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9 | 칼럼·시평 [문화시평]
마술가게에서 일어난 ‘좀도둑’의 일상 탈출
창작소극장 개관 10주년 기념공연 <마술가게>
이광기 전일고등학교 교사(2003-07-03 15:56:31)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현실이라는 터울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을 지니고 있나보다. 그래서 마술사가 펼치는 신기한 술수를 보면 감탄을 하고, 자신이 그 마술사가 되어보기도 하나보다. 마술이란 무엇일까? 마술이란 뭔가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사람들의 경탄과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마술사가 보여준 무대에서의 환상에 가득 찬 마술 솜씨를 보며, 우리는 상황이 너무 지치고 어려울 때, 내 자신이 보기 싫어져 벗어나고 싶을 때, 마술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랬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마술을 파는 가게는 없을까? 그 마술가게를 발견했다. 경원동에서. 대낮에도 어둑어둑하고,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에서 무려 십년이란 세월동안 전북연극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창작소극장. 그 곳에서 소극장 개관 십주년 기념으로 마술가게를 열었다. 그 마술가게의 주인은 오랫동안 이 창작소극장을 지켜온 류경호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 고급의상실에서 벌어지는 마술쇼였는데 마술사들은 임형택, 류지애, 홍지예, 임정용, 최지훈 등이였고, 그들은 재치있고, 신비스러운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흘리는 땀방울 하나 하나가 마술이 되어 관객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극이 시작되기 전의 무대는 두벌의 흰 드레스가 걸려있을 뿐 썰렁하다. 그러나 조명이 들어오면서 무대는 멋진 마술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안배를 보여준다.
마네킹 두명이 서있는 의상실에 새내기 도둑이 들어와서 뭔가를 훔치려 하려다 연륜이 있는 도둑이 들어오는 바람에 의상실에서 둘만의 밤을 보내게 된다. 어렵사리 금고를 찾아서 털고, 돈을 나누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서로간의 애환과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다 둘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술이 가져다준 취기는 의상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재기 발랄한 두 마네킹은 그들의 흥을 돋군다. 이때 들어온 경비, 상황은 급박하게 이어지고, 촌스러움과 사명감이 잘 어우러진 경비가 쇼의 막판 분위기를 한껏 살려 놓는다.
<마술가게>는 그 명성 그대로 즐겁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또 중간중간에 들어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관객에게 속 후련함을 느끼게 해주며,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다.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뚜룩질’을 하는 상류층 큰 도둑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자잘한 좀도둑들만 잡아들인다는 그들의 푸념을 듣고 있노라면 마네킹이 춤을 추는 마술가게나 현실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시기적절한 노래를 택한 음향이나, 배우의 동작과 대사에 긴박감을 주는 조명효과, 너무 연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안배한 의상, 이런 스탭들의 작업들이 극을 한층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소극장 무대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단점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여, 각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충분히 활용한 연출 류경호의 역량은 칭찬할만 하다. 다만 <마술가게>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처럼, 무대장치에서 뭔가 마술처럼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보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일까?
배우의 호흡은 최상이다. 쇼를 이끌어 가는 노련미가 보이는 불나비 역의 임형택과 젊은 열기 탓에 무대를 화끈하게 누비고 다니는 찬바람 최지훈의 가끔 보이는 오버 액션(over-action)이 약간 거슬리기는 하나 그들의 호흡은 아주 적절하다. 아마도 이 극중에서 가장 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역할을 집어내라 하면 마네킹 연기를 하는 두 여배우가 아닐까 한다. 유연한 몸짓과 손짓, 걸음걸이가 균형 잡힌 홍지예, 그리고 동작이 약간 거칠지만, 강한 개성을 느끼게 하는 류지애. 이 두 배우는 극 속에서 모델도 하고, 오빠부대 역할도 하고, 에피소드 안으로 들어와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기였으나, 앞에서 말한 마술적인 면모를 감안한다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는 이 두 여배우에게 더 폭넓은 연기 재량권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두 도둑이 노래할 때 백댄서의 역할이나, 사회 지도층의 연기를 할 때, 상자 속에 갖혀있기 보다는 무대 정면 쪽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역할 등) 마지막으로, 소박한 꿈을 안고 가장 서민적으로 살아가는 경비가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도둑으로 변해버린 설정은 원작에서 느끼는 경비에 대한 소시민적 동질감과 연민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연출의 의도가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창작소극장 개관 십주년 기념공연 <마술가게>는 재미있다. 깔끔한 연출, 아기자기한 무대, 오랜만에 본 탄탄한 연기력,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 - 이 모든 것이 재미를 한층 더 하게 해준다. 도둑의 꿈으로 가득한 마술가게에서 일어나는 마술 같은 이야기. 기분 좋게 나올 수 있는 연극이었다.
ju40444k@dreamwiz.com
마술을 파는 가게는 없을까? 그 마술가게를 발견했다. 경원동에서. 대낮에도 어둑어둑하고,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에서 무려 십년이란 세월동안 전북연극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창작소극장. 그 곳에서 소극장 개관 십주년 기념으로 마술가게를 열었다. 그 마술가게의 주인은 오랫동안 이 창작소극장을 지켜온 류경호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 고급의상실에서 벌어지는 마술쇼였는데 마술사들은 임형택, 류지애, 홍지예, 임정용, 최지훈 등이였고, 그들은 재치있고, 신비스러운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흘리는 땀방울 하나 하나가 마술이 되어 관객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극이 시작되기 전의 무대는 두벌의 흰 드레스가 걸려있을 뿐 썰렁하다. 그러나 조명이 들어오면서 무대는 멋진 마술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안배를 보여준다.
마네킹 두명이 서있는 의상실에 새내기 도둑이 들어와서 뭔가를 훔치려 하려다 연륜이 있는 도둑이 들어오는 바람에 의상실에서 둘만의 밤을 보내게 된다. 어렵사리 금고를 찾아서 털고, 돈을 나누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서로간의 애환과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다 둘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술이 가져다준 취기는 의상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재기 발랄한 두 마네킹은 그들의 흥을 돋군다. 이때 들어온 경비, 상황은 급박하게 이어지고, 촌스러움과 사명감이 잘 어우러진 경비가 쇼의 막판 분위기를 한껏 살려 놓는다.
<마술가게>는 그 명성 그대로 즐겁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또 중간중간에 들어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관객에게 속 후련함을 느끼게 해주며,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다.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뚜룩질’을 하는 상류층 큰 도둑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자잘한 좀도둑들만 잡아들인다는 그들의 푸념을 듣고 있노라면 마네킹이 춤을 추는 마술가게나 현실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시기적절한 노래를 택한 음향이나, 배우의 동작과 대사에 긴박감을 주는 조명효과, 너무 연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안배한 의상, 이런 스탭들의 작업들이 극을 한층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소극장 무대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단점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여, 각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충분히 활용한 연출 류경호의 역량은 칭찬할만 하다. 다만 <마술가게>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처럼, 무대장치에서 뭔가 마술처럼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보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일까?
배우의 호흡은 최상이다. 쇼를 이끌어 가는 노련미가 보이는 불나비 역의 임형택과 젊은 열기 탓에 무대를 화끈하게 누비고 다니는 찬바람 최지훈의 가끔 보이는 오버 액션(over-action)이 약간 거슬리기는 하나 그들의 호흡은 아주 적절하다. 아마도 이 극중에서 가장 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역할을 집어내라 하면 마네킹 연기를 하는 두 여배우가 아닐까 한다. 유연한 몸짓과 손짓, 걸음걸이가 균형 잡힌 홍지예, 그리고 동작이 약간 거칠지만, 강한 개성을 느끼게 하는 류지애. 이 두 배우는 극 속에서 모델도 하고, 오빠부대 역할도 하고, 에피소드 안으로 들어와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기였으나, 앞에서 말한 마술적인 면모를 감안한다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는 이 두 여배우에게 더 폭넓은 연기 재량권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두 도둑이 노래할 때 백댄서의 역할이나, 사회 지도층의 연기를 할 때, 상자 속에 갖혀있기 보다는 무대 정면 쪽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역할 등) 마지막으로, 소박한 꿈을 안고 가장 서민적으로 살아가는 경비가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도둑으로 변해버린 설정은 원작에서 느끼는 경비에 대한 소시민적 동질감과 연민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연출의 의도가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창작소극장 개관 십주년 기념공연 <마술가게>는 재미있다. 깔끔한 연출, 아기자기한 무대, 오랜만에 본 탄탄한 연기력,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 - 이 모든 것이 재미를 한층 더 하게 해준다. 도둑의 꿈으로 가득한 마술가게에서 일어나는 마술 같은 이야기. 기분 좋게 나올 수 있는 연극이었다.
ju40444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