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 |
[문화현장] 서른다섯 전주대사습놀이를 보다
관리자(2009-07-06 17:31:39)
서른다섯 전주대사습놀이를 보다
추임새와 신명이 그리운 ‘그들만의 축제’
흥겨운 가락과 신명나는 소리의 향연. 전주대사습놀이가 올해 제35회를 맞았다. 지난 6월 2일과 3일, 전주실내체육관을 비롯해 전
주시청강당 등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예년과 달리 심사기준을 공개, 심사회피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불거진 심사의 공정성 문제를 잠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전주대사습놀이의 꽃인 판소리 명창에는 7전 8기의 오뚝이, 허은선 씨가 장원의 영광을 안았다. 올해 대회는 9개 부문에 688명이 참가, 지난 해 562명보다 양적으로 늘었으며 질적 수준도 향상했다.
서른다섯, 전주대사습놀이에 핀 꽃,
판소리 명창부 장원 허은선 씨
전주대사습놀이가 처음 열린 그 때. 너른 마당에 한 데 모여 곰삭은 소리로 밤을 보냈던 그 날. 본래 전주대사습놀이의 마당은 전국 명창들의 총 집합장이었다. 지금은 농악, 기악, 무용 등 다양한 국악을 접할 수 있지만 예전부터 전주대사습의 꽃은 판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꽃, 판소리 명창. 전주대사습놀이의 판소리 명창부 대회는 가장 높은 권위와 위상을 자랑하는 판소리 등용문이다.
올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은 7전 8기의 오뚝이, 허은선. 그는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단원으로 판소리 명창부에만 여덟 번 도전한 끝에 장원의 영광을 안았다. 일곱 번 실패 후 얻은 장원의 영광. 오랜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달콤한 수상이었다.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소리 공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자식처럼 챙기며 소리를 알려준 이는 성우향 명창. 평소 어머니와 같았던 성우향 명창은 그가 판소리 공부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다. 그는 소리 올라가는 성상 부분이 유난히 성우향 명창의 소리와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날 그가 부른 대목은 김세종제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 평소에는 <심청가>를 즐겨 불렀지만, 열세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오년 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심청가>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오늘과 미래를 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이 대회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번 대회는 예년에 비해 참가자들의 연령층이 낮아지며 국악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실력 있는 국악인들도 대거 출전하며 전주대사습놀이의 깊이를 더했다. 판소리 명창부 19명을 비롯 농악부 253명, 기악부, 36명, 무용부 28명, 민요부 19명, 가야금 병창부 10명, 판소리 일반부 21명, 시조부 57명, 궁도부 245명 등 총 688명이 출전했다. 올해 전주대사습놀이는 부분별 편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실력이 향상됐다는 평이다. 이에 반해 전라북도 지역 출신들이 비교적으로 기대치에 못 미쳤다고 한다. 농악 부문 심사위원은 농악의 경우 대학 전공자들이 많아지며 획일화 된 서커스 공연을 보는 듯 했다며 이렇게 기량이 비슷해지면 발전이 없다고 했다. 전주 시민과 국악 애호가들에게 가장 큰 잔치인 전주대사습놀이. 국악인들의 열기로 가득 한 무대와 다르게 텅 빈 객석은 한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렇게 대조되는 풍경은 ‘그들만의 축제’라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주대사습놀이는 경연대회이기는 하지만 본래 축제의 장이다. 서민들이 한 데 어울려 소리를 듣고 가락을 즐기며 삶의 애환을 달래던 축제. 흥겨움이 넘치고 흐르던 잔치. 지금 전주대사습놀이의 흥(興)은 어디로 갔을까. 오랜 세월 흥겨움으로 아픔을 달랬던 서민들의 잔치가 사라져가는 지금, 전주대사습놀이의 흥(興)이 그리운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