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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 |
[문화칼럼] 한글, 한자와 함께 쓸 때 더욱 빛난다
관리자(2009-07-06 17:46:01)
한글, 한자와 함께 쓸 때 더욱 빛난다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지금 초등학교 정식 교과과정에 한자나 한문 과목은 없다. 그러므로 한자교육은 전적으로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가을, 필자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재 어떤 형태로든(학원에 다니든 학습지를 풀든)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한자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 수를 표집 조사해 보았다. 경기도 고양시 현산초등학교 5학년의 경우 395명중 122명(30%)이 현재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을 통해 한자를 공부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주시 서원초등학교 5학년의 경우 305명 중 74명(24.2%)이 한자공부를 한다고 했다. 적지 않은 숫자다. 학부모나 학생 모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지도층이나 정책입안자는 오히려 한자교육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왜 그렇게 소극적일까.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일부 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한자교육 강화운동이 워낙 낡은 시각에 바탕을 두고서 매우 편향적이고 구태의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의 한자문제는 이처럼 보수적 견해에 기초하여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최근의 국제동향과 문화 환경의 변화에 기초하여 가장 혁신적인 사고를 가지고 개혁적인 방향에서 논의를 해야 할 문제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한자가 21세기에 가장 유용하고 편리한 문자가 되리라는 예견을 하고 있다. 그렇게 예견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통합한자코드가 이미 제정되었다. 한국 · 중국 · 일본을 대표로 하는 한자문화권 각 나라의 옛 자료는 거의 다 한자로 기록되어 정보화하는 데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는데1993년, 한자문화권 각국의 합의 아래 <국제통합한자코드세트>가 완성되었다. 이 통합한자코드를 이용하여 프로그램만 개발하면 한자는 현재 중국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간체자이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정체자이든 관계없이 정보화하는데 하등의 어려움이 없게 된다. 둘째, 한자 입력을 위한 다양한 타법(打法)이 개발되고 있다. 그동안 한자가 컴퓨터에서 잘 사용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입력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중국에서는 다양한 타법을 개발하여 쉽게 입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로마자 타법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 타법이 지속적으로 개량되면 한자도 한글이나 영어 못지않게 쉽게 입력을 할 수 있다. 입력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한자를 기피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보화시대에 소통의 속도가 가장 빠른 문자가 바로 한자이다. 정보화시대에 경쟁에서 이기는 관건이 속도라는 점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정보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정보유통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인 속도는 이미 세계가 평준화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유통 속도나 이메일 전송 속도가 거의 평준화된 지금 정보화시대에 승자로 남기 위해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속도는 다름이 아니라 정보를 얼마나 빨리 인간의 두뇌 속에 넣느냐는 ‘독파와 이해’의 속도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21세기 정보화시대의 진정한 승리의 관건은 물리적인 정보 유통속도가 아니라 유통된 정보를 인간이 두뇌로 받아들인 후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는 속도인 것이다. 그런데 ‘독파와 이해’의 속도 면에서 한자를 따를 문자가 없다고 한다. 영어나 한글에 비해 한자가 두 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한글이나 영어로 작성하자면 두 Monitor 정도의 분량인 문건이 한자로 작성하면 한 Monitor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자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그 소통의 속도가 가장 빠른 문자로 떠오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이미 한자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축약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문장이 과거의 백화문(白話文:구어체 문장) 일변도이던 과거에서 벗어나 상당부분 文言(古文:문어체 문장)화하고 있다. 아울러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급조하여 사용한 간체자를 버리고 원래의 정체자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도 자못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한국에서의 한자교육은 21세기 교육과 개혁의 새로운 어젠다(Agenda)가 되기에 충분하다. 넷째, 21세기는 중국어의 시대이다. 세계 전역에 불고 있는 중국어 바람은 이미 실감하고 있는 바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자와 중국어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한자와 중국어는 다르지 않다. 한자와 한문이 곧 중국어이고 중국어가 곧 한문인 것이다. 따라서 흔히 중국어 시대라 불리고 있는 21세기에 한자교육은 매우 필요하다. 다섯째, 한자는 시공을 초월한 전달력과 보존력을 가지고 있어서 표음문자에서와 같은 문자파괴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문자를 사용하는 까닭은 음성언어를 기록하여 시간적으로 장기간 보존하고 공간적으로 목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다른 지역까지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간성과 공간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표의문자인 한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데 반하여 표음문자는 제약을 많이 받는다. 한자로 쓴 문장은 2000여 년 전 진·한(秦·漢)시대의 문장도 어렵지 않게 해독할 수 있는데, 음만 기록하는 표음문자인 영문자인 경우에는 불과 400년도 채 안 된 셰익스피어 시대의 문장도 별도의 연구와 훈련이 없이는 글자는 읽을 수 있어도 그 의미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한글로 된 문장도 마찬가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표음문자의 경우에는 이른바, ‘문자 파괴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표음문자를 제멋대로 축약하거나 왜곡하여 사용함으로서 세대 간의 언어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언어의 생명력도 불과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유행어가 양산되어 난무하고 있다. 표음문자의 취약성은 바로 표의문자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표음문자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단점은 표의문자를 사용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현재 알려진 지구상의 언어는 약 3,000종이라고 하며, 문자의 종류는 약 400종 정도라고 한다. 이 400여 종의 문자는 크게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표의문자는 표의문자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고 표음문자는 표음문자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런데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의 장점만을 취하여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문자사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발달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 한국밖에 없다. 뜻글자와 소리글자를 자유자재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여건과 역량을 갖춘 우리는 언어생활에서 엄청난 복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글전용’이라는 어문정책은 재고해야 할 때가 되었다.우리에게 있어서 한자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매우 효용가치가 높은 보조국어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 전통문화의 거의 전부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한 한자를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21세기에 문화선진국을 꿈꿀 수 있으며 전통문화를 토대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겠는가. 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문자를 읽을 수 없다면 그건 문맹국가나 다르지 않다.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문자를 읽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설 수 있으며, 어떻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이제 더 이상 한자교육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글전용이라는 어문정책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한글, 한자와 함께 사용할 때 더욱 빛이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김병기 현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이자 전북대학교 중어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자와 서예』, 『강암 송성용 시문』, 『한문 속 지혜 찾기』 시리즈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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