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 |
[신화이야기] 한국의 신화를 찾아서
관리자(2009-09-03 13:58:46)
잊혀져가는 신화, 우리에겐 역사다
정인혁 전북대학교 인문한국 쌀·삶·문명 연구원, HK연구교수
신화란 어떤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승적 설화 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 그리스 로마신화 등이 그것이다. 신화는 픽션이 아닌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태고의 현실에 대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대부분 의 신화는 보편적인 종교적 신앙을 사용해 자연 세계는 어떻게 형성됐으며, 왜 현재와 같이 작용하는 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신화는 모든 공동체와 종족, 민족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 할을 한다. 신화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믿음의 원형.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곁에 자리한 신화. 하지만 우 리는 신화라고 하면 단군신화와 삼국의 건국신화, 그리스·로 마신화 정도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단편적으 로 알아왔던 신화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하고 다채 롭다. <신화이야기>는 한국신화와 서양신화에 대해 그동안 알 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만난다. 전주시 평생학습 센터에서 유쾌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던 정인혁, 이해경이 들 려주는 <신화이야기>. 한국신화를 통해 우리 선조들과 다시금 호흡하고, 서양신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좀 더 재미있 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화(神話)? 신화라고 하면 <단군신화>,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등등 우리 옛 왕조의 건국신화를 비롯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의 몇몇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막상 신화를 정의하려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신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신화에 대한 정의는 신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만큼이나 여럿 존재한다. 제의학파 는 실제 생활 속의 의례와 관련하여 신화를 정의하고 자연신화학 파는 신화를 자연을 포함한 세계와 관련된 인간 사고방식의 기저 로 해석한다. 신화인류학자들은 고대 인류의 사유 체계와 그로부 터 실현되는 생활방식의 흔적으로 신화를 이해하고 신화사회학자 들은 신화시대 당대인들의 사회 형성에 신화가 어떤 기능을 수행 하였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신화를 바라본다. 이렇게 신화에 대한 정의가 다양한 것은 신화가 다양한 측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설화 신화는 전설, 민담과 함께 대표적인 설화 가운데 하나이다. 설 화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문학 가운데 줄거리를 갖고 있 는 이야기를 뜻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는 것은 글자로 기록하 여 이웃 간에, 또 할머니와 손자 간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전하는 것이다. 어릴 적 화톳불 앞에서 고구마며 밤을 까먹으며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이야기 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들이 구비문학이고 설화이다. 설화 가운데 하나인 전설은 신이 아닌 존재, 즉 인간과 동물, 사물, 그리고 인간도 동물도 아니지만 신성한 신도 아닌, 귀신의 이야기이다.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신이 신성한 믿음 가운데 존재하는 것과 달리,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은 언뜻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설화는 이야기의 뼈대는 같지만 이야기하는 사 람마다 내용이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면서 변화한다. 같은 구미호 이야기라도 우리 할머니와 옆집 할머니의 이야 기가 조금씩 다른데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구비문학, 설화 의 유동성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구미호 이야기가 정답인지 는 며느리도 모른다. 왜냐하면 설화는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따로 없는, 그렇기에 이야기해주는 모두가 작가인 집단 창작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 은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또 글자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 지금까 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설화라고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베트스셀러이자 스테디셀러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재미가 없다면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 고 사랑받지 못했다면 기억하여 손자에게 들려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화는 우리 민족이 가장 아끼고 사랑한 재미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그 이야기 속에 우리 민족의 기쁨과 슬픔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증거와 방법까지 제시해주는 전설 설화 가운데 하나인 전설은 신이 아닌 존재, 즉 인간과 동 물, 사물, 그리고 인간도 동물도 아니지만 신성한 신도 아닌, 귀신의 이야기이다.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신이 신성한 믿음 가운데 존재하는 것과 달리,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은 언 뜻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설은 증거를 대고자 한다. 정 말 신기하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실 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학교 경비아저씨가 바뀌 었다. 옆 반 아이가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전학을 가버렸 다. 그런데 이들이 떠난 이유는 학교 건물 앞에 서있는 책 읽 는 소녀의 동상이 어두운 밤 학교를 배회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란다. 동상이 움직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그것 을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 다. 그렇지만 경비아저씨가 바뀐 것도 사실이고 옆반 친구가 갑자기 전학을 간 것도 사실이다. 이 사실들 때문에 동상이 걸어다니고 그 동상을 보면 저주에 걸린다는 이야기는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전설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책 읽는 소녀의 동상은 학교 개교기념일, 예를 들 어 4월 4일 자정마다 살아난다는 것이다. 정말 동상이 움직 이는지, 그것을 보면 아프거나 죽는지 확인할 사람은 4월 4 일 아무도 모르게 자정에 학교에 오라! 당신은 가 볼 것인가? 그러고 나서 다시 살펴보면 경비아저씨를 잡아먹은 동상의 입가엔 무엇인지 모를 붉은 자국이 있는 듯도 하다. 권선징악의 교훈을 전하는 민담 민담은 전설과 달리 특정한 장소나 시간, 증거물이 없이 어떤 교훈적인 주제를 형상화한 이야기다. 인간이라면 누구 에게나 통용될 도덕과 가치를 담고 있기에 민담의 주인공은 어디에서 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존재로 그 려진다. 권선징악의 교훈을 전하는 콩쥐와 팥쥐 이야기도 판소리계 소 설로 전해지지만 애초에는 설화, 그 가운데 민담으로 전해지던 것이 다. 콩쥐와 팥쥐의 이름을 보면, 쥐 는 원래‘조△ㅣ’였는데, 이는 일반 적인 가정에서 딸의 이름 끝에 붙 이던 관습이다. 어머니들 이름 끝에‘자’자가 많이 들어있는 것처럼. 거기에 흔히 볼 수 있던‘콩’과‘팥’을 더하여 이름 을 지었다. 그러니 콩쥐와 팥쥐라는 인물은 실제 인물은 아 니지만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들로 다가온다. 그래야만 어려 운 교훈을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민담은 흔히 이렇게 대비되는 두 인물에 선과 악의 대표성을 부여하 여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전한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교훈은 인류에게 공통되므로 비 슷한 내용의 민담은 세계 각국에 존재한다. 익히 알고 있듯 이 콩쥐의 서양판 이름은 신데렐라이다. 다만 민족마다 갖고 있는 저마다의 문화적 차이가 세부적인 사항에 반영되어 있 을 뿐이다. 콩쥐는 독에 물을 채우고 꽃신을 신는 반면, 신데 렐라는 벽난로의 재를 떨고 유리구두를 신는다. 가깝고도 먼 신화와 종교 전설, 민담과 달리 신화는 신에 관 한 이야기이다. 신화는 신이란 존재 의 성격, 신이 창조한 우주와 세계, 그리고 인간,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 등등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종교란 인간을 초월 한 존재, 즉 신이라는 존재를 기반으 로 성립한다. 우주와 세계, 그리고 인간의 창조, 인간사의 관장, 인간의 미래를 좌우하는 신의 존재가 있어야만 인간은 우주와 세계,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 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며, 미약한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는 종교와 같지 않다. 종교가 때로는 인간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신화는 최소한의 이성 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다음은 남아메리카 테네 테하라족의 신화이다. 젊은 인디언 여자가 뱀을 만나 연인이 되고 그 뱀의 아이를 낳았 다. 뱀 아이는 날 때 이미 청년이었는데 매일 밤 어머니의 자궁으 로 기어들었다. 여자의 오빠는 이 일을 알고는 여동생에게 아들이 나가면 몸을 숨기라고 하였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없었다. 아들은 할아버지 뱀에게 어 찌 하면 좋을지 물었다. 할아버지 뱀은 아버지 뱀을 화살로 잡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하늘로 올라가 화살을 부러 뜨렸다. 부서진 화살은 별이 되었 다. 거미 한 마리만이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뿐 모두들 잠들어 있었 다. 그렇기에 거미는 죽지 않게 되 었다. <테네테하라족의 신화> 테네테하라족의 신화에는 몇 가지 상징적인 요소들이 보이는데, 먼저 뱀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으로 기어드는 것은 일종의 근친상간 행위이다. 계속되 는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몸을 숨긴다. 뱀 아들은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보고 당황한다. 뱀 아들은 할아버지 뱀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한다. 할아버지 뱀 은 아버지 뱀을 화살로 잡으라고 가르쳐준다. 뱀 아들과 어 머니의 관계가 근친상간이었다면 아마도 근친상간을 막는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 때문이라는 관념이 게재되어 있다. 그 렇기에 모자간의 근친상간을 막는 주체인 아버지 뱀을 죽여 야만 근친 관계가 회복되리라는 할아버지 뱀의 계책이 등장 한다. 뱀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 앞에서 지혜 로운 할아버지 뱀의 계책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아버 지 뱀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뱀 아들은 아버지 뱀을 죽이지 않는다. 뱀 아들은 하늘 로 떠나가 활을 부러뜨려 버린 다. 욕망을 절제하는 순간이다. 화살은 별이 되고 그 숭고한 장 면을 바라본 거미는 영생을 얻 는다. 욕망을 위해 비이성적이 고 비합리적인 행위의 극단을 넘지 않을 때 죽지 않을 수 있다 는 관념을 신화는 보여주는 것 이다. 신화는 전설과 달리 특정한 증거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화에서 설명하는 우주와 세계, 인간, 그리고 국 가 등의 증거는 바로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땅과 태양과 달,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온 오늘날의 대한민국, 그리고 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화를 신화로서 바라보기 신화는 민담과 달리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지 않는다. 신화 는 그 신화에서 설명하는 신과 그 신의 활동에 대한 믿음으 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환웅과 웅녀가 우리 민족의 어버이이 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들은 신성한 존재로서 여겨지지만 다 른 민족, 바로 옆 나라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에게는 대한민 국 사람들의 신화일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화가 전설이나 민담과 다른 것은 그 러한 신과 신에 의해 이루어진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는 점이다. 신이 어떤 존재인지, 우주와 세계와 인간이 어떻 게 창조되었는지, 국가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설명하는 것 이 신화이다. 그래서 신화에는 그 설명하는 내용에 따라 다 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어떻게 세상이 창조되었는지 설명하 는 신화를 창세신화라고 한다. 고대 국가가 어떻게 건국되었 는지 설명하는 것은 건국신화라고 한다. 무속의 신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속신화라고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생산물기원신화라고 한다. 그 외에도 신 화는 신과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 현상과 사물들, 우 리 습속의 기원과 관련한 것들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신화는 역사와도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가 하늘 로부터 온 환인의 아들 환웅과 곰이 인간으로 변한 웅녀 사이 에서 태어난 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안다. 고조선의 건 국 과정을 설명하는 <단군신화> 덕분이다. <단군신화>에 대 한 역사적 설명도 많이 있는 바, 이성적 차원에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도 있다. 하늘로 상징되는 북방에서 이 주해온 새로운 이주집단인 환인족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될 때 이미 한반도에는 곰을 숭상 하는 집단과 호랑이를 숭상하 는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환인족은 선주집단인 이들을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파 트너로 삼았다. 그런데 곰족과 호랑이족 가운데 어떤 집단을 선택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환 인은 몇 가지 시험을 통해 곰족을 파트너로 맞이하였다. 환인 은 곰족의 수장인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 그런데 <단군신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환인과 환웅 부 자뿐 아니라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이다. 웅녀는 환인의 집단 이 이주해 오기 전, 한반도에 거주하던 선주집단의 중심이자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곰족의 핵심이자 상징인 웅녀, 곰에 관한 신화도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아 있 는 웅녀의 신화는 <단군신화>에 삽입된 것밖에는 없다. 재 미있는 것은 곰녀와 관련된 이야기가 충남 공주의 곰사당에 얽힌 곰나루 전설로 남아있다.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부는 연미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남편을 구하던 암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암곰은 농부를 데려가 동굴에 가두었다. 암곰은 농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럭저럭 암 곰과 농부 사이에는 애정이 싹텄다. 이윽고 암곰과 농부 사이에 새 끼곰이 태어났다. 암곰은 안심하고 막았던 동굴을 열고 밖으로 나 가 먹을 것을 구했다. 암 곰이 나간 사이 농부는 달아났다. 암곰은 새끼곰 을 안고 농부를 쫓아왔다. 농부는 강을 건너버렸다. 암곰은 울다울다 새끼곰 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 졌다. 그래서 그곳은 곰나루가 되었다. <충남 공주군 곰나루 전설> 우리 시조 단군의 어머니가 된 웅녀의 이야기는 <단군신화> 속에서 단군을 낳는 여인의 조연에 그치거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비극적 전설의 주인공으로만 남아있다. 위대한 어 머니로서의 곰녀 이야기는 정작 내몽골 홍안령 지역의 에벤 키족 시조신화에 남아있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집단의 파트 너로서 선택되었지만 실질적인 정치력을 잃은 집단의 신화 는 이렇게 먼 곳에만 남아있거나 비극의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정치적이기도 하다. 신화는 종교, 철학, 역사, 정치, 또 설화 문학으로서 이해 할 수 있다. 그만큼 신화가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 다. 그러나 그렇기에 신화는 신화로서 바라볼 때 가장 신화 다울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시각으로 신화를 재단하지 않을 때 신화는 우리에게 무수한 측면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