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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 |
[서평] 『철들 무렵』
관리자(2009-09-03 14:02:41)
『철들 무렵』 철듦과 철부지의 거리 오하근 문학평론가 이 시집은 시인의「자서」의 말마따나‘세월과 사이좋게 동거하면서 관대해지거나 불화하며 초조해지는 사람들의 일이 이 세상에 명절이니 이십사절기니 기타 여러 속절(俗節) 같은 마디를 만들었을 테고 농경문화가 주눅들어버린 요지음에 그것들을 깜박깜박 잊어먹긴 해도 그게 다 우리네 삶의 끈이거니 싶어 그 마디들을 새삼 추슬러’본 작품들로 짜여있다.그렇게‘우리네 삶의 끈’은 예로부터 세월을 묶어 월령가(月令歌)를 만들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도 이러한 월령가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는 이 시집의 맨 앞의 작품이다. 여기‘얼다 녹은 냇물…피라미 한 마리’에서 우리는‘正月(정월)ㅅ 나릿므른 아으 어져녹져 하논되 누릿 가온되 나곤 몸하 하올로 녈셔. 아으 動動다리’「( 동동」)의 자취를 볼 수 있다. 물에서부터 봄을 맞이하는것은 어쩌면 집단무의식적인 인간의 본성의 자취이리라. 도연명도「사시(四時)」에서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라 하여 물에서 봄을 보았다.이 시에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한 점을 새겨 무료함을 지우듯 수심이 얼만지도 모르는 맑은 물에 피라미 한 마리의 동작을율동화하여 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심정은 2월 초에 벌써 입춘을 설정하여 봄을 유혹한다. 그러고도 못 믿어 봄의 전령이니 하여 또 무엇을 만들어낸다. 이 시에서는 피라미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또 그러고도‘살얼음 낀다살얼음 밟듯 목숨 걸고 봄이 오는지’그 늦음과 빠름을 탓하며하마 살얼음 깨져 봄이 빠져죽을까 조마조마 애태운다. 얼다 녹는 냇물에 살얼음 낀다 살얼음 밟듯 목숨 걸고 봄이 오는지 궁금한 수심(水深)을 길어올리는 피라미 한 마리 하얀 뱃바닥으로 살얼음을 만져보고 갸웃거리며 다시 가라앉는다 -「 입춘」 숨 막힐 듯 숨소리 죽인 새벽비 온다 속옷까지 젖도록 속속들이 숨을 죽이고 새벽비는 숨 막히게 누굴 보고 싶은가 -「 새벽비」 이는 이 시집의 맨 끝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반복 음으로 하 모니를 이루고 있다. 여기 ㅅ(s)음이 연발되어 나타난다. ‘숨’ ‘숨소리’‘새벽비’‘속옷’‘속속들이’‘숨을’‘새벽비’‘숨’‘싶 은가’등이 그것이다. 이 시에서 숨 막히는 주체는 누구이고 숨소리 죽인 주체는 누 구이고 누굴 보고 싶은 주체는 누구이고 속옷까지 젖는 주체는 누구인가. 새벽인가 새벽비인가 자연인가 화자인가. 어쩌면 이 모두인가. 아마도 새벽은 자연이 잠을 막 깨려고 기지개를 켜는 때이다.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실은 그보다 더 커다란 움직임이 차단시키고‘숨 막힐 듯 숨소리 죽인 새벽비 온다’. 그러나 사 실 누굴 보고 싶어서 간밤을 새우고 새벽에 길에 나서 속옷을 젖게 하는 주체는 화자이다. 여기‘속속들이’는‘속옷까지 젖도 록’과‘숨을 죽이고’의 양쪽에 걸치는 액식어법(zeugma)의 어 휘이다. 이렇게 극히 짧은 하찮은듯한 시에도 이런 탄탄한 장치 가 숨겨져 있다. 은행나무 줄줄이 서서 노랗게 눈부신 길로 늙은 내외가 걸어갑니다 길바닥에 깔리는 노란 잎새 사이 드문드문 떨어진 누런 열매를 발길 멈추며 줍기도 합니다 아직 잎새가 푸른 은행나무도 드문드문 서있습니다 떨어질 열매도 없는 아직도 푸른 잎 무성한 은행나무 밑에서 은행나무도 수컷은 철이 늦게 드나보다고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두런거립니다 철들면 그때부터 볼 장 다 보는 거라고 못 들은 척하는 할아버지 대신 가을바람이 은행나무 푸른 잎새를 가만가만 흔들며 지나갑니다 -「 철들무렵」 이는 이 시집의 책명으로 쓴 작품이다. 이 철 들 무렵은 이제 노인네가 회상하는 완료형의 어느 과거인가, 아니면 겪고 있는 진행형의 현재인가. 배경은 은행나무가‘노란 잎새’와‘누런 열 매’를 생산하는 해가 저무는 가을, 캐릭터는 늙은 내외, 이만하 면 젊은 세대에게 축적된 경험으로부터의 노년의 예지를 전달 하는 교훈이 제재가 될 법한데 말투(tone)조차‘그랬느니라’는 그만두고‘그랬다’정도는 될 법한데‘그럽니다’투의 아직 철 부지의목소리가소곤거린다.‘ 철들면그때부터볼장다본거 라고’철딱서니없는속내를숨긴다.‘ 철들자망령난다’가아니 고철도안들고망녕났다고할만하다.‘ 못들은척하는할아버 지 대신 가을바람이 은행나무 푸른 잎새를 가만가만 흔들고 지 나갑니다’가 이를 증명한다. 여인은 젊은 시절에 치마 속으로 봄바람이 드는지 모르지만 사내는 늙어서도 가을바람이 가만가 만 흔들기만 해도 철딱서니 없는 버릇이 그냥 나오나보다. 이는 아이러니의 언어이다. 거짓인하면서도 진실이고 진실인 듯 하면서도 거짓이다. 모든 현상에는 양면이 있다. 철이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한 것이 삶이다. 아이러니는 진실의 언어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이 시집의 모두와 말미와 책제의 세 작품을 살펴 이 시집의 윤곽을 가늠했다. 우리는 시간과 세월의 흐름을 시계와 달력으로 대중한다. 이 둥©E과 모남에서 반복과 진행을 본다. 시각은 제자리에 오지만 날짜는 가고 다시 안 온다. 이 시 집의 1부가 이 네모 칸에 채워져 있는 날짜의 흐름에 맞춰진 절 기 따위의 속절된 민중의 기록리라면 2부는 이 날짜의 흐름을 조성하는 둥근 시계 속에 회전하는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개인 적인 일상의 흔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시각각과 그 끊 임없는 진행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고 저축하고 시간 속 에서 해방되고 이를 갈망하곤 한다. 그것이 꼭 철이 들어서도 아니고 철이 없어서도 아니다. 철듦과 철부지의 거리는 없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시들이 이 시집을 이 룬다. 오하근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를 마쳤다. 1981년 <현대문학> 평론부문에 추천돼 데뷔한 이래 20여년 동안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과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문화 여성분과위원회자문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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