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 |
[문화현장] 아빠는 새가 아니다
관리자(2009-08-10 11:43:46)
아빠는 새가 아니다
(6월 26일 ~ 7월 12일) 익산 아르케 소극장
‘역할대행’으로 되찾은 진정한 나의 역할
가족이란 관계는 무엇일까. ‘아버지처럼 살기 싫은’ 자식이 있는가 하면, ‘너 낳고 미역국 먹은 것이 후회되는’ 부모도 있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나’라는 말이 더 흔해진 지금,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가족이란 자꾸만 벗어나고 싶은 굴레일지도 모른다.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 가족이라는 관계는 보다 많은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임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관계는 어느 관계보다도 특별하며, 쉽게 변질되지 않는 그것이 된다.
가족이라는 ‘관계’
극단 ‘작은 소동’의 연극 <아빠는 새가 아니다>.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12일까지 익산 아르케 소극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가족은 힘이다’라는 주제로 각박해진 가족 안에서 아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새 기러기.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가장들을 우리는 기러기 아빠라 부른다. 연극 <아빠는 새가 아니다>는 기러기 아빠로서 잔뜩 가시 돋친 삶을 살아가던 한 남자가 진정한 ‘아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뜨거운 가족애 하나만으로 혼자 사는 수고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외로움과 싸우는 가장의 안타까운 모습에 ‘가족대행’이라는 다소 엉뚱한 소재를 가미해 가족으로서 책임과 의미를 돌아본다.
‘역할대행’, 가짜를 통해 진짜를 찾아가는 길
연극 <아빠는 새가 아니다>는 기러기 아빠 ‘신조류’가 ‘니맘내맘’이라는 역할 대행 회사에 아내와 딸을 신청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캐나다로 아내와 딸을 유학 보낸 후 홀로 생활하는 ‘신조류’,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처참하게 무시당하고 텅 빈 집을 홀로 지키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신조류’, 그는 우리 시대 아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로운 것’이다.(『곽재구의 포구기행』) 하지만 이 시간이 길어진 우리 시대의 가장들에게 외로움은 쓰디쓴 상처일 뿐이다.
어느 날 ‘신조류’는 우연히 켠 TV에 나온 딸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아내가 딸을 TV에 출현시킨 목적이 4만 달러를 받기 위한 ‘쇼’임을 알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매일매일 홀로 집을 지키며 외로움과 우울함에 지친 그에게 가족은 희망이 아니라 어깨에 가득실린 무게다. 축 처진 그의 어깨 위에는 자식을 위한 유학비와 그 유학비를 대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글픔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 아버지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경주마이자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외면당하는 외톨이 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일과 피로,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아버지. 축 쳐진 어깨를 드러내는 ‘신조류’의 모습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너무나도 닮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서글픔을 잊고자 ‘신조류’가 선택한 곳은 ‘니맘내맘’ 역할 대행 회사.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바와 달리 연상의 촌스러운 아내 ‘봉삼월’과 까칠하고 반항적인 ‘한신애’가 배달된다.
아내와 딸까지도 전화 한 통으로 배달되는 세상. 실제로 역할 대행 서비스는 이 극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도 존재한다. 보이는 것, 물질적인 풍요에만 집착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하지만 <아빠는 새가 아니다>는 ‘역할대행’이라는 씁쓸한 사회의 현실을 진정한 가족애를 깨닫게 하는 소재로 역이용한다.
가짜 아내인 ‘봉삼월’과 가짜 딸인 ‘한신애’ 덕분에 가족이 없을 때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는 ‘신조류’. 그러던 어느 날 신애는 학교에서 반장을 때려 부모님을 학교에 모셔가야 한다. 할머니와 둘이 살던 신애는 ‘신조류’와, ‘한신애’에게 부모역할을 대신해 줄 것을 요구한다. ‘신조류’는 가짜 딸인 ‘한신애’의 부모역할을 거부한다. 이 사건으로 그동안 느꼈던 가족의 행복은 진짜 가족과 가짜 가족이라는 모순 사이에 부딪치게 된다. 진짜 가족에게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행복을 알게 해 준 가짜 가족. 그러나 돈으로 정해진 이 관계는 진짜가 될 수 없는 가짜의 한계를 드러낸다. 아울러 자식을 위해 돈만이 오고 가는 진짜 가족의 관계도 결코 진정한 가족은 아님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신조류’는 신애를 위해 직접 학교에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준다. 또한 ‘봉삼월’, ‘한신애’는 ‘신조류’의 생일 파티를 해주며 진정한 가족의 행복을 찾는다. 돈으로 이룰 수 없던 가족이라는 관게는 결국 서로에 대한 배려와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진짜 가족은 될 수 없지만 가족에게 진정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이 관계는 오히려 진짜 가족보다도 ‘가족’다운 관계다.
이렇듯 가짜 가족이 진정한 가족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신조류’는 진짜 아빠가 되는 길을 찾는다. “어떤 역이 우리에게 주어져도 그 역에 최선을 다하면 그 역이 내 역이다”. 역할 대행업체에서 배달된 아내 ‘봉삼월’과 딸 ‘한신애’와의 가짜 가족 관계에서 ‘신조류’는 진정으로 자신이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 했을 때 가족 안에서 ‘신조류’가 아닌 ‘아빠’로 녹아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정한 가족을 만드는 힘
하지만 <아빠는 새가 아니다>는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 극적으로 가짜 가족의 행복을 연출하려고 함으로써 무리한 결론을 내린다. 너무나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짜 가족과의 행복, 그 속에서 진정한 아빠의 역할을 깨닫는 ‘신조류’의 억지스러운 모습은 극과 관객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관객이 공연에 녹아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극적 구성이 이루어졌다면 <아빠는 새가 아니다>는 좀 더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조영 연출감독은 연출을 제의받았을 때 일반 가족에 대한 얘기보다는 따뜻한 얘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이 살아가는데 어떤 모습이 따뜻한 모습인가에 중점을 두었다는 그는 “세상이 힘들고 어렵다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가족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아빠는 새가 아니다>는 가짜 가족이 만들어내는 진짜 관계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서로를 보듬다보면 어느새 가짜를 진짜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이 연극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가질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