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 |
[저널초점] 35년 역사의 자화상 ‘ 제논에 물대기’
관리자(2009-07-06 17:43:56)
35년 역사의 자화상 ‘ 제논에 물대기’
전인삼 전남대학교 국악과 교수
세월이 가기는 흐르는 물같고, 사람이 늙기는 바람결 같다 했던가. 참 빠르다. 예ㆍ본선을 치르던 이틀 밤을 긴장과 초조함에 뜬눈으로 지새우고 부채 끝이 발발발 떨리는 긴장으로 죽을힘을 다해 소리하던 게 어제일 같이 완연한데 금년, 내가 남원국악원 창악사범시절 지도했던 당시 고등학생이던 허은선 양이 장원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20여년 목이 부어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괴로움,
소리 지르다 탈장이 되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날이 궂으면 아파오는 아랫배,
무엇보다도 소리하나 좋아서 시작했는데
나같이 평범한 농사꾼 자식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가슴 아픈
판소리계 현실에서 오는 시린 아픔 등.
그간에 흘린 땀과 눈물을 한꺼번에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판소리 명창의 등용문에 오르다
12년 전, 20여년 적공한 소리를 이제 세상에 내놓고 평가 받으리라 결심한 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열일곱 살에 남원국악원 강도근 선생 문하에 들어가 20여년 나름대로 성실히 학습해온 소리를 이제 세상에 평가 받아 명창의 반열에 올라 진정 소리를 업으로 삼는 소리광대의 면모를 보이리라 결심했다. 고향인 남원 춘향제 보다는 자타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권위의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떳떳이 장원하여 내 자신은 물론 다 성장하지 못한 제자를 두고 가심에 못내 걱정하셨던 스승과 고향사람들, 가족, 지인들께 기쁨을 드리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그리 말리던 사당 잡놈패 짓을 하겠다고 나선 큰아들의 성공을 위해 20여년을 한결같이 새벽이면 조왕물 갈고 정성으로 치성드리던 내 어머니께 자식된 도리를 다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심봉사가 딸 덕에 전곡간이나 있단 소문을 듣고 불쌍한 심봉사 재산을 탐내 동네사람 아무도 모르게 자원 출가한 뺑덕이네 심보는 아니지만 행여 누가 알까 염려되어 정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자원 출전하였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내 최고 권위요, 명실상부한 명창 등용문이어서 그런지 전주대사습놀이는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둘러싼 확인되지도 않은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그런 것들로 인해 내 스스로 소리 사랑에 상처 입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커서였다.
예선이 끝나고 고수가 권하는 심사위원들의 숙소방문을 잠깐 생각했었지만 정도가 아니었다. 격려해줄 스승도 없고 대회 주최측과도 친분이 별로 없는 나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조각배였다. 하지만 그저 힘닿는 대로 노저어 가리라 했고 결과는 심사위원 전원일치의 장원이었다. 참으로 기뻤다. 20여년 목이 부어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괴로움, 소리 지르다 탈장이 되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날이 궂으면 아파오는 아랫배, 무엇보다도 소리하나 좋아서 시작했는데 나같이 평범한 농사꾼 자식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가슴 아픈 판소리계 현실에서 오는 시린 아픔 등. 그간에 흘린 땀과 눈물을 한꺼번에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의 영광과 명예를 안고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는 조금도 인정하진 않지만, 명창이란 칭호를 얻었고 모든 연주와 교육활동에 있어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자라는 프리미엄과 커다란 공신력을 얻었다. 또한 연주자로서, 교육자로서 오늘날의 자리매김을 하는데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은 나 스스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기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렇다. 나의 예에서 보듯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은 여느 소리꾼에게나 이루고자 하는 꿈이고 희망이며 연행에 있어 현실적 이득을 주는 명실상부한 국내 제일의 국악인재 등용문이다. 판소리 전성기인 조선후기의 어전에 불려나가고 벼슬을 하사받던 그런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현실에 있어 전통예술인으로 삶을 영위하고 본인의 예술을 인정받고 평가받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물론 전주대사습놀이 말고도 이른바 대통령상을 시상하는 판소리경연대회는 여러 군데 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 관록, 규모와 인지도 등 대회 전반에 걸쳐 전주대사습놀이를 능가할 대회는 없다. 그런 면에서 전주대사습놀이는 전통예술에 종사하는 이른바 국악인들은 물론이고 문화지식 산업시대를 주창하는 21세기 한국사회에 있어 전통예술의 보존과 진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소리없이 무너져가는 우리의 축제
이렇듯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인 전주대사습놀이는 1975년 예전의 행사를 복원한 이후 문화방송이라는 국내 굴지의 방송사와 전주시, 지역민들, 국악인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35년간 지속되어 왔다. 혹자는 전주대사습놀이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대회운영과 결과에 분노하며 혹평하기도 하지만 어찌 됐건 전주대사습놀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제일의 국악인재 등용문이고 전통예술 축제이다.
작은 구멍하나에 댐이 무너진다 했던가. 돌이켜 보면 전주대사습놀이라는 축제가 경연이라는 형식을 본질로 삼는 것이어서 그런지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축제인 것 같다. 대회가 끝난 후 결과에 객관적으로 동의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해가 드물 정도다. 물론 전주대사습놀이가 지니는 결과의 무게가 크다보니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예능행위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꼭 그래서 그렇게 말이 많다 할 수 없겠다. 혹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함에 있어 주최측인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의 사고와 실질적 업무추진에 있어 국악계 및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예술진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망각한 소홀함은 없었는가. 문화방송이 생중계하고, 누가 뭐래도 200여년의 역사성을 가졌고, 우리가 꼭 간직해야 할 전통문화유산인데 설마 어떻게 되겠는가 싶어 이사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작은 이해관계에 얽매여 100년 아니 앞으로도 영구히 이어가야 할 소중한 전통예술축제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전주대사습놀이의 주인공인 국악인들 스스로 제논에 물대기식 논리와 행동으로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인 이 축제를 흠집 내고 있다.
우선 목마르다 하여 여기 저기 자신이 필요한 물을 얻고자 작은 구멍을 낸다면 댐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무너진 댐에는 더 이상 물이 없다.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를 비롯한 관계자들, 전 국악인들 모두 깊이 각성하고 댐의 물을 빼내기보다 물을 더욱 가득 채울 일을 궁리하고 노력할 때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니 그냥 물을 채워 달라는 궁색한 논리로 앉아 기다릴게 아니라 스스로 물지게를 지고 십리 밖, 아니 백리 밖에서라도 물을 지어 날라야 한다. 수원은 메말라 들어올 물도 없는 댐에 이제 그 남은 물마저 이후에 후손들은 죽든지, 살든지 우선 내 배부터 채우겠다고 앞 다투어 구멍을 낸다면 후손들이 굶어 죽음은 물론이고 댐이 무너지면 물 받겠다고 구멍 내고 있는 본인도 그 물에 쓸려 수중고혼이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전주대사습놀이, 현재보다는 미래를
우선 이런 말 하는 나를 비롯한 전 국악인들이 깊이 생각하고 반성할 일이다. 오늘날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35년 전 나라를 잃으면서 단절된 전주대사습놀이를 복원한 전주지역 국악 관계자들의 치열한 노력과 무엇보다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죽을힘을 다해 온몸으로 전통예술을 지켰던 선조 국악인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전주대사습놀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길을 먼저 살다 가신, 이 훌륭한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신, 선 국악인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이 돼야 한다.
전주대사습놀이는 거듭나야 한다. 1975년 복원된 이후 3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지금도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는 대사습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무엇이 아직도 대사습을 혹평하게 만들고 이런저런 말들을 듣게 하는지 깊고 자세히 살펴서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각 개인의 소아적 사고에서 발로한 작은 이해관계를 버리고 전주대사습놀이라는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을 발판삼아 전통예술진흥이라는 큰 명분을 생각해야 한다.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관계자들 나름대로 국악인들은 각자의 예술을 바탕으로 한 인격에 부끄럽지 않을 노력을 다 할 일이다.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나를 포함한 국악인 모두가 책임지고 행할 일이다.
전인삼 제23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판소리명창부 장원을 비롯해 다수의 국악 관련 대회에서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이다. 판소리학회 이사와 임방울국악진흥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