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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 |
[전라도푸진사투리] 꽃잠, 나비잠 그리고 ‘사랑잠’
관리자(2009-07-06 17:36:16)
꽃잠, 나비잠 그리고 ‘사랑잠’ 잠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평안하고 달콤한 순간의 상징이다. 더 자고 싶은 욕구와 일어나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당위 사이의 쟁투가 하루의 시작이다. 그래서 잠의 자취는 우리말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되어 나타난다. 잠, 이름은 알고 자는가 앉은 채로 든 말뚝잠, 옷 입고 자는 등걸잠, 모로 세워 자면 갈치잠, 구부려 자면 새우잠, 팔다리를 오그리고 자는 개잠은 자는 모습을 보고 지어진 말이다. 또한 일하다말고 멍석에 쓰러져 자는 멍석잠, 남의 발치에서 자는 발칫잠, 한데에서 자는 한뎃잠은 자는 곳을 따라 만들어진 말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새벽잠, 아침잠, 늦잠, 낮잠, 초저녁잠, 밤잠은 잠드는 시간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잠든 상태에 따라서도 잠은 여러 형태로 나뉜다. 달게 자는 단잠, 무슨 소리를 해도 듣지 못한 채 자는 귀잠은 잠시든 내내든 세상모르게 자는 잠이다. 반면 걱정거리, 말거리가 되는 선잠 계열은, 경계라도 하듯 자주 깨는 노루잠과 토끼잠, 잔다고 누웠는데 잔 것 같지 않아 헛잠, 눈만 감고 있어서 겉잠, 설핏 든 풋잠 등으로 분화되어 있다. 자지도 않으면서 자는 척하는 꾀잠은 더 놀고 싶어 하는 동심을 반영하기도 하다. 분류를 하다보면 늘 어디에 소속시키기가 쉽지 않은 특이한 것들이 있게 마련인데 병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자는 이승잠도 그 하나다. 이름처럼 달콤한 꽃잠과 나비잠 잠들지 못하는 밤, 핏발선 감각들 때문에 시간 위에 서서 외줄을 타는 인생들은 아슬아슬하다. 도시의 잠들지 못하는 밤, 그에 필요한 것은 노동이 주는 달콤한 피로다. 달콤한 잠 중 가장 행복한 건 역시 꽃잠과 나비잠이리라. 순결한 신랑과 신부가 귀하게 ‘벙글린’, 서로의 마음을 꽃피워 맞이하는 꽃잠, 그렇게 얻은 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려 활개 치듯 자는 나비잠. 꽃잠과 나비잠은 사람살이 가운데 가장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여 조어된 말이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이하생략) -고성 이 씨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1586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지금부터 423년 전,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원이 엄마가 남편을 떠나보내며 저승으로 보낸 이 편지는 아내와 남편이 잠자리에 누워 서로 위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지내는 속재미가 그림을 그리듯 표현되어 있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덧 이것이 사백 년도 넘은 이야기가 아니라 엊그제 누구네 아파트 침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랑잠’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살아있는 우리말, 사랑잠 우리 선조들이 잠에 대해 느끼고 깨달아 붙여놓은 수많은 잠의 종류 가운데 표준어에 등재되어야 마땅해 보이는 단어가 ‘사랑잠’이다. 이 말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의 한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회고하며 던진 회한의 한 마디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전라북도 방언 어휘라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오히려 미처 표준어로서 자격을 얻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을 뿐 언제든지 지역적 제한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쉽게 그 뜻을 짐작하여 사용될 수 있는 잠재적 단어다. 다만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사전들이, 혹은 수많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조밀한 단어의 그물망에 빠져 있는 단어 하나가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 본 적 없는 할머니 한 분의 언어생활 속에서 힘차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일은, 교육과 문자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도 충분히 토착적이며 자연스럽게 구사되는 한국말의 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우리말의 살아있는 자원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영란 산청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지난 98년 무주로 귀농하여 온 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자연에서 느낀 생각을 담은 『자연그대로 먹어라』, 『자연달력 제철밥상』, 『아이들은 자연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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