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 |
[저널초점] 전주 대사습은 우리 전통문화의 미래다
관리자(2009-07-06 17:45:21)
전주 대사습은 우리 전통문화의 미래다
국악인들의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이자 축제의 장. 전주대사습놀이는 서른다섯 해 동안 국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역량 있는 국악인들을 발굴, TV 중계를 통한 저변인구의 확대, 전주대사습놀이가 최고의 권위와 위상을 가지는 이유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전주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전주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다. 지역을 넘어선 국가적인 규모의 축제로 역사적,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자원이다. 하지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문제들은 전주대사습놀이의 권위와 위상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심사와 조직의 운영에 관한 공정성 문제, TV 중계를 위한 지나친 무대공연화, 해가 지날수록 줄어드는 관객 수 등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걸어온 서른다섯 해. 전주대사습놀이가 국가적 축제로의 권위와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전주대사습놀이의 정신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군산대 최동현 교수와 판소리 고수이자 전남대 전인삼 교수, 국립창극단 유영대 예술감독의 글을 통해 전주대사습놀이에 대한 문제점과 발전 방향에 대해 살펴봤다.
우리는 왜 대사습의 혁신을 외치는가
최동현 군산대 교수, 판소리학회 회장
최근 들어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이하 ‘대사습’이라고 함)가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판소리 경연대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판소리에 관한 한 전통과 권위에서 대사습을 능가할 만한 대회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그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습은 전주의 전통 축제였다. 판소리가 융성하던 시절, 판소리 창자들은 대사습에서 인정을 받아야 명창으로 대접받았으며, 여기서 기량이 출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서울로 진출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초로 판소리만을 다룬 『조선창극사』에 간략하게나마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언급이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전주대사습놀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1975년 부활 이후, 대사습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며
대사습은 1975년에 첫 대회를 치렀다. 마침 판소리는 거의 사멸지경에 이르렀고,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이 지역의 판소리 애호가들이 판소리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대사습의 복원에 나서게 됐다.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가 만들어지고, 이 대회의 주관으로 대사습은 판소리 명창 선발을 위한 경연대회 형식으로 치러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사습의 형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사습을 복원할 때 경연대회 형식을 취한 것은 과거 대사습이 경연대회였기 때문은 아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본래 대사습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축제 형식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스러져 가는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다시 고조시키고, 실의에 빠진 판소리 창자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경연대회만한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어느 정도 정확했다. 그 동안 대사습이 누려온 권위가 이를 증명한다.
1983년 문화방송과 제휴하여 전대미문의 종일 중계방송을 실시한 것도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초기의 희망은 대체로 적중하여, 대사습은 오랫동안 판소리 등용문으로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으며, 판소리 부흥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대사습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되자 다른 지역에서도 대사습을 따라 하게 됐다. 경연대회라는 형식과 방송사와의 제휴를 통한 TV 중계방송은 이후 모든 판소리 경연대회의 모델이 됐다.
대사습의 권위와 위상은 어디에…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생긴 판소리 대회는 모두 대사습과 똑같은 형태가 됐다. 내용이 같다 보니 대회의 권위는 텔레비전 중계의 유무, 최고상의 상격, 상금에 의지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사습만 TV 중계가 되었으나 점점 중계되는 대회의 숫자가 증가했다. 처음에는 대사습에서만 대통령상을 주었으나, 나중에는 여기저기서 대통령상을 주게 됐다. 그러다 보니 초기 대사습 장원자가 대통령상을 타기 위하여 나중에 생긴 판소리 경연대회에 다시 출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근에는 상금의 액수를 가지고 경쟁을 하는 추세에 있다. 역사와 전통에서 권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대회 수상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상금이 대회의 권위를 대변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대회를 주최하는 쪽에서 출전자들을 모셔 와야 하는 우스꽝스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통령상을 주는 대회가 여럿이다 보니 대통령상의 수상자는 엄청나게 늘었다. 대사습만 있었을 때는 대사습에 출전하는 사람들이 이미 판소리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판소리 애호가들에게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처음에는 한 사십이 넘어야 대사습에 출전을 할 수 있었지만, 후에 이십 대 대통령상 수상자가 나오자 삼십 세 미만은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렇듯 소리꾼 기근이 심해지다 보니 능력 있는 출전자를 모셔오기 위해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유인은 아무래도 상금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판소리 경연대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각기 특색 있는 대회를 개발하지 못하고, 판박이로 똑같은 행사를 치러온 안이한 태도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사습이 유일한 판소리 경연대회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경연대회라는 형식은 아무래도 모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똑같은 내용의 판소리 경연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 더 이상 독점적인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대사습은 이제 다른 판소리 경연대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대회의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의 영광은 간 데 없는데 과거의 방식에 대한 반성은 없고, 그저 하던 관행만을 되풀이하는 상황이니, 여기저기서 대사습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대사습, 앞으로 가야할 길을 바라보다
이제 대사습은 바뀌어야 한다. 이대로는 과거의 권위와 영광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사습의 변화는 대사습이 발생했던 시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서, 대사습을 만든 사람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대사습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축제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판소리 창자들이 주도하던 축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사습은 판소리 창자들이 필요로 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긴 축제다. 주민들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주민들 대다수가 축제에 참여했다.
지금 대사습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은 대사습을 주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일이다. 지금의 대사습에는 주민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아무리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의에 의해서 마음대로 대사습의 회원이 되지 못한다. 대사습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대사습의 회원은 많을수록 좋다. 대사습의 취지에 공감하고, 판소리의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사람이라면 굳이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취지에 공감하고 기꺼이 회비를 낼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못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사습의 행사 진행에도 주민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대사습이 언제 열리는지, 심사위원은 어떻게 선정되는지, 자격은 무엇이지, 행사의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주인인 주민들은 알지 못한다. 실기인들만 모여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자기들만의 행사가 되고 말았다. 주민은 돈만 낸다. 일 년 동안 대사습에 지원되는 전주시 예산이 일억 원을 넘는다. 돈만 받고, 돈을 낸 주민들의 접근은 차단함으로써 대사습은 스스로 고립됐다. 주민들의 참여가 없는데 주민들이 필요를 느끼겠는가. 주민들이 대사습을 외면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대사습이 주민들을 내쫓았다.
다음에 필요한 것은 대사습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다. 대사습은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부활됐다. 그런데 대사습이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일 년에 한 번 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치르는 일뿐이다. 가을에 치르는 전주대사습 학생전국대회가 있지만, 이 대회는 문화방송이 주관하는 대회로서 전주대사습은 업무 지원, 혹은 협조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35년이 되도록 다른 사업 하나 발굴하지 못하고 경연대회에만 매달려 왔다. 도대체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가겠다는 것인가. 경연대회만 해도 지금과 같은 방식을 가지고는 절대로 앞서 나아갈 수 없다. 당분간은 그런대로 과거의 권위와 명성에 의지하여 명맥이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와 같은 영광은 재현할 수 없다. 다른 지역에서 하는 똑같은 방식과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앞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전통문화의 미래를 위해
대사습은 이제라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형식과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대사습의 종목 확대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라, 진정으로 전통문화 발전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는 대사습 내부에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사습은 전주 시민의 것이다. 소리꾼들만의 것도 아니고, 일부 대사습 운영자들만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대사습의 역사는 소리꾼들이나 일부 행사 운영자들의 것이 아니라, 대사습에 기꺼이 참여하여 같이 즐기는 주민 모두의 것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나서서 한 마음으로 난관을 타개하는 데 나서야 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판소리라고 하는 공공재를 위하여 기꺼이 개인적인 이익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대사습은 재조직 수준의 혁신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미래가 있다. 대사습의 미래는 대사습만의 미래가 아니다. 대사습과 관련된 판소리, 그리고 우리 전통문화의 미래이다.
최동현 현재 국립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활동 중이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연구위원이자 상임위원이다. 『한소리의 미학과 역사』외 판소리와 관련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판소리 연구에 매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