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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 |
[문화시평] <오월은 푸르구나>전
관리자(2009-06-03 19:01:27)
전북도립미술관 <오월은 푸르구나>전   5월1일~6월7일 얘들아, 미술관에서 놀자 이경아 주부 지난 17일 구이에 위치한 전북도립미술관을 찾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곧 비를 토해낼 듯 억척스런 표정이다. 작년 오월에는 도립미술관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원화전>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상시 우리 아이들이 즐겨 읽던 동화책들의 원본 그림을 볼 수 있는 흔하지 않는 기회여서 두 아이들을 끌고 찾았었다. 매년 오월이면 도립미술관이 아이들에게 서비스하듯 내놓는 전시가 이번에는 <오월은 푸르구나>전이다. 평상시 미술에 그닥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이브를 할 겸 종종 도립미술관을 찾곤 한다. 바람쐬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전주시내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긴 하지만 무슨 전시를 하는지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사실 잘 알기가 쉽지만은 않다. 구이로 가는 길 내내 딸아이는 박물관을 가고 싶다고 생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다녀왔는데 못내 뭔지 아쉬웠나 보다. 결국은 타협을 할 수 밖에. 미술관 갔다가 시간되면 박물관도 들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점심을 막 지난 시간인데다가 날씨도 좋지 않은데 의외로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여서 그런지 모두 가족단위다. 로비에서는 페이스페인팅과 배지 만들기 무료체험이 열리고 있었다. 페이스페인팅은 이미 많이 해봐서인지 9살, 5살 두 녀석 모두 하자고 성화다. 몇 분간 줄을 서서 기다려서 딸아이는 딱정벌레를 아들아이는 하트모양을 골랐다.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했는데 그 사이 옆자리 배지만들기는 벌써 줄이 길다. 페이스페인팅은 흔하게 보던 것이었지만 직접 그린 그림을 동그란 배지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이들 눈길을 사로잡았나보다. 배지만들기도 하겠다는 아이들의 성화를 못 들은 척 하며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첫 번째 전시장에는 갖가지 얼굴모양이 그려진 커다란 공들이 수십 개 놓여있다. 아마도 작가는 각기 다른 얼굴에 의미를 부여한 듯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미술관에서 공놀이를 한다는 재미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제 키 만한 공을 굴리느라 정신없는 아이들 옆에서 공들에 그려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우는 얼굴,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들이 아이들 손에 발에 채여 이리저리 굴러 다닌다. 스치듯 사라지는 얼굴 안에서 살아가며 나는 어떤 표정을 많이 지을까 잠시 고민해 봤다. 그러는 사이 딸아이도 공에 그린 표정을 보았는지 웃는 얼굴이 그려진 공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살며시 다가온다. 아마도 가족이 함께 주말 오후에 미술관에 온 것이 기뻤던지 첫 번째 선택이 웃는 표정이다. 다른 전시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작품들이 우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두 번째 전시관에는 다양한 설치작품들이 천장에 벽에 그리고 바닥에 놓여 꼬마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더니 미술관 높은 천장에 달린 작품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어른인 나도 고개를 쳐들고 봐야 하니 아이들 눈에 보일 턱이 없다. 큐레이터가 이런 작은 부분에도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작품은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눈이 가면 자연스레 손이 가는 것이 아이들인데 작가도 큐레이터도 그런 것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던가 보다. “손대면 안 돼. 손 대지마”를 몇 번 했더니 금새 두 녀석 다 시들해졌다. 흥미를 잃은 아이들을 달래서 다음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1층 강당에서 마술공연을 한단다. 마술이란 소리에 귀가 번쩍 트인 딸아이가 쳐다보는 순간 나도 두 아이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마술공연은 텔레비전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에 괜스레 흥분됐다. 강당에는 어느새 알고들 내려왔는지 사람들이 이미 좋은 자리는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미리 좀 전시정보를 보고 올 걸’하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젊은 마술사가 마술도구를 들고 등장한다. 손에서 카드를 뽑아내고 형형색색 색종이가 당기는 대로 입안에서 나왔다. 무릎에 앉힌 아들아이도 신이 나는지 연신 고사리 손으로 박수를 쳐댔다. 빈 모자에서 나온 비둘기는 날아가지도 않고 공연장 한켠에 조심스레 앉아 있고 이를 본 아이들은 “비둘기, 비둘기”하며 마술사아저씨에게 알려준다. 관객들이 신나서 쳐다보니 마술사도 신이 나는 듯 입담과 손짓이 더 날렵해져 갔다. 딸아이는 연신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마술사의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같이 온 부모들도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레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45분간의 마술공연이 막을 내렸다. 신나게 공을 가지고 뛰고 박수치느라 정신없었던지 두 아이 다 목이 마르다며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미술관 한 켠에 마련된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안겨주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졌다. 미술관이 단순히 그림만을 보여 주는 곳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그 기능을 훌륭히 하고 있었고 그걸 즐길 수 있는 도시에 산다는 것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미술관이 없는 다른 도시는 얼마나 삭막할까 하고 말이다. 미처 다 보지 못한 다른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상과 사진에 관한 전시가 아이들을 맞았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준비된 컴퓨터 앞에서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유명한 마를린 먼로 대신 딸아이의 웃는 얼굴이 미술관 벽에 투영된다. 아이들이 손을 대면 다양한 영상이미지가 표현되는 작품 앞에도 신기한 눈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둘러서 있었다. “손대지 마”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들 만져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마지막 전시장에는 아이들이 만져보고 올라탈 수도 있는 다양한 조형물들과 그림일기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커다란 그림일기장을 앞에 두고 모두 바닥에 앉아 자신들만의 일기를 그리고 쓰는 아이들. “이렇게 그려봐”, “싫어, 그럼 엄마도 달라구 해”하며 투닥거리는 모녀하며 다 그린 그림일기를 벽에 붙여 달라고 선생님을 찾는 아이들까지 모두들 여기가 미술관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열심이었다. 그림일기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미술관이 이번 전시처럼 좀 더 열린 전시를 마련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순수미술이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자주는 아니어도 온 가족이 함께 체험하고 몸으로 미술을 느껴 볼 수 있는 그런 전시가 있다면 미술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닐까. 돌아나오는 길에 “엄마, 우리 다음에 또 오자”하는 딸아이의 상기된 목소리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을 듯 싶었다. 이경아/ 전북대학교를 나와 전주에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독서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지인들과 함께 꾸준하게 독서지도모임 활동을 하고 있는 전업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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