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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 |
[내 인생의 멘토] 옹기장이 이현배
관리자(2009-07-06 17:37:19)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뚫지 못할 것 없는 ‘창’과 방어하지 못할 것 없는 ‘방패’의 공존 시회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고2 때였다. 서울이었는데 가출한 상황이었다. 한 편의 기사, 공익광고문구 ‘건강을 위해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의 모순된 지적이 내면에 큰 울림이 되었다. 세상에 뚫지 못할 것이 없는 창(矛)과 세상에 방어하지 못할 것이 없는 방패(盾)의 공존, 모순의 인식은 그때 바로 나 자신 그대로였다. 모순에 의한 실존의 인식경험은 시골 면청소재지 소재 고등학교 2학년이 가출하여 서울 한복판에 서 있는 꼴만으로도 꼭 그랬다. 몇 년 뒤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한질을 구해 탐독하면서 사회문화, 전통문화, 지역문화, 생활문화 따위의 문화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는 발행인 한창기, 한상훈 선생을 찾아 학습을 했다. 이후 오랜 세월 이 상황에 천착해 왔지만 상황을 전환시키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제 아이들이 또 그 나이가 되었다. 막내가 꼭 그 때, 고2다. 이 또한 모순이다. 비혼주의  이물에게 술 한 잔 했다. 일하다 밖을 보니 풍경이 어쩜 그리 아름답니. 그래 그 자리, 그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어 삼겹살에 술 한 잔 했다. 혼자여도 좋았겠지만 엄마가 뻘줌할 것 같아 같이 한 잔 했다. 언젠가 아들 걱정을 했더니 종문이 아저씨가 ‘너보다는 아들이 낫다’고 한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래, 아빠는 지금이 참 좋다. 만족스러워. 그렇다면 아들의 삶은 아빠보다 훨씬 좋을 거야. 한참 방황을 하던 중 스물다섯에 네 엄마를 만나 만난 지 두 달 만에  느닷없이 결혼을 선언했다. 그때 주위 분들이 염려를 많이 하셨다. 부부라는 게 그래. 모순 그 자체인거지. 세상에 뚫지 못할 게 없는 창 모(矛) 세상에 방어하지 못할 게 없는 방패 순(盾) 아들이 독신주의, 비혼을 이야기하는 것에 아빠의 결혼 생활이 결코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기에 이해를 하면서도 아들이 비겁해 보이는 것은 이 모순을 대립으로만 보고 피하는 거 같기 때문이야. 모순은 관계란다. 조화속의 관계 말이다. 아빠가 가끔 되지도 않는 소리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읊조리는 것은 킬리만자로를 오르고 싶기 때문이란다. 아프리카 대륙에 우뚝 선 만년설. 그 모순을 오르고 싶은 거지. 부부 관계도 그런 거야. 아빠는 그렇다. 참고하렴. 흙일을 시작하는 이솔에게 “1962년生 이현배의 반평생” 아빠는 장수 장계를 가면 눈이 머무는 곳이 있단다. 그 곳은 초등학교 뒤에 있는 한 작은 집이야.  아빠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 아빠는 그 집의 흙벽을 아홉 살 때까지 뜯어 먹었어. 그 시절의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런 연유로 옹기기장이가 되었다고들 한단다. 아니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아빠 스스로 일에 대해 고민하며 ‘흙’에서 일을 찾으려 했던 것도 그 기억, 흙을 뜯어 먹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단다. 아빠의 학창시절, 초중고의 시절은 별명 ‘골배’로 싱징이 될 꺼야. 골이 비었다는 뜻으로 불린 것인데 돌이켜보면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달랐다’싶다. 아니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하는 게 올바른 표현이겠지. 어쨌거나 생각에 서툴렀던 아빠는 ‘생각을 생각하며’ 살게 되었고 요즘에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단다. 말하자면 아빠는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 봐 책을 ‘읽는다’고 안하고 ‘본다’고 한 것처럼 책을 ‘보면서’ 글쓴이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지. 돌이켜보면 지금의 삶이 이미 고등학교 시절의 고민과 혼란 속에서 형성되었지 싶은 거야. 아빠를 위로할 것은 없어. 왜냐면 ‘생각한다’는 것에 서툴렀기 때문에 아빠 나름의 수준에서 고민이지 남들에게는 거의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어. 아빠는 행운아야. 만약 그 시절에 지금의 감수성이었다면 그 당시의 여건을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얼마 전, 아빠는 무거운 주제의 세 가지 책을 이틀에 걸쳐 정독했단다. 그러고는 아빠 또래의 사람들에게 소모임을 만들어 중ㆍ고등학교 교과서를 공부해보자는 제안했단다. 이러한 제안의 이면에는 분명 중ㆍ고등학생 시절에 공부를 매우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반성인거지. 그리고 그 불편이 이제껏 있는 것이고. 미련하게도, 그러기에 인간이라고도 하지만 그 때 교과서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이 많이 후회된단다. 그렇지만 고2 때 사회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와의 인연이 닿은 것은 아빠에게 엄청난 행운이었어. 그 잡지가 다룬 깊이 있는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담배 갑에 쓰인 공익광고문구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의 모순을 지적한 공익광고는 아빠의 내면에 아주 큰 울림이 되었던 거야. 세상에 뚫지 못할 게 없는 창(矛)과 세상에 방어하지 못할 게 없는 방패(盾)의 공존, 모순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 오늘날까지, 그러니까 이 아빠의 반평생을 살아온 힘이 되었던 거지. 그리고 그 힘이 궁여지책으로 진학한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 그럼으로 해서 호텔에서 초콜릿 빚는 일을 하게 되었었지만 그 일을 쉬이 접고 이렇게 옹기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거야. 아빠가 문화인류학과 문화기획을 공부한 것은 흙을 빚는 옹기장이에서 땅을 빚는(지역 디자인) 옹기장이로의 작업을 위한 거였단다. 참 행복한, 행운의 옹기장이인 것이지. 여기까지가 아빠의 반평생이야. 남은 반평생? 우리 집 벽에 걸린 엔진소리 나는 시계 기억하지? 할리데이비슨 1905년 모델서부터 1948년까지 열두 가지 모델별로 엔진소리가 나는 시계 말이야. 바로 그 할리를 타는 거, 그래 저절로 두 다리 쭉 뻗고 몸을 적당히 뒤로 젖히면서 내가 내는 엔진소리 내가 들을 수 있게 적당히 달리고 싶은 것이 이 아빠의 꿈이야. 아빠는 그래. 남은 반평생을 그렇게 살고픈 거야. 추리닝처럼 조금은 헐렁하게 말이야. 고민, 고2 이바우에게 오늘 점심에도 누룽지는 아빠가 혼자 차지했단다. 다른 식구들은 누룽지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바우가 있었다면 같이 긁고 있었겠지. 바우가 없어 아빠가 독식을 하니까 많이 먹어 좋긴 하지만 동지가 없어 쓸쓸하기도 한 상황이었단다. 먹는 것을 보면 우리가 참 많이 닮았지? 얼마 전에 바우가 봤던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보는데 바우가 밑줄 친 구절들을 통해 바우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단다. 바우는 어땠을까.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클럽』에서 아빠가 친 밑줄을 통해서 말이야. 우리는 먹는 것 말고도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닮은 것 같아. 그래서 같이 만화학습을 해보자고 하는 것이란다. 학습계획을 얼추 세웠는데 제목은 <전북 진안 희망백운 만화학습 프로그램>이고 소제목은 <흰白 구름雲이 전하는 희망 <모/순 위에 오/르/다>>로 정했단다. 이것은 토지공사 도시개발연구소와 하자센터 로드스콜라 그리고 우리 전북 진안 희망백운이 사회공헌으로 관계를 맺고 조화를 통해 모순 그자체인 농촌, 농업, 농민의 지역문제를 풀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란다. 구체적 실체, 땅(농촌)과 형체없는 실체, 하늘(희망) 사이에 있는 구름, 그 구름이 만화 같은 것이고 또 만화가 구름 같은 것이잖아. 그래 만화적 상상력이 매우 유효하기에 만화학습을 통해 희망백운(꿈)을 구현하자는 거야. 이를 통해 토지공사 도시개발연구소는 사회공헌을 통해 제일 작은 규모 사회구성체인 농촌마을의 문화를 매개로하는 지역활성화를 촉진하고, 하자센터 로드스콜라는 길 위 ‘낯선 곳에서 자신을 만나는’ 모순된 상황을 전환하는 학습과 희망백운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게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리 희망백운은 삶을 위한 예술 생업디자인을 구현하는 것이란다. 2000년도로 기억되는데 바우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5월 15일 스승의 날, 아빠가 일일교사로 너희 교실을 찾아 만화를 그리는 김천정 선생의 ‘꿈’ 전람회 포스트를 붙이고는 ‘꿈’이야기를 했었지. 그날 이후 아빠는 너희 중에 미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있으면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단다. 그래서 이번 만화학습 프로그램에 그 당시 너희 반 담임이셨던 최란 선생님께 멘토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단다. 바우의 탯자리는 아빠가 선생을 찾아 간 전남 벌교의 깊은 산중이지, 그러고는 계속 시골서 자라다가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다 보니 괴리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더구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아 보이던 걸. 우리 이번에 만화학습을 하면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보자꾸나. 큰 재미가 기대된다. 이현배  전북 장수군 장계에서 태어났다.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국내 유수의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들었다. 1991년 진안군 솥내로 내려와 옹기장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옹기마을의 토담집을 쌀 세 가마 반에 구입해, 막힌 가마의 불구멍을 틔우고 그릇을 굽기 시작했다. 자연을 섬기는 옹기를, 그 질박한 삶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 아직 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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