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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국역 여지도서』
관리자(2009-06-03 19:01:49)
조선시대 지역 샅샅히 읽기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우리나라 자치단체의 수는 232개이다. 각 자치단체마다 시장 또는 군수가 있고 시와 군의 집행부를 견제하는 의회가 있다. 국가가 지역을 구분한 것은 효율적인 지방통치의 수단에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고 통치자인 국왕을 중심으로 국왕의 명령이 백성들 개개인에게 전달되는 통치구조의 효과적 운영은 일정한 공간을 구획하고 그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때문에 행정구역은 삶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적정한 면적으로 구획되었다. 과학의 발달은 공통의 생활공간을 시대에 따라 변화시켰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행정구역의 개편이 필요했지만 산과 물을 경계로 했던 전통시대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는 지역 공간이 단순한 통치구조에 기반하여 형성 유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역(행정구역)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자 그들의 몫이다. 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통치한다는 것은 지역민의 삶과 지역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중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이해를 확보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리지의 편찬은 그 주요한 한 방법이었다. 조선시대 정치·경제·군사 등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제반 자료를 지역별로 모아 정리한 『세종실록지리지』나 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문화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많은 시문(詩文)을 수록한 『동국여지승람』도 성격은 다르지만 지역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궤적을 갖는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이 조선전기의 지리지였다면,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지리지는 『여지도서』이다.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 사이에 편찬된 전국지리서로 채색지도가 포함된 필사본이며, 원본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후기 인문지리서의 규범을 평가 받는 『여지도서』는 읍지(邑誌) 295개, 영지(營誌) 17개, 진지(鎭誌) 1개 등 모두 313개 지리지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역 일부 고을은 읍지가 누락되어 있는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책으로 축소·영인 간행하면서 누락된 읍지 39개, 영지 6개의 지리지를 보유편으로 추가하였다.
『여지도서』에는 당시 지도, 도로망, 방리, 호구, 건치연혁, 고을 이름, 형승, 성곽, 관직, 산천, 성씨, 풍속, 궁실, 학교, 사당, 관공서, 제방, 창고, 특산물, 역원, 교량, 목장, 요새, 봉수, 누정, 사찰, 고적, 군부대, 명신, 충신, 효자, 열녀, 제영(題詠), 논밭, 진상품, 각종 세금, 관리 녹봉, 군사 숫자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객사, 정자, 누각 등에 걸린 기문과 한시 등도 망라되어 있다.
영조대에 공식적으로 간행되지 못한 “미완의 전국 지리지”는 『동국여지승람』과 같이 지역민들의 교화적인 수단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 지방 통치에 필요한 행정적, 실용적 측면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목적성을 띈다. 즉 ‘미완’이 가지는 가치성에 주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완간의 여부와 상관없이 18세기 중엽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선후기 지방사회를 연구하는 필수 자료인 것이다.
『국역 여지도서』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지원사업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연구비를 받아 우리말 번역을 시작한 이래 8년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번역의 성과를 인정받아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출판비를 지원 받기도 한 『국역 여지도서』는 총 5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지도서』는 지역에 대한 종합 정보지이다. 첫 머리에 각 지역의 채색지도를 그려 넣어 자연 공간 및 지역간의 거리와 방위, 행정ㆍ군사적 내용 및 문화시설 등을 표기하였다. 또한 호구 및 전결(田結)의 실태를 정리하여 농업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경작지의 변동과 수리시설의 개발 유지 현황을 이해할 수 있으며, 지역의 특산물과 중앙에 올려 보낸 물품, 각종 조세 관련 조항 및 군역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이외에도 관직 조항에는 지방 소속 관원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관아 운영 경비를 구체적으로 명기하였다. 인물조에서는 충신·효자·열려 등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이렇듯 『여지도서』는 18세기 조선시대 각 고을의 제반 현황을 개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이다. 따라서 지역연구에 있어 『여지도서』의 번역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진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일제시대 편찬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동일한 형태로 출판되고 있는 시·군지(市郡誌)가 편목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지역 연구 입문서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반면, 『여지도서』의 번역은 그러한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의 지역 현황 및 인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자료를 번역한다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다. 특히 공동 번역의 경우 번역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서 꼼꼼하고 힘든 공동의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번역팀은 ‘빈틈없는 정확한 한문 독해력’, ‘구조적 역사 이해력’, ‘아름다운 한글 구사력’이라는 ‘번역의 세모꼭지’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번역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하여 번역팀은 매월 1~2차례 3박 4일의 일정으로 천호성지에 있는 호남천주교회사연구소에서 합숙하였다고 한다. 각자 자신이 번역한 내용을 연구팀이 모두 모여 윤문하고 축자대조하는 한편, 번역의 용례를 통일하기 위한 끝없는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특히 ‘아름다운 한글 구사력’의 원칙은 역사서의 번역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다양한 번역 용례를 사용하였다. 아름다운 한글 구사력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 번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번역서들이 역사 용어라는 이름으로 그냥 사용해 온 엄칙(嚴飭)ㆍ신칙(申飭) 등의 용어를 ‘엄히 타일렀다’ ‘거듭 타일렀다’는 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은 어떠한 우리말로 바꿀 것인가이다. 때문에 국역 작업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사실 한문에 대한 해독(解讀) 보다는 우리말에 대한 지식부족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출간된 『국역 여지도서』는 그 이용대상을 포괄적 일반인으로 대폭 확장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독서량이 좀 있는 초등학생의 수준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 번역’이 아닌 ‘우리말 번역’을 수행한 점이 두드러진다. 우리말 번역의 노력은 자칫 연구자들에게 어색함을 가져올 것이다. 연구자들만의 향유물로 사용되었던 수많은 용어들이 우리말로 바뀌었기 때문에 읽어나가기가 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