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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 |
발효식품은 삶이다
관리자(2009-09-03 13:59:58)
발효식품은 삶이다 살아있음과 공존의 미학(味學),발효식품 전승훈 마당 기획실 세계적으로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 전통의 발효식품은 이제 세계인이 인정하는 건강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 현실. 전주에서도 오는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2009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가 열린다. 민족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발효식품. 이번 행사를 계기로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발효식품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할 때다. ‘기막힌’음식, 통조림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관건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존재, 바로 미생물을 얼마나 억제하 느냐에 달려있다. 요즘처럼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는 시원한 냉장고에 보관해서 미생물의 번식을 막는 방법이 있고, 불 (火)을 이용해 미생물을 죽이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밀폐상 태로 만들어서 미생물의 출입을 막는 방법도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바로 통조림을 만드는 방법이다. 가게에 놓인 여러 가지 통조림을 살펴보자. 밑바닥에 쓰여 있는 유통기한을 확 인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통기한이 무려 10년 가까운 시간 이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음식을 통조림은 가능케 한다. 동네 구멍가게에 이따금 있을법한 겉면에 녹이 슨 통조림도 마찬가지다. 내용물은 처 음 상태 그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쯤 되면 통조림은 강 철보다 강한 음식을 만드는 마술깡통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을 멀쩡한 음식. 통조림은 그야말로‘기가 막힌’방법이다. 통조림을 만드는 방식으로 음식을 오랜 시간동안 보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조림에는 앞서 설명한 문명시대 의 방식 중에서 불(火)을 사용한 가열방식. 그리고 밀폐상태 로 보관하는 방식, 두 가지가 사용되었다. 먼저 가열을 통해 음식물에 남아있는 미생물들을‘살균’한다. 그 다음으로 살 균된 상태의 음식을 밀폐상태로 보관해 다른 미생물의 출입 을 막는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통조림의 기발한 방식에 감탄을 하다가도 한 편으로는 씁쓸해진다. 이 방식은 다른 것에 대해 철저하게 배척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살균을 통 해 죽이고 밀폐를 통해 막아버리는 방식. 그 안에서 안전하 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는 음식이라면, 글쎄 그것이 결 코 살아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미생물들과의 완벽한 하모니! 발효식품 우리나라에도 대대로 내려오는 장기 음식 보관법이 하나 있다. 바로 발효를 통한 보관이다. 김치나 된장, 그리고 각종 젓갈이나 막걸리로 대표할 수 있는 이 발효식품들은 여전히 우리의 미각(味覺)을 자극하는 훌륭한 음식이다. 물론 이들의 유통기한은 통조림에 비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발효식품의 매력은 앞서 말한 통조림과 달리 살아있는 음식 이고, 공존을 원리로 한 음식이라는 것에 있다. 물론 발효의 방식은 결코 현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현대적인 방식이 미생 물을 어떻게든 막는 것에 있다면 발효의 방식은 오히려‘살리 는 것’에 있다. 어떻게 하면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좋은 미생 물이 더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한 음식이 발효식품인 것이다. 먼저 김치를 보자. 김치는 무, 배추, 오이 등을 소금에 절 여서 고추, 마늘, 생각, 젓갈 등의 양념을 넣고 버무린 음식 이다. 그런데 이 김치의 맛은 이런 재료와 양념이 아닌 시간 이 만들어준다. 물론 갓 버무린 겉절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김치의 깊은 맛을 느끼고 싶다면 잠 시 김칫독 뚜껑을 덮어두는 것이 좋다. 뚜껑을 덮어도 겉면 을 통해 미세한 공기가 통하는 항아리는 발효가 되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치 속에는 젖산 균이라는 미생물이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미생물들은 우 리 몸에 좋은 유기산과 방향(芳香)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 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치의 맛이 생겨나게 된다. 김치의 깊은 맛은 원재료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닌, 재료 와 미생물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낸 환상의 하모니다. 된장은 어떠한가? 우리의 전통 재래식 된장은 콩으로 만든 메주와 보리죽, 마른 고추를 넣어 담근다. 가을철에 메주를 만들어 발효시켰다가 이듬해 이른 봄에 된장을 담그는데, 여 기에서도 미생물들이 큰 역할을 한다. 복합균, 곰팡이, 효소 등이 작용하여 혈전용해능력, 항암효과 등 각종 효능이 뛰어 난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젓갈이나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재료만으로는 아 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그 시간동안 함께 살아 숨 쉬는 미생물들이 훌륭한 건강식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발 효식품의 매력이다. 살아있음과 공존의 방식. 그것이 우리 전통의 발효(醱酵)다. 우리 민족을 닮은 음식 그러나 발효식품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 민족을 닮은 음식 이라는 점에 있다. 앞서 통조림을‘기막힌 음식’이라고 표현 한 이유로 철저하게 배척하는 음식이라는 점을 들었다. 내용 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다른 것들을 죽이고, 막는 방식을 쓴 다는 점은 개인주의 풍토나 빈부(貧富)의 격차, 그리고 소통 발효식품은 삶이다 이 부족한 요즘의 사회상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우리의 발 효식품은 살아있음을 인정하고 공존의 방식을 택한다. 국조(國祖) 단군왕검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무엇이 아닌, 모 든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이념. 우리의 발 효식품은 그 모습을 닮아있다. 어쩌면 장기 보관이라는 전제 만 두고 봤을 때는, 원재료를 최대한 그대로 살리는 방법이 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서로 기질이 다른 두 가지. 원재료 속에서 미생물의 살아있음을 인정하고 공존의 방법을 택할 때 우리의 발효식품은 완성된다. 이를 통해서 원재료는 다소 원래의 모습을 잃기도 하지만 공존의 결과를 통해 건강한 음식으로 재탄생한다. 이쯤 되면 우리 민족이 대대로 이어온 발효(醱酵)의 목적 이 과연 장기보관에만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 다. 그렇다. 우리 민족이 발효(醱酵)를 오랜 역사동안 이어온 이유는 결코 오래두고 먹자는 장기 보관의 목적만은 아닐 것 이다. 김치, 된장, 그리고 젓갈과 막걸리 같은 발효식품은 널 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했고, 살아있음과 공존의 방식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맛깔스러운 증명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발효음식에 대한 관 심이 줄어들었다. 바쁜 일상과 이를 위한 간편한 식사를 선 호하는 요즘, 오랜 시간을 두고 잔잔한 기다림을 필요로 하 는 발효식품은 한물 간 촌스러운 음식마냥 취급되기 일쑤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줄어드는 사이에 우리의 삶도 조금 더 각박해진 것은 아닐까? 발효식품에 대한 관심은 비단 먹고 사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발효식품 속에는 철학(哲學)이 담겨있다. 남 을 살리려는 생각, 다른 것들과 함께 하려는 생각, 오래두고 기다리는 생각.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발효식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의 발효식품에 대해 단지 맛이라고만 표현하는 것은 다소 겸손하다. 맛을 통한 삶의 미학(味學). 이것이 발효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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