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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 |
[서평] 『푸코 감옥에 가다』
관리자(2009-07-06 17:27:49)
감옥 아닌 곳이 없다 이현수  시인 예사롭지 않은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서사 구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촘촘히 얽혀있다. 주고받는 대화뿐만 아니라 이들이 놓인 상황 속에 푸코의 철학이 적절히 녹아 있다. 『푸코 감옥에 가다』는 우리가 쉽게 ‘비정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지, 사회적 규율 장치가 어떻게 존재하고 권력으로 작용하는지 등 푸코 철학의 화두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비전공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으로 되돌아올까. 대부분 어렵고, 난해하고, 골치 아픈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불편한 철학을, 그 중에서도 푸코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들 앞에 등장시킨 책이 있다. 『푸코 감옥에 가다』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소설을 “쉽지 않은 푸코의 철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 철학은 우리에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비전공자들이 ‘철학’ 앞에 주눅 들었던 것은 사실 난해한 사상들만 나열해놓은 철학서들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서의 불친절함은 비전공자들이 철학을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학문으로 인식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비전공자들과 철학 사이에 놓인 이 어마어마한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특별한 도구를 사용했다. 바로 철학과 소설의 소통을 통해서다. 소설이라는 최상의 도구를 통해 비전공자와 철학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한 것은 비전공자의 한 명인 필자로서도 정말 반길만한 일이다. 사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의 사상은 지금까지 유럽 철학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성과 계몽의 의미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던 권력의 문제를 진지하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현대 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또한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이론, 사회과학, 심리학, 심지어 의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푸코의 사상을 작은 활자에 엄청난 주석, 그리고 두꺼운 철학서로 접하게 된다면, 필자로서도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매우 친절한 이 책의 저자는 푸코의 사상이 대체로 세 단계로 진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불가피하게 언급하자면 제1기는 푸코가 『정신병과 심리학』, 『고전주의 시대에 있어서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등의 저서를 중심으로 인식론적 연구에 집중하던 시기이며 그 당시의 주요한 관심은 광기와 질병,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관련된 역사적 의미를 연구하는데 있었다. 제2기는,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을 중심으로 한 이론 언어학의 연구시기로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 문제’와 역사적 시기를 특징짓는 인식의 틀인 ‘에피스테메’ 개념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제3기는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과 『성의 역사』를 출간했던 시기로 훈육과 규율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 주요한 연구 주제였다. 이러한 세 시기의 주요 주제를 저자는 참 다행스럽게도 소설 속 사건의 진행 과정에 모두 녹여냈다. 따라서 소설을 재밌게 읽다보면 푸코 철학의 핵심적인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바로 광식이와 광태 두 형제를 통해서이다. 2005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를 떠올리게 하는 두 형제. 그러나 영화 속 인물과는 좀 많이 다르다. 광태 동생, 광식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난독증’이다. 성적은 당연히 바닥이지만 그렇다고 사고 능력까지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대하던 친구들도 광식이가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점차 멀어지고 만다. ‘정상’인 친구들 사이에서 광식이는 ‘비정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자율학습시간, 교과서에 남자가 옷을 벗는 낙서를 하던 광식은 동성애자로 낙인 찍혀 정상인으로 훈련받는 학교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광식이는 ‘푸코’라는 지명수배자의 이름을 듣게 되고 같은 반 친구였던동구로부터 이곳이 ‘언더그라운드’이며 푸코라는 사람이 탈출을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푸코, 혹시 푸코는 형 광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광식이 형, 광태는 흔히 말하는 ‘천재’다. 명문대에 입학해서 철학을 공부했고 그 뒤 정신병원에서 ‘광인(狂人)’을 연구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광태에게도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다. 바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다. 어느 날 광태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커밍아웃’을 선언한다. 천재였지만 그 순간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내몰린 광태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광태는 자취를 감춘다. 광식이는 점차 푸코가 형 광태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이성 체계와 세계의 견고한 감시 체계를 파괴하는, 투사가 된 형을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형은 광식의 예상대로 ‘푸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공간의 틈을 벌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중세의 끝자락인 15세기 말과 17세기 고전주의 시대, 근대로 들어선 18~19세기의 유럽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형이 경험한 에피스테메(episteme)에 대해 알게 된다. 이 과정 속에 푸코의 철학이 순서대로 녹아 있으며 광식이와 광태는 억압의 상징인 ‘언더그라운드’와 원형감옥인 ‘파놉티콘’ 독방을 탈출해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형제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지금까지 철학을 소설 속에 풀어놓는 작업은 드물지 않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대개 이야기가 너무 헐거워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좀 머쓱한 것이 사실이었다. 사건은 개연성이 없이 이어졌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주요 내용들이 빼곡히 담기는 그야말로 소화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철학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다르다. 예사롭지 않은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서사 구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촘촘히 얽혀있다. 주고받는 대화뿐만 아니라 이들이 놓인 상황 속에 푸코의 철학이 적절히 녹아 있다. 『푸코 감옥에 가다』는 우리가 쉽게 ‘비정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지, 사회적 규율 장치가 어떻게 존재하고 권력으로 작용하는지 등 푸코 철학의 화두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처럼 묵직한 주제를 요즘 청소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생활상을 통해 발랄하게 펼쳐내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철학책으로서도 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험, 성장 혹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 같다. 또한 가능한 한 쉬운 말로 간단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단어들 중 부가설명이 필요한 경우는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이처럼 넓은 범위에 퍼져있는 푸코의 사상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철학소설 『루소, 학교에 가다』를 썼던 이 친절한 저자는 이번 책 『푸코 감옥에 가다』를 쓰기 위해 꼬박 3년을 매달렸다고 한다. “푸코에 비하면 루소는 손쉬운 작업이었다”는 게 저자의 고백이다. 청소년 철학소설이지만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이나 재미있게 철학을 읽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고 유용한 푸코 입문서가 될 듯싶다. 이현수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김용시창작기금>을 수혜 받았고, 200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늙어가는 판화」가 당선되었다.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시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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