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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8 |
[테마기획] 부채 3
관리자(2009-08-10 11:56:12)
<청간정조돈도>에 얽힌 겸제 정선 선생과의 인연 정승섭  한국화가, 원광대 명예교수 선면화 <청간정조돈도>(淸澗亭朝敦圖)는 최근에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은 겸제 정선 선생의 작품 <청간정>(淸澗亭)에 영향을 받아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겸제 선생과 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겸제(謙齊) 서거 250주년 기념전>의  여운을 마음에 품고 지난 6월, 간송미술관에서 <겸제(謙齊) 서거 25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전주에서 출발해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지하철로 안국역까지 가서 다시 택시를 타고 간송미술관을 찾아갔다. 서울에서 10여 년 미대를 다녔으면서도 간송미술관을 모르다니…. 평생 그림 하나만으로 바라본 나는 그렇게 촌스럽고 외골수로 살았다. 서울 성북동 도심 속에서 열린 <겸제展>은 고즈넉이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줬다. 그것은 마치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한줄기 맑은 시냇물 같은 신선감이었다. 한국의 전통 미술이 그렇게 고졸(古拙)하고 아담한 것을 새삼 느꼈다.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유 미술인 것. 관람객이 많아 대충만 둘러보고 <간송문화(澗松文華)> 한권을 구입해 부리나케 돌아왔지만 그 여운은 두고두고 내 가슴에 각인됐다. 돌아오는 길, ‘등대지기’의 한 소절인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을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겸제 선생과 나의 인연 속으로 겸제 선생과 나의 인연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억지스럽게 엮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겸제 정선(1676~1759)은 나의 직계 조상일 뿐만 아니라 아호인 겸자(謙字)는 선친 함자인 범 인(寅)자, 겸손할 겸(謙)자와 같은 자(字를) 쓴다. 겸제 선생과 나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과분하게도 월간지 갤러리 가이드에서 ‘제3회 겸제미술상’도 수상한 바 있다. 그래서 이래저래 ‘겸제의 핏줄을 받아 그림을 잘 그리는가 보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청간정조돈도> 역시 이러한 겸제 선생과 나의 인연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청간정조돈도>는 겸제 작품집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청간정>에서 화의(畵意)를 얻어 그린 작품이다. 동해안 속초에서 북상해가는 국도변에 있는 천후산 줄기 끝머리에, 누각형의 건물이름이 청간정이다. 동해바다와 불과 몇 발짝 떨어져 있지 않고 앞에는 석봉(石峯) 만경대가 불끈 솟아 있다. 겸제 선생의 <청간정>을 보면 정자 옆에 집채보다 더 큰 파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웬 파도가 이렇게도 클까. <청간정조돈도>속에 담긴 이야기 겸제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을 살펴보면 이러한 연유를 알 수 있다. 겸제 선생은 한양의 북악산과 인왕계곡 양반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집 옆의 시냇가에서 가재와 올챙이를 잡으며 자란 분이 난생 처음 동해바다를 보았을 때 받았을 충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집채보다 큰 파도가 마치 쓰나미처럼 밀려와 온통 천하를 집어삼킬 듯한 공포감과 감동이 진정 어떠했을까. 나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동해바닷가 주문진에서 보냈다. 태풍이 부는 날에는 파도소리에 밤잠을 못 이뤘다. 꿈속에서도 파도가 밀려와 덮칠듯 한 꿈도 꾸었다. 그래서 겸제 선생이 받았을 충격과 감동을 잘 안다. 난생 처음 본 바다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렸을 <청간정>, <청간정>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린 <청간정조돈도>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청간정>에 떠오르는 태양을 그려 넣고 그 아래 배 한척을 더 그렸다. 배에는 세 사람을 그렸는데 이는 겸제 선생과 나, 그리고 나의 선친이다. 우리의 인연을 이렇게 그림에 담아봤다. 떠오르는 해를 보러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청간정조돈도>에 고스란히 담겼다. 부채에 그린 나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겸제 선생에 관한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 옛날, 동해 바다의 거대한 파도를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겸제 선생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애틋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의 작품 속에 선생과 나, 그리고 나의 선친은 동해 바다라는 같은 이야깃거리를 두고 아마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지 않았을까. 부채 위에 그려진  <청간정조돈도>가 사람들의 손에 부쳐질 때 그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마음으로 흘러들길 바랐다. 정승섭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헌재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이자 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 고문을 담당하고 있다. 원광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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