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 |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사투리
관리자(2009-08-10 11:45:53)
붓내, 필천(筆川) 그리고 시천(詩川)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판단하지 않기.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만족하기. 스스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끊임없이 희망을 말하고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기야말로 후회하지 않고 사는 비결인 것 같다. 과거의 잘못들 때문에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낯이 붉어지는 날에는 그래서 이웃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 걸레가 되어 더러운 얼룩이라도 닦아야 한다.
어머니의 기도를 떠올리며…
삶이 버겁고 힘들 때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30년 넘게 새벽 예배를 드리며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오신 어머니. 그 분의 기도가 나를 끊임없이 일어서게 하였으며 나 역시 30년의 기도를 통해 내 자식을 일어서게 할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 관한 말씀을 어머니를 통해 들으며 자랐다. 갖은 고초를 치러가며 당신의 선친을 명당에 모셨다는, 아침저녁으로 굴뚝에 연기 안 나는 집이 있으면 연명할 거리를 챙겨주셨다는, 명절이 되면 광을 열어 제물을 준비할 수 있게 하셨다는 말씀, 그 모든 것들이 후손들 잘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하신 일이라는 그 분의 정신을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사실 가족 중심의 이런 사랑은 어느 가정에서나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족이기주의 사고에 갇혀 남 약 올리듯 잘 사는 옹졸함은 내려두고 이제는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두루 평안할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해야 함은 말할 나위없다.
집집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아들, 손자,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의 삶이 정갈하고 다정하며, 그런 가족들이 모여 동네 가득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흐뭇한 공간을 떠올려본다. 재활용품을 주워 연명하는 이웃을 위해 그 집 앞에 재활용품을 모아주는 정도의 마음이 모여 날마다 동이 트는 마을이라면 맹수마저 웃게 했다는 공자님 동네 못지않을 것이다.
마음을 흐르는 내
그런 동네를 만드는 데 마을 이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그런데 꼭 그럴 것 같은,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을 이름이 있다.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에 있는
‘시천(詩川)’이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붓내’, 붓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흘러가는 내란 뜻이니 한자로 옮겨 적으면 ‘필천(筆川)’으로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붓내’, ‘필천’의 딴 이름으로 ‘시천’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시처럼 흐르는 내’, 이런 운치 있는 지명을 지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의 마음에 귀를 대보고 싶다.
나는 ‘시천’을 아예 시 같은 마음이 흐르는 내라고 풀이하고 싶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가족보다는 이웃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분노가 있는 곳에 화평을, 이기심으로 얼룩진 마음을 내려놓고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조용히 배려하게 만드는 땅. 자연과 사람과 시간 앞에서.
그 깊은 속내를 읽고 정성스럽게 맞이하는 마음이 모여 조잘조잘 흐르는 내라고 말이다.
이쯤 되면 ‘시천’이란 이름을 보며 우리 마음에도 ‘시천’ 하나 흐르기를 소망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지역도 곧 길 이름 중심의 새 주소를 갖게 될 텐데 시천 같은 마을 이름 하나 정성들여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가는 곳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마을 이름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문화적 깊이와 향취를 누리는 재미난 소재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