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6 |
[문화시평] 용산참사 100 일 게릴라 기획전
관리자(2009-06-03 19:00:59)
용산참사 100 일 게릴라 기획전
망루전(亡淚展)5월1일~5월7일
“여기 사람이 있다”
진창윤 전북민예총 미술분과장
비가 내리면 불투명 하늘에 산과 들과 나무, 모두 경계가 없어진다. 한발쯤 물러나 하나의 풍경으로 뭉뚱그려진, 그림 속을 천천히 걷는다. 지우고, 지우고, 무쇠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심장의 바닥에 어지러이 꽂히는 나는, 사랑할 수 없다. 뽑을 수 없다. 그림은 언제나 내게 안개 속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처럼,안개 속이다.
아서 단토가 미술의 역사적 종말을 고한 후, 모든 것은 예술이며 또 예술이 아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졌다. 다원주의 시대. 과연 미술은 무엇인가?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이거나 상업적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것들은, 현대인들의 강박적 정신분열, 대중복제적 현실이 가져다준 현상이다. 이제 극한의 미술은 문명의 죽음을 넘어 종교가 되었다. 작가 스스로가 신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예술은 아니다.
예술은 본질적인 것이다. 예술은 ‘왜 사는가? 진리는 무엇인가?’ 라고 던지는 질문이며, 이 시대를 읽는 ‘창’이며 이 시대의 철학이다.
세상은, 참과 거짓, 실제와 허구, 대상과 그림자, 시간(객관적이고 물리적인)과 시각(주관적이고 심리적인)을 중첩 화면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휴가를 떠난다. 자본주의의 욕망과 포장된 허구 속으로,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자신마저 복제의 허상속에 매몰시킨 채 휴가를 떠나는 건 아닐까
섬이 있다.
그곳은 섬이었다. 아니 그들은 섬이 되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섬이 되기로 했다. 망루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낮인데도 마음 놓고 걸을 수 없었다. 용역들은 몽둥이를 들고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시비를 걸었다. 그리곤 욕설과 몽둥이를 휘둘렀다. 마을에는 공포가 흘렀다. 용산4구역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섬이었다. 그리하여 진짜 섬이 되기로 했다. 건물옥상에 섬을(망루) 만들었다. 그곳엔 자유가 있었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입을 뗄 수 있었다. 편안했다. 저녁이 오고 아침 해가 빌딩사이로 막 차올랐다.섬에서 처음 맞는 아침햇살은 몸은 느슨하게 했다. 새벽 6시쯤이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크레인이 올라오고,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우리들의 섬에 비행선처럼 다가왔다. 잠깐이었다. 펑 소리와 함께 섬이 무너졌다. 우리들의 소망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졌다.
용산4구역 망루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용산참사 100일이 지났다. 장레도 치르지 못한 다섯 구의 시신은 여전히 병원에 있고, 진상규명도, 한마디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은 흐를 뿐이었다. 얼마 전 용산참사 관련 변호인단은 ‘용산참사’ 재판 관련 변론중단을 선언했다. 검찰은 용산참사와 관련된 1만여 쪽에 이르는 수사 서류를 변호인단에 전원 공개하라는 대법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3000여 쪽) 있다. 검찰은 공권력도 무시하는 공권력이 되었다.
검찰은 ‘1월19일 내내 화염병과 골프공 투척이 난무했고, 인도와 차도를 무차별 공격해 도심 테러에 준하는 상황이었다. 특공대도 이같이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한 경찰특공대는 “농성자들이 화염병 등을 의도적으로 도로 쪽으로 던지지 않았다”, “골프공 등을 던지며 강력하게 저항은 했지만 망루 내부에서 화염병을 투척하지는 않았다”, “경찰진압이 시작되기 전에는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등으로 진술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이 밖에도 용역업체 직원들이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에 들어간 시점과 경위, 경찰과 용역업체의 합동작전 조사에 대한 용역업체 직원들의 진술이 번복된 흔적과 “(검찰이) ‘왜 처음에는 망루 내의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보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지 않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특공대의 진술이 대동소이해서 일치해 가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니까 거기에 투입되었던 대대장이 ‘처음에는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경험한 정도에서 얘기했겠지만 이게 나중에 언론보도 되고 하니까 서로 상황을 공유하고 말을 맞추는 형태로 진술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는 식의 진술이 있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변호인 측 권영국 변호사
공권력의 의도된 진압에 의해 다섯 명의 철거민이 목숨을 잃었던 용산참사, 그들의 최소한의 섬이었던 망루는 ‘亡淚-망자의 눈물‘이 되었다.
2009년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 전북 예술회관에서 전북민예총, 용산참사와 함께하는예술가들, 전북평화와 인권연대, 용산살인진압 전북대책위원회가 함께 5월 1일 오전 11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작품 전시, 6일 유가족과의 대화로 진행했다.
망루전은 유가족과 연대하는 70여명의 예술인들이 용산참사를 알리기 위해 현장에서 만들어진 작품들과 순회전을 하면서 추가된 작품들로,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되었고 대구,울산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
미술은 시대의 창이다. 현실을 떠난 예술은 없다. 지극히 순수한 자연주의 미술일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자연은 백 년 전 자연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한다 할지라도, 작가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한, 개인의 역사는 결코 지금 이 시대의 상황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아니다. 한 개인의 가치관은 결코 당대의 환경을 벗어나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다.
어쩌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해야 하는 시절이 다시 찾아 올려는 지도 모른다. 그늘이 없는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상식이 통하는 세상, 보통사람들의 이해와 판단력에 부합하는 기본적인 의식이 통하는 세상,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긍정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평범한 보통사람이 아프면 아프다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자유스럽게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는 세상이기를 원했다. 표현할 자유, 그 근본이 흔들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섬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건 아닌가? 불타는 망루에서 외친 “ 여기 사람이 있다” 그의 말이 남의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