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 |
[문화현장] 범도민대회
관리자(2009-07-06 17:30:09)
범도민대회 - 6.10
촛불의 바람, 광장에 모이다
촛불의 바람이 분다. 민주 시민들의 외침이 바람을 타고 광장에 모였다. 6월 10일, 전국적으로 6·10 범국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전주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전주 오거리광장을 찾았다. 이날 범도민대회 참가자들은 민주주의 사수를 외치며 결의문을 발표, 노래 공연, 추모시 낭독 등 문화행사 형식으로 대회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어떤 바람을 타고, 어떤 바람을 안고 광장까지 모였을까. 촛불 콤플렉스와 광장 공포증이 만연한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다시금 광장에 모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충격이, 정부에 대한 막역한 반항의식만이 이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를 위해 촛불을 밝히나
이날 수많은 촛불들이 광장을 메웠다. 지금의 우리가 아닌 미래의 우리를 위한 염원이 광장에 가득 찼다. 이번에 열린 6·10 범도민대회에서는 전북도ㆍ시의원과 사회단체 회원, 시민 등이 모여 이명박 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사수 등을 외쳤다. 이들은 현 정권이 국민과 소통하기를 바라며 촛불을 들었다. 살풀이와 상영물 방영, 자유발언, 노래 공연 등 문화행사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범도민대회는 차분하지만 어느 때보다 강렬한 염원이 담겨졌다. 어린 아이의 손에도, 교복을 입은 학생의 손에도, 거친 노동자의 손에도 희망의 불꽃이 들렸다. 이날은 최근 박종태 열사, 노무현 전 대통령, 강희남 목사 등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추모제이기도 했다. 1천 5백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이날 대회는 결의문 발표에 이어 문병학 시인의 추모시 낭독, 한영애 씨 문화공연, 김용진 씨의 노래공연, 청보리사랑의 노래공연 등이 진행됐다.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의 국토 난개발, 학생과 교사를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정책, 단기 경기부양책에 불과한 경제정책,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대북정책 등 수많은 시민들이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날 솔래 고등학교의 한 여학생에게 범도민대회 촛불집회의 참여 계기를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 이후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책상에 앉아서만은 민주주의에 대해서 배울 수 없는 것 같아요. 직접 와서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광장(廣場),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광장(廣場), 사람들이 모이는 곳. 고대 그리스 도시에서부터 시작된 광장은 시민생활의 중심지였다. 어느 국가나 그 나라를 대표하는 광장이 있다. 중국의 천안문 광장, 프랑스의 개선문 광장, 러시아의 붉은 광장 등이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광장은 지금 어떠한가. 민주주의의 바람을 안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는 벽에 가로 막혔다. 정부는 비정치, 비폭력이 담보돼야만 광장의 문을 열겠다고 한다. 정권에 가로막힌 광장을 보며 광장이 과연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궁금해진다. 광장은 시민들을 위한 소통의 장이자 휴식과 문화의 공간이다. 특히 서울광장은 ‘Hi! 서울 페스티벌’이란 축제의 장이자 연중 각종 다양한 문화 행사와 축제가 펼쳐지는 곳이다. 정부는 축제와 문화 행사의 장에 벽을 쌓는 이유를 정치와 폭력 집회 때문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촛불집회가 과연 정치와 폭력에 물든 반민주주의 집회인가. 2002년 6월, 주한미군의 장갑차량에 깔려 숨진 신효순, 심미선 양의 사인 규명과 추모를 위한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열렸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확산된 촛불 바람은 같은 해 11월 처음으로 서울의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로 번졌다. 억울하게 숨진 두 명의 여학생을 위로하기 위한 촛불집회였다. 이후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이 일어나자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 바람이 전국적으로 번졌다. 이 촛불 바람은 불고 불어 2008년 까지 흘러간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열린 것. 수많은 시민들이 수입조건 재협상을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다. 이때의 촛불집회는 누구의 주도에 의해서도, 누구의 요청에 의해서도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 둘씩 모여 촛불을 들었다.
누가 어린 아이의 고사리만한 손에 촛불을 들게 했을까. 중고생들로부터 시작해 대학생, 일반 회사원, 유모차를 끄는 젊은 주부들까지 다양한 개인들이 광장으로 나온다. 비폭력주의를 바탕으로 작은 촛불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촛불문화제를 이룬 것이다. 비폭력주의를 바탕으로 촛불에 염원을 담아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이 정치적이고 폭력적이라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각자의 손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주위를 밝히는 촛불이 되고자 했다. 작은 불꽃과 불꽃이 모이면 온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희망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촛불의 바람, 광장의 벽을 흔들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거센 촛불 바람이 분다. 촛불의 바람은 광장에 모여 소통을 요구한다.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막는 광장에 갇혀 있다. 광장은 누구의 것인가. 시민들의 목소리가 흐르고 흘러 광장의 벽을 흔든다. 지금 당장은 권력의 힘으로 광장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파도에 부딪히면 절벽도 깎이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가슴에 절절한 심정을 담고 광장으로 모인 이들의 바람을 언제까지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6월 10일,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전북 등 전국 1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범국민대회는 국민들의 염원이자 바람이다. 촛불집회로 점화된 광장문화는 민주주의의 참 뜻을 이어가려는 시민들의 노력이다. 광장문화를 가로 막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벽을 헐고, 문을 열어야 할 때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