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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 |
[저널초점] 전주대사습놀이 서른다섯해
관리자(2009-07-06 17:43:15)
전주대사습놀이 서른다섯해 명창 명인, 대사습 무대 위에서 울고 웃다 곰삭은 소리의 깊이와, 신명나는 가락, 흥겨운 춤사위의 어울림.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중단됐던 전주대사습놀이는 지난 1974년 부활, 매년 축제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악 등용문. 그동안 수많은 명창과 국악인을 배출해온 역사적, 국가적 문화자산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영조(1724-1776)를 전후한 시기에 통인(通引, 조선시대 지방관아에 딸린 아전)들이 광대를 초청하여 판소리를 듣고 놀던 동짓날 잔치에서 유래했다. 전주대사습놀이 날이 되면 부성 안이 온통 축제 열기로 가득 찼다고 하는데 다른 지방에서 찾아보기 드문 민속축제라 할 수 있다. 너른 마당에 한 데 어울려 푸지게 한바탕 즐기던 전주대사습놀이. 벌써 서른다섯, 적지 않은 나이를 맞은 전주대사습놀이의 열기 속에서 예전 가득했던 흥을 복원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다독여주던 축제의 장을 돌이켜보다 전주대사습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됐고, ‘대사습’이란 의미가 어디서 유래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영조(1724-1776)를 전후한 시기에 통인(通引, 조선시대 지방관아에 딸린 아전)들이 광대를 초청하여 판소리를 듣고 놀던 동짓날 잔치에서 유래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숙종 때의 ‘말타고 활쏘기 대회’, 영조 때의 ‘물놀이’와 ‘판소리 경연’, ‘백일장’ 등 민속 문ㆍ무예 놀이를 ‘종합대사습’이라고 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전주대사습놀이의 마당은 전국 명창들의 총 집합장이자 명창의 등용문이었다. 19세기 말,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그 맥이 끊긴 이후 1975년 지역인사들의 노력으로 다시 부활했다. 전주대사습놀이가 가진 전통과 문화를 복원하자는 취지였다. 5개 부문(판소리, 농악, 무용, 시조, 궁도)으로 대회를 시작해 1977년부터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가 서른다섯 해 동안 대회를 주관해왔다. 이후 1983년부터는 판소리 명창부와 농악부, 무용부, 기악부, 시조부, 민요부, 가야금 병창부, 판소리 일반부, 궁도부의 9개 부문을 중심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판소리, 화려한 꽃을 피우다 서른다섯 해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전주대사습놀이. 전주대사습놀이의 가장 화려한 꽃은 바로 판소리 명창부 경연이다. 그동안 수많은 명인명창들이 이곳을 통해 판소리의 꽃을 피웠다. 전주대사습놀이가 부활한 첫 해 판소리 부문 수상자는 바로 우리의 것을 옹골지게 지키고자 했던 오정숙 명창. 지난 해 세상을 타계했던 그는 동초 김연수제 소리를 보전, 그 맥을 잇고자 했다. 그는 창극무대를 통해 판소리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주대사습놀이의 두 번째 명창은 동편제와 서편제를 두루 섭렵한 조상현 명창. 남자 명창의 선두대열에서 활동하며 판소리의 대중화에 앞장선 주역이다. 이후 성우향 성창순 이일주 최난수 최승희 조통달 김일구 전정민 김영자 성준숙 박계항 은희준 김수연 이명희 방성준 최영길 이임례 송순섭 조영자 주운숙 전인삼 윤진철 이순단 모보경 왕기철 염경애 송재영 장문희 왕기석 고향임 김금미 박영순 명창. 전주대사습놀이가 배출한 명창들로 판소리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올해 전주대사습놀이의 꽃으로 피어난 허은선 씨까지. 이들 대부분이 판소리의 명맥 잇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때 그 명인명창,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주대사습놀이의 꽃. 판소리 명창부 장원의 영광을 안은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은 우리 소리를 발전시키고 완성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성우향 명창은 판소리연구원을 운영, 조통달 명창은 우방조통달판소리전수관을, 부부 명창이 되어 화제를 낳은 김일구·김영자 명창은 온고을소리청, 김수연 명창은 김수연판소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명희 명창은 판소리연구소, 방성춘 명창은 판소리전수관, 이순단 명창은 판소리전수관, 고향임 명창 역시 판소리연구소를 운영한다. 대부분 판소리연구원이나 연구소를 운영하며 판소리 연구에 매진,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일주, 최승희, 박계향, 조영자, 주운숙 명창은 대학에 출강하여 판소리 전수에 매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윤진철 명창과 소리꾼 출신 교수 1호인 전인삼 명창은 각각 전남대 국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스물아홉살의 나이에 장원의 영광을 안으며 전주대사습놀이에 새바람을 몰고 온 명창 염경애.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전남대, 목원대, 용인대에서 학생들에게 판소리를 전수하고 있다. 이밖에 창극단에서 활동하며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명창들도 있다. 모보경 명창은 전북도립창극단에서 단원으로 활동, 형제 명창인 왕기철·왕기석 씨는 국립창극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금미 명창 또한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지난해 장원자인 박영순 명창은 전북도립창극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판소리 부분뿐만 아니라 국악의 여러 부분에도 명인을 배출했다. 서용석 이생강 김일구 강동일 김동진 원장현 김경애 윤윤석 강정열 김무길 신상남 서영호 최종관 이용구 등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악의 명인들 대부분이 전주대사습놀이의 출신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맥을 잇고 발전시키는 주역들이다. 전주가 소리의 고장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전주대사습놀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남길 발자취를 기대하며… 우리 국악의 맥을 잇고 있는 국악 인재들이 전주대사습놀이를 통해 배출되었다. 국악의 부흥을 위해 전주대사습놀이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일일이 평가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앞서 말한 심사와 조직의 운영에 관한 공정성, 지나친 TV 프로그램화, 줄어드는 관객 수 등의 문제는 전주대사습놀이가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전주대사습놀이라는 축제가 속 빈 강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꼭 해결해야 한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달래주고, 한데 어울려 흥겨움을 나누는, 전주대사습놀이의 새로운 발걸음을 기대해 본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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