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 |
[문화시평] 부산시립극단
관리자(2009-08-10 11:51:41)
<무엇이 될꼬하니>
(7월 11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
지금, 여기의 연극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곽병창 우석대학교 교수
오래 된, 그러나 낯선 느낌-마당극과 총체극의 추억
익숙할 법도 한데 낯설다. 이런 형식의 연극은 한 때를 풍미한 세태풍자 마당극을 연상하게 한다. 7~80년대 대학가에는 우리 전통연희의 생명력과 풍자성, 해학과 비판정신을 잘 버무려서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고발하고 교정하려는 연극들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전통연희의 개방적 무대 운용 방식과 전형적 인물, 민요나 잡가 등을 비롯한 삽입 가요와 탈춤 동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되 당대적 정황을 담아 다시 만든 탈놀이 등이 그 시기 마당극의 형식적 특징이었다. 그런 시기에 전문연극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색다른 연극 한 편이 있었으니 그게 곧 이 작품의 원전이라 할 <무엇이 될고하니>다. 김정옥과 이병복 등이 중심이 되어 집단창작의 제작 방식을 추구하며 출발한 극단 ‘자유극장’의 1978년 작품이다. 당시 이 작품은 평론가들로부터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로 충격을 던져 준 작품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이 작품은 박우춘이 쓴 것을 연출가 김정옥이 대담하게 재창작했고, 연출자와 연기진의 손에 의해 집단제작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뿌리깊은 나무> 1978년 12월, 이상일의 글 참고) 이처럼 이 작품은 이른바 주류연극계에서 전통연희의 창조적 계승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작업을 통해 내놓은 대표작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전통극의 풍부한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과도한 저항이나 현실비판의 주제를 드러내는 대신, 좀 더 보편적인 주제를 추구한 결과가 곧 이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대의 마당극이 탈춤이나 민요에서의 저항과 풍자를 전면에 내세운 반면, 이 작품은 ‘죽음’과 ‘한’이라는 주제와 탈춤의 일부 장면들이나 장타령 등이 지닌 허무주의적 세계관, 무당굿의 신비스럽고 초월적인 분위기 등을 바탕으로 하여 무대극 일변도로 진행되어 온 당대의 주류연극계에 형식적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작품의 원전인 <무엇이 될고하니>가 갖는 장점으로 ‘편안하고 질펀한 우리 연희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발휘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 초반부에 거창하게 나열했던 역사적 격변기의 여러 죽음들(단종, 사도세자, 민비, 이토오 히로부미 등)의 이야기가 그냥 보편화된 숱한 죽음의 하나로 치환되고 마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결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부산시립극단의 새로운 해석에서 기대한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원작의 그런 모호한 결말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새로움과 낡음, 덧뵈기 춤에 실려 사라진 ‘죽음’의 의미
부산시립극단의 2009년 작 <무엇이 될꼬하니>는 원작의 제목을 부산 사투리로 바꿔 부르면서 이 지역의 살아 있는 연극 유산인 동래 들놀음의 탈춤 구조를 덧씌워서 새로운 각편(version)으로 다시 만들어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의 원양반은 들놀음에서의 원양반이 말뚝이에게 조롱당하고 우스갯거리가 되는 존재로 그려진 것과는 달리 ‘잘숙이’라는 아첨꾼 하인 역을 대동하고 등장하면서 현실세계에서의 폭압적이고 권위적인 권력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동래 들놀음의 전형적 춤사위인 덧뵈기의 건드렁거리는 맛과 활달하고 큰 동작, 거기에 할미나 엿장수 등이 분출해내는 질펀한 성적 언행 등은 이 작품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작품의 활력과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굿거리장단에 실려 낭창낭창 이어지는 해학적인 춤과 재담은 관객을 폭소의 향연으로 몰고 가면서 이른바 오랜 된 전통이 발휘하는 힘을 느끼게 해 준다.
한편 원양반에게 새롭게 주어진 극중 인물(사장)의 역할은 더 이상 말뚝이에게 조롱당하면서 몰락해가는 구시대적 허위의 상징이 아니다. 그는 엄연히 살아있는 권력이며, 현실에서 주인공 달래와 꺽쇠의 애틋한 사랑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자본과 욕망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원양반은 들놀음에서 차용해온 다른 배역들과 달리 가장 적극적으로 현실화한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2009년 판 <무엇이 될꼬하니>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원양반이 넘어설 수 없는 권력과 자본, 욕망의 모습을 한 몸에 표상하고 있는 존재로 그려지면서,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달래와 꺽쇠를 비롯하여 이 작품에 등장한 숱한 죽음들은 매우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으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래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민중이나 지식인이라 하는 자들이 보여 준 배신과 물욕, 무관심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이 모든 죽음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 폭력, 착취와 억압의 비극적 악순환을 넌지시 우회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이끌어간다.
결국 여사당의 대사처럼 “마치 잡초넝쿨처럼 쫓기는 사람이나 짐승을 숨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구경꾼. 좋게 말해서 증인이라고 할까? 큰소리로 말할 수 없을 땐 들릴락 말락하게 중얼거리는 그러나 증인!”이라고 외치면서 현실의 무거운 울타리를 빠져 나간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관객들을 향해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구경꾼들이 아닌가. 잘 먹여주고 잘 입혀주고 잘 쓰다듬어 주고 잘 다스려 주면 불평이 없다. 잘 다스려진 당신들-”(남사당1)이라며 우리 모두가 이 모든 죽음들과 관련이 있는 존재들임을 강조하려 한다. 그렇게 편안하고 후련해진 심정으로 모든 죽음의 이야기들을 가볍게 떨쳐 버리고 배우들이 토해내는 한 마디씩의 넋두리와 난장굿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용산참사 이야기까지를 끌어들이면서 새롭게 만든 작품이 고스란히 ‘이게 다 우리 탓이니 한 판 놀면서 명복이나 잘 빌어주고 가자’는 식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초연 대본에서 드러난 ‘역사적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모호함’이 재연된 듯했다. 결국 역사적 정치적 죽음들에 대한 극 초반의 깊은 관심이, 결말에 이르러 덧뵈기춤의 흥청거리는 춤사위와 함께 탈정치적 허무와 관념의 숲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전통성과 세계성, 내용과 형식의 충돌이 빚어내는
새로운 미감을 위하여
이 작품에는 마당극과 총체극이 풍미하던 오래 전의 풍경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추억이지만,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낯설 수도 있는 다양한 연극적 실험이 등장한다. 만장의 형식을 빌어서 죽음에 대한 여러 아포리즘을 공연 시간 내내 무대 위에 걸어둔다든지, 사진과 동영상 등을 동원해서 갑자기 다큐멘터리인 척하거나, 느닷없는 낭송과 연설 등으로 장면을 이어가는 슈프레히콜(sprech-chor, 낭송극), 거기에 마당극적 ‘경계 허물기’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이 동원하고 있는 연극적 장치는 매우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장치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빠질 수 있는 과도한 무거움을 덜고 “이승과 저승은 하나로 엉켜져 있으며 삶과 죽음은 서로 피부를 비비고 공존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작품 본연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갖는 장점은 동래 들놀음을 비롯한 부산 지역의 풍성한 연희 전통을 온몸으로 받아 내리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있다. 이돈희(거지1)를 비롯한 대부분의 출연진들은 춤과 노래, 연기에 고루 능통했으며, 특히 거지, 약장수, 엿장수, 사당패 등으로 번갈아 등장하면서 관객들과 주고받는 즉흥적인 재담에서 볼 수 있듯이, 편안하고 질펀한 경상도 광대들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탈춤을 원용한 무대극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전주의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매우 낯설고 독특하며 재미있는 작품으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용의 무거움과 형식의 발랄함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전통연희의 막강한 당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세계시장에 내놓을 작품을 만들어내는 부산시립극단의 안목과 노력에 박수를 보낼 일이다.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의 획득을 위해 한국사의 여러 굽이에서 끌어온 여러 죽음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연극적 소재로 너무 쉽게 흘러가 버린 것은 아닌지 조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전통적인 것들이 세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가 대책 없는 충돌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 독창적인 미감의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도 그렇다.
연극은 여전히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담는다. 재미와 주제 사이에서, 전통성과 세계성 사이에서 지금 여기의 연극은 과연 무엇이 될까.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한국연극사의 오래 된 고민을 다시 건드리고 있다.
곽병창 극작, 연출, 공연기획, 축제 감독 등으로 종횡무진 살아 온 전방위 현장예술인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희곡강독 희곡집 「강 건너 안개 숲」, 평론집 「연희, 극, 축제」외 다수가 있다. 현재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