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 |
[신귀백 영화엿보기] 우디 앨런의 호접몽
관리자(2009-09-03 13:57:15)
우디 앨런의 호접몽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경기도 어려운데다 해외여행에 들어가는 목돈이 없는 사람에겐 에어컨 빵빵한 멀티플렉스가 그나마 사치다. 러닝타임 전반전이 넘도록 오지 않는 쓰나미를 보기 위해 몇 천원을 투자해 <해운대>를 보러가는 한국 관객이 그렇고, 기나긴 불황을 견디던 1930년대의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금주법과 마피아로 상징되는 1930년대는 미국 영화의 단골 소재. 최근 개봉한 조니 뎁의 <퍼블릭 에너미>에서 형사들은 라디오를 통해 베비 루스의 야구중계를 듣고 갱 두목 조니 뎁은 강박관념을 잊기 위해 자주 극장을 찾는다.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역시 30년대 꿈도 없이 살아가는 미국 사람들을 그린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시대 배경 말고도 주인공이 극장에서 삶의 피로를 푼다는 것. 애들 영화가 아니지만, 이 영화는‘영화 속 인물과 함께 한다면 혹은 내가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된다면’하는 소박함에서 시작한다.
세 실 리 아 의 호 접 몽
덩치만 크지 동전치기나 하는 실업자 남편에게 번 돈을 꼬박꼬박 바치는 웨이트리스 세실리아 (미아 패로우)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영화다. 스타들의 사생활에 관한 가십을 늘어놓다 그릇을 깨뜨리기 일쑤여서 정리해고 1순위인 그녀는 퇴근 후 남편에게 밥 차리기가 무섭게 곧바로 극장 으로 달려간다. 현실은 남루 그 자체지만 극장의 도리아식 기둥과 계단 그리고 라운지의 화려한 동선 등 영화관은 오래된 메타포대로 꿈의 궁전이다. 팝콘 한 봉지를 사들고 화면 속 멋진 배우 들이 보여주는 로맨스와 상류층의 화려한 의상과 판타지를 좇다 보면 남편의 술주정도 자신의 누추한 삶도 모두 잊을 수 있는 것. 그래서 그녀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고 또 본다. 그러 니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인 셈. 간절하면 통한다던가? 다섯 번째의 영화관람 시 기적이 일어난다. 영화 속 주인공 모험가 톰이 맨하튼의 고급주택으로 돌아온 스크린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말을 건넨다. “당신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군”흑백영화 속 인물이 튀어나와 현실의 세실리아와 마주치는 순간 흑백의 주인공 톰 은 컬러로 변한다. 조니 뎁 같이 잘 생기고 매너 좋은 주인공 남자랑 함께 하는 것은 1930년대만이 아니라 오늘 날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작은 판타지다. 톰과 그녀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무도 회에서 춤을 추지만 영화 속 마이너캐릭터(영화 속 표현대로)들이 공황에 빠지는 소동이 일어난 다. 극장 역시 영사기를 끄면 주인공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영사기를 끄지도 못하는 넌센스를 감 독은 태연하게 재현하는데. 톰이 키스를 하면서“왜 페이드 아웃되지 않는 거지?”라고 묻는 대목 이나 톰이 내는 돈은 가짜이고 그가 던지는 주먹에는 힘이 없는 것(그는 영화 속‘캐릭터’이기에) 을 보면 이것은 판타지이자 현실인 것. "내 평생 궁금했던 건 영화 속 세계"였다고 말하는 세실리아에게,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캐 릭터 톰은 "인생에 대해 생각하며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며 세실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흔들리는 그녀. 정신 나간 아내에게 곰탱이 남편 몽크는 갈 테면 가라고 소리치는데, 대공황을 견디면서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이다. 결국 할리우드에선 이 소동을 수습하기 위해 톰을 연기한 진짜 배우‘길’을 파견한다. 영화 속 주인공과 주인공을 동경하는 여인과 그녀의 마을을 찾아온 진짜 배우 사이의 삼각관계 소동을 벌이는 것이 우디 알렌의 동화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살자”는 톰에 이끌려 그녀는 잠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지만“할리우드로 가자”는 길의 설득에 그녀는 처음으로 행복한 갈등 에 빠진다. 이런이런, 잘 생긴 영화 속 남자와 영화에 출연한 진짜 남자가 등장해서 서로 자기를 선택하 라니! 장자 선생 식으로 말하자면, 꿈속의 꿈이 아니라 현실 속의 꿈이요, 꿈속의 현실이라는 것. 결국 영화냐 현실이냐에 고민하던 이 신데렐라는 환상은 환상이라며 길버트 즉 현실을 택하 지만 그녀는 비극에 발을 담그는 것. 이 불쌍한 여인에게 거짓말을 한 배우 길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시 괴로워한다. 그의 씁쓸한 표정은‘할리우드’라는 자본에 집착하는 현실과 영화 제작에 참여한 감독이나 영화관계 자의 숨겨진 표정 같은 것은 아닐지? 그리고 구두 대신 작은 기타를 든 현실도피녀 세실리아는 남루한 일상으로 복귀하여 새로운 프로가 상영되는 극장에 앉아 있다. 안타까운 엔딩이다. 생각 없이 영화 보는 소시민들에 대한 야유의 메시지라면?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렇다고 웃 자고 우디 알렌이 이 메타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터. 영화 매체의 일방성에 대한 경고를 넘어 영화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 같지만 우리가 땅을 딛고 서는 현실의 고통과 영화 속 장면들은 서로가 충돌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 아닐까? 때론 갈증과 결 핍을 느끼고 때론 향수와 만족감에 젖으면서 영화는 점점 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우리 역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
이런이런, 잘 생긴 영화 속 남자와 영화에 출연한 진짜 남자가 등장해서 서로 자기를 선택하라니! 장자 선생 식으로 말하자면, 꿈속의 꿈이 아니라 현실 속의 꿈이요, 꿈속의 현실이라는 것. 결국 영화냐 현실이냐에 고민하던 이 신데렐라는 환상은 환상이라며 길버트 즉 현실을 택하지만 그녀는비극에 발을 담그는 것.
우 리 앨 런 의 생 애 속 으 로 들 어 가 보 고 픈 …
영어를 모르고 자막에 의존하는 알렌의 영화를 보고나면 피곤하다. 영화 속 그림과 자막을 따라가기에 워낙 대사가 속사로 쏘아대기에(그의 영화 포스터 역시 그림보다는 문자가 많다). 각본 감독에 자신이 출연까지 저지르는 대단한 이야기꾼 앨런은 이 영화에서는 출연하지 않으 셨다. 아마 고전극에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모양. 30년대는 미남의 시대 였으니까. 키 작고 말 많으며 주의산만한 인간(캐릭터) 우디 앨런은 숱이 빠지는 머리 아래 커다란 안경 속에 든 선량하고 소심한 눈에 긴 코 얇은 입술로 끊임없이 요설을 늘어놓는 그의 영화는 50편 이 넘는다. 채플린이 만드는 인간상이‘루저 캐릭터’라면 그의 뉴요커들은 교양 있지만 얍삽하 고 찌질하면서도 유쾌하다. 그가 부지런한 만큼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지만‘뉴요커, 미국 인 중산층, 메타 영화’이런 것들로 볼만한 것들을 추려 본다면‘우디 알렌 박스 세트’를 추천 한다. <애니 홀> <한나와 그 자매들> <슬리퍼> <맨하탄> 등이 들어 있다. 사족 : 미안하지만, 스타들의 사생활에 대해 세실리아처럼 조금만 이야기 하자. 우디 알렌의 영화에 13편이나 출연해서 전속배우라 할 만한 그의 전처 미아 패로우를 떠올리면 두 가지 생 각이 든다. 하나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주연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데이지로 분 한 고혹적 여인 그리고 딸로 키웠던 한국계 입양아인 순이 프레빈에게 남편 우디 알렌을 빼앗 긴 것. 2008 세계여성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배우 아닌 사회활동가 미아 패로우 그녀는 잘 늙고 있었다. 최근작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70넘게 오래 도록 영화를 만드는 알렌의 정열은 그의 스캔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가 만든 영화 속으로 들 어가기는 그렇고, 그의 스캔들 속으로 들어가고픈 것이 해외여행은 못가고 극장만 들랑대는 이 남한 남자의 판타지이다.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