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 |
[테마기획] 부채 2
관리자(2009-08-10 11:55:46)
바꿔들고 온 부채, 내가 부를 대사는 없고…
왕기석 국립창극단 구성위원
부채는 고향이요, 어머니다. 고향집 마당에는 여름이면 으레 평상(平床)이 펴져 있었다. 그 평상에서 우리 가족의 인정(人情)과 여름이 익어갔다. 저녁이면 식구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각자의 하루를 정리했고, 밤이면 마당 한 편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하고도 구수한 모깃불 연기를 온몸에 감고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 나름 세상일을 가늠했었다. 그런 밤 6남2녀 중 막내인 나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평상에 누웠다. 총총한 밤하늘의 별은 내 눈에 쏟아졌고,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내 귀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 때 우리 어머니의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었고, 하염없는 어머니의 그 부채질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모기와 더위를 함께 쫓아 주었던 어머니의 부채는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어 자식의 앞날을 순탄하게 펼쳐주고자 했던 마음 속 깊고 깊은 축원이었으리라.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그 손길,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시절이요. 아련한 풍경이다.
부채는 새로운 기운(氣運)이요, 다짐이다
한 해를 여는 일반인의 부채는 단오(端午)와 함께 시작된다. 단오절에 나누는 선물로 부채는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었다. 부채에 의존해 더위를 물리며 여름을 나야 했던 시절에 부채는 더 없이 좋은 생필품이었을 것이다. 특히 단오절에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부채를 하사했는데, 임금이 내리는 그 부채는 단순한 선물의 차원을 뛰어 넘는 엄숙한 의미의 신표(信標)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듯 이 나라 종묘사직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振作)시켜 달라는 임금의 간곡한 부탁과 조정(朝廷)의 다짐을 서로 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채는 소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지럽고 어렵기만 한 작금(昨今)의 시대상황. 다소 격에 맞지 않지만 우리 서로 부채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다짐하자는 단상(斷想)을 제언(提言)으로 곁들이고 싶다.
소리꾼에게 부채는 실과 바늘이다
부채는 판소리꾼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멋도 멋이지만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상징적 도구로, 그리고 소리의 이면(裏面)을 그려내는 약속의 기호로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주는 지팡이로, 흥보가에서는 박을 가르는 톱으로 그 변용의 양상은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처럼 부채는 소리의 사설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장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무대장치이고, 소리꾼의 지위와 자격을 부여하고 규정하는 지휘봉이기도 하다.
보통 소리꾼들이 사용하는 부채는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을 쓴다. 일반 부채와는 격이 다르고 값의 차이가 크다. 이런 이유에서 1980년 소리에 입문한 시절에는 합죽선을 구해 쓸 여력이 없어 지하철역 입구나 노점에서 파는 값싼 줄부채를 사서 사용했으며, 특별한 경우에만 남의 부채를 아쉬운 소리로 빌려 조심스럽게 써야만 했다. 지금은 나를 아끼는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있어 꽤나 값나가는 20여개의 합죽선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지만 지금도 새 부채를 손에 쥘 때면 판소리 초년시절을 떠올리며 그 때의 각오와 다짐을 되새기곤 한다. 거금을 주고 산 합죽선을 애지중지 다루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용했지만 몇 달 쓰고 나면 낡아 찢어지는 부채를 들고 인사동에 가서 종이만 새로 사다가 종이주름에 따라 온갖 공력을 쏟으며 정교하게 풀칠을 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또한 부채는 소리꾼들에게 더 없는 모니터이기도 하다. 무대에 서려면 해당 대사와 사설을 외워야 마땅하지만 게으름을 피운 날 광대들을 살려주는 구세주 역할을 하는 것이 소리꾼의 부채이다. 소리꾼이라 하면 누구나 한두 번씩은 부채에 사설이나 대사 등을 적어놓고 자연스럽게 엿보며 공연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부채에 의존하다가 커다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부채에 깨알 같이 써 놓은 부채를 들고 무대에 서서 득의만면하며 부채를 쫙 펴고 대사를 읊으려는 순간 다리는 힘없이 무너지고 나의 머릿속은 부채의 한지처럼 하얗게 텅 비고 말았다. 눈앞의 현실은 절망뿐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부채와 바꾸어 들고 나온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나의 소리가 어머니의 부채가 되어 이 시대의 끝자락에서나마 인정으로 피어나고, 나의 소리가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는 이 시대의 바람으로 털끝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소리꾼으로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의 판소리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왕기석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다. 1994년 KBS 서울국악대경연 판소리와 200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명창부 장원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국립창극단 주역배우로 왕성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