외래적 사고, 외래적 행동에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를 던져버리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느새 우리의 생활방식과 우리의 전통과 우리 고유의 것보다 외래적인 것에 더욱 익숙하고 편하게 변해 버린 것 같다.아무렇게나 말하고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면서 공동체적 협동과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무시된 채 개인적 관심과 이기적 욕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애초에 말글살이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똑같은 목표를 지향점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우선 우리 말글살이부터 다듬는 것이 먼저다.우리말이 없어지면 우리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고마워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것은 우리말을 제대로 적지 못해 생기는 생활상의 불편함 특히 일반 백성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기 위해서였다고 배워 왔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더 크고 더 중요한 목적이 또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것, 우리 생활, 우리 마음’그 자체를 지켜서 온전한 것으로 다듬고 가꾸어 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외래적인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것, 서로서로 다른 개인적 목표가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그 큰 꿈을 한글을 통해, 조화로운 말글살이를 통해 이루고 싶으셨던 것이다.우리는 그 꿈을 지켜드릴 의무가 있다. 그렇게 고마운 한글을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도 무언가 해야 되지 않겠는가.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해야 할 일도 간단하다. 우리말과 우리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주면 된다. 우리말과 글에 조금 더 애정을 주면 될 일이다. 누구랄 것 없이 내가 먼저,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하면 된다. 이제부터라도 외래어보다 좋은 우리 고유어를 살려 쓰고 재치 있고 개성적이되 남을 배려하는 표현을 사용해 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맞이할 한글날에는 세종대왕님께 진정으로 고맙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을 기대하며 미리 한번 해보자.“고마워요, 세종대왕님. 우리가 더욱 멋지게 만들게요!” 윤석민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저서로는『현대국어의 문장종결법 연구』와『텍스트언어학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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