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 |
[환경]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관리자(2009-09-03 13:58:18)
내 안에 몸을 돌보는 힘
해 질 무렵, 집 뒷밭에서 고추를 돌보는데, 이웃 트럭이 우리 집으로 들어 온다. 그러더니 남편이 우리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간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내려와 트럭을 보니 앞 유리창이 깨졌다. 가슴이 털컹한다. 남편과 전화를 하니 군 의료원 응급실로 가고 있단다. 트럭과 자전거를 탄 우리애가 정면충돌했단다. 뒤쫓아 가니 아이는 치과에서 수술 중이다.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보니 붕대를 감고 핏자국이 얼룩졌지만, 자기 발로 걸어오더니 나를 안아준다.
건강의 자급자족
자급자족하며 살려고 할 때, 가장 큰 위협 가운데 하나가 몸이 아픈 것 이다. 그래서 자기 건강은 스스로 돌보려 노력하지 않으면 자급자족은 없 다. 한마디로‘건강의 자급자족’. 그 덕인지 우리 식구가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몸의 기운이 나빠지면 되도록 먹지 않고 푹 쉰다. 평소 잘 먹고, 틈틈이 운동을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식구 서로서로가 쑥뜸을 떠주거나 돌봐준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일어나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돌아오는 차 뒷자리에 앉 아 아이 머리를 무릎 위에 얹고 다친 상처를 손으로 살며시 감싸 안았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아픈 배에 손을 얹고 살살 문질러 주듯이. 아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을 손에 담 아 아이 몸에 전해주려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 자리를 안방으로 옮겼다. 밤에 무슨 일이 생겨도 아 이가 쉽게 나를 찾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치과에서 일러준 대로 죽을 끓 여 빨대로 빨아 먹이고, 수건을 찬물에 적셔 냉찜질도 해 주었다. 인터넷 에 들어가 관련 정보를 찾았다. 일단 큰 병원에 입원하라는 충고, 타박상 에는 처음 사흘은 냉찜질 그 뒤에는 온찜질이 좋다는 정보, 트럭 차체와 부닥친 것보다 유리창이 깨지며 충격을 흡수해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가 속이 미식 거린다며 머리맡 에 바가지를 하나 놔 달란다. 빨간 경고등이 켜지는 기분이다. 어쩌나. 네 티즌의 충고대로 지금이라도 큰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나.
잠시 망설이며 아이 상태를 살펴보니, 아이 발이 차다. 갈 때 가더라도 먼저 아이 발부터 따뜻하게 해주기로 했다. 아 이를 낳고 기르면서 아플 때면 발부터 따뜻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종아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혈 자리를 짚어가면서 정성스레 만지고 비벼주니 발이 따뜻 해져 간다. 아이 발을 이렇게 만지다 보니 아이 몸이 느껴진 다. 오래전 내가 시름시름 아플 때 배웠던 기 치료법. 그 기 치료법에 따르면 한 사람이 다른 이의 몸에 손을 대고 집중 을 하면 어느 정도 그 몸의 상태가 느껴진다고 한다. 게다가 엄마와 자식 사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내 안에는 나를 돌보는 힘이 있다 한 때는 내 몸이었던 아이 몸, 그 몸을 어루만지며 내 몸 에서 나타나는 느낌에 집중을 했다. 내 옆머리가 묵직하면 아이 옆머리를 어루만져 풀어주고, 내 잇몸이 화끈거리면 아이 잇몸 있는데 손을 대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려 했다. 한참을 둘이서 하다 보니 아이가 편안해졌다. 그렇게 그 날 밤을 넘겼다. 다음날, 군 의료원에 다시 갔다. 의사 선생님이 상처를 치료하는 걸 보니 소독약을 바르고, 연고를 바른 뒤 붕대를 대주는 정도다. 그 가운데 눈 위 상처는 살점이 떨어져 나 간 거라 흉터가 생기겠다며 날마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하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 상처는 내 힘으로 치유하 고 싶었다. 쑥 간접 뜸으로. 쑥으로 간접 뜸을 뜨면 쑥이 타 면서 소독을 하고, 상처의 혈액순환을 도울 뿐 아니라, 쑥 진이 상처 위에 내려앉는다. 이 쑥 진은 얇은 막과 같아 상 처를 보호하면서도 공기가 잘 통해 웬만한 연고보다 좋다. 이와 함께 상처에서 진물이 그칠 때까지 흡습성 드레싱을 상처 위에 붙이기로 했다. 아플 때는 고요하게 쉬는 게 가장 좋다. 쉬려면 굶는 게 가장 좋지만, 아이가 수술을 한 뒤라 항생제를 먹어야 한 다. 그래서 가볍게 죽을 먹으며 식구 모두 고요하게 시간을 보냈다. 마당의 당근을 뽑아 당근죽, 깨를 갈아 넣고 깨죽, 잘 익은 단호박을 따내 호박죽…. 우리가 가꾼 먹을거리들 이 아이 몸에 약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랬는데도 이튿날 저녁 불을 끄고 자려는데 아이가 다 시 속이 미식거리며 어지럽단다. 다시 아이 몸을 어루만지 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 날은 아이가 다친 왼쪽만이 아니 라 오른쪽 전신이 온통 아프다. 오른쪽 턱관절, 어깨, 넓적 다리까지…. 아이도 엄마와 통하는 게 느껴지나 보다. 둘이 ‘뒤엉킨 기혈을 바로잡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모았다. 이웃들이 소식을 듣고 와주었다. 죽을 끓여와 주어 그 따 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치료의 도움말을 들려주 기도 했는데, 겉으로 나타난 외상보다 충격으로 인한 보이 지 않는 몸의 변화에 눈을 돌려야 한단다. 그 말을 듣더니 아이가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더니“정말 목과 어 깨가 안 좋네!”앞으로 스트레칭을 정성껏 해 보겠단다. 그 래 치유는 되도록 자기 스스로 하는 게 좋지. 게다가 그 방 법이 운동이나 생활습관을 바로 잡는 것이라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사고가 난지 여러 날이 지나 수술 자리에 실밥도 풀어 한 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느낌이다. 군 의료원과 치과 의료진 들 덕에 응급한 불은 끌 수 있어 의료기관의 고마움을 느낀 다. 그리고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 큰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 치유해 보려 했던 나 자신에게도 칭 찬을 듬뿍 해주고 싶다. 이번 일로 아이도 나도 자기 몸에 대해 좀 더 배우고 내 안에 몸을 돌보는 힘이 살아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장영란 산청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지난 98년 무주로 귀농하여 온 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자연에서 느낀 생각을 담은『자연그대로 먹어라』,『 자연달력제철밥상』『, 아이들은자연이다』등여러권의책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