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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8 |
[테마기획] 부채 1
관리자(2009-08-10 11:55:08)
흔들리는 세상, 나에겐 마법부채가 있다 윤나네  전북일보 민생사회팀 기자 부채와 함께 자란 나 나는 부채에 관한한 추억이 참 많다.  아주 오래돼 멋이 나는 합죽선을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니실 정도로 부채를 애용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이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집안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제나 시조대회를 다녔다. 붓글씨나 한자를 강의하는 곳은 물론이다. 나의 어린시절 기억에는 항상 집안에 퍼지는 먹 냄새와 수북한 화선지가 있다. 그리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붓글씨에 몰두하셨던 할아버지와 전주 합죽선 부채 살에 멋진 글귀가 적힌 ‘마법부채’가 있다. 나는 오랫동안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부채를 들고 다녔다. 여름이 되면 그 부채가 손에서 떠나지 않아 주위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또한  ‘어디서 난 부채냐’는 것이었다. 어딜가나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요즈음, 그것도 20대의 젊은 여자아이(?)가 쥘부채를 드는 일은 낯선 풍경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 번에 딱 봐도 뜻 모를 한자가 적힌 부채로 바람을 날리고 다니니 이상한 풍경일 수 밖에... 수십 년간 숙련해 온 붓글씨. 할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이 되던 생일에 내가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길 바라시는 문구를 쓴 부채를 선물로 주셨다. 그 부채는 대학 내내 방황과 고민을 반복했던 네번의 여름과, 기자가 되어 도로를 헤매고 다니던 뜨거운 두 번의 여름을 함께 겪어냈다. 부채는 세월을 따라 빛이 바래고, 나의 가치관과 생각도 수십 번의 변화를 겪었다. 나의 삶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뀔 때마다 부채에 새겨진 문구의 의미도 새로워진다. 붓글씨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할아버지 권유에 따라 대학졸업 때까지 향교 서당에서 사자소학 등 기본을 뗀 우리 사촌들도 저마다 각각 다른 문구가 담긴 부채를 안고 캐나다로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까지 마쳤다. 할아버지의 부채, 그 속 깊은 이야기 우리는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부채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조금은 고집스러운데다가 호기심이 많았던 내가 법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손녀가 배워나가야 할 공부가 직업적으로도 권력 가까이에 있어 혼돈을 겪어내야 할 것을 예감 하셨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나에게 주신 부채에 ‘모든 일에 공정한 즉 밝음이 생기고 오로지 겸손하면 위엄이 생긴다’는 문구를 새겨 주셨다. 대학시절, 공부할 때 만해도 그저 좋은 말이구나 생각했던 것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의미를 더 새롭게 만나게 된다. 겸손해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과 위엄을 내세워 겸손치 못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 의미는 좀 더 새로워진다. ‘겸손하면 위엄이 생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때로 겸손을 가장해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면 차라리 똑같이 무례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 쉽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버리는 실수도 부지기수다. 그럴 때면 부채 문구를 떠올린다. 그 덕분에 철이 바뀌어 여름이 지난 계절에도 고민이 있을 때면 부채는 내 옆에 있다. 명창의 소리가 부채를 쥔 손끝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부채를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다보면 복잡했던 생각과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된다.    기자가 된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느라 올해는 여름 부채 한번 제대로 부쳐 본적이 없이 유난히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부채에 쓰인 할아버지 당부는 가슴에 깊게 새겨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으로 술렁이는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내 마법의 부채’를 다시 쥐어 본다. 이 ‘마법부채’가 내 옆에 있는 한 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새로운 용기로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윤나네 2008년 4월에 전북일보에 입사한 후 현재 전북일보 편집국 문화사회부 민생사회팀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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