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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 |
[신귀백 영화엿보기] 예술은 미래를 장전한 무기다
관리자(2009-06-03 18:57:56)
예술은 미래를 장전한 무기다 - 전주국제영화제 10년이  선정한 최고 영화   <노벰버 2003> 11월당의 청년들 “규칙이 없는 것은 좋은 규칙이다.” -장 뤽 고다르 1979- 예술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스페인 영화다. 아체로 마냐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자유·독립·소통을 기치로 내건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그리고 올해 10주년 기념상영을 한 번 더 했다. 메시지가 낡았다고? 아니다. 영화제에 수상할 만한 영화지만 난해한 영화도 아니다. 노벰버(노비엠브레)는 자유극단이다. 왜 노벰버인가? 10월에는 러시아 혁명이 있고 12월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있기에, 그들은 11월을 그들의 결사 이름으로 정한다. 공연을 하되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극단 규약 첫 번째. 혁명이고 몽상이다. 순수 예술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 알프레도를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추억이 전개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영화 속 주인공들이 노인이 된 후 그들의 젊은 시절인 1990년대를 회상하는 방식을 취한다. 요즘 예술이 그렇다. ‘페이퍼 워킹’으로 일단 기획서를 써서 자본을 끌어오고 ‘아는 사람’을 통해 움직여지는 정치행위에 다름 아닌 지 오래다. 그러니 이 영화는 오늘날 자행되는 예술 전반에 대한 경고다. 흐린 창랑에 발을 담그지만 본질적으로 독립과 자유를 향한 예술의 이상향에 대한 메시지인 것. 죽음으로 끝을 맺지만 우울하지 않고 경쾌하기에 영화제의 축제성에도 걸맞다. 보자. 1000유로 세대의 도그마 1996년, 자전거를 탄 시골 청년 알프레도는 배낭에 마리오네트 인형 하나 달랑 매고 마드리드에 입성한다. 원하던 연극학교에 합격하지만 교수는 정신분석 타령이나 늘어놓고 연기에 미친 그를 쓰레기 취급한다. 그는 미련 없이 자퇴원을 던진다.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오히려 그의 자유로운 연기의 시작이 된다. 작은 공연을 마친 후 몇 푼의 수입을 나눠주는 친구에게 웃으며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알프레도. 왜? 내 동기는 예술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내 연기를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고 이것은 상호이해의 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괴짜는 그가 하는 공연으로 엿같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이야기 하는데. 하여, 그와 친구들은 극단 노벰버 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배우에게도 ‘밥벌이의 지겨움’은 있다. 88만원 세대 아니 1000유로 세대로서 알프레도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거리에서 쇼를 시작한다. 이 젊은이는 예술가들이 갖는 욱하는 성격이나 게으름 그런 것 없다. 하루하루 먹을 것에 애달아하지 않고 광대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앙팡테리블이 바라는 것은 문화계가 주는 알량한 시민권이 아니다. 공짜가 없는 세상의 지하철과 거리, 백화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그들의 퍼포먼스는 계속된다. 관중이 황당해 하는 현실 속에서의 연기가 끝난 후  그들이 돈을 거절하자 관객이 오히려 당황해한다. 돈을 받는 순간 온전한 예술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그들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건조하고 재미없는 세상에서 그들은 마드리드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약자이며 소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들은 보험과 주택 청약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지 쇼 비즈니스가 아니니까. 순수하고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 11월의 청년들은 대의를 위해 공적 사적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첫 번째 원칙을 고수한다. 게다가 영화나 TV 등 대중매체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금지. 그리고 기존의 텍스트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거부된다. 기저귀 차고 악마 복장으로 하는 연기를 통해 마치 몰래카메라가 있는 듯 사람들을 조롱한다.   카메라는 예술영화가 갖는 지겨운 롱테이크 대신 젊음의 표정을 역동성 있게 잡아댄다. 잠자리에 애인과 벗고 누워서 이야기 하는 장면은 특별히 아름답다. 체위를 바꿔가며 하는 사랑의 행위가 아닌 부감 샷으로 벗고 누워 있는 자세들만 잡아줄 뿐. 젊음의 밤이라고 섹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껴안고, 때론 등을 대고 누워 밤새 그들은 대화를 한다. 젊은이로서 한 여인을 만나고 그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고 하는 과정이 너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에겐 누드 또한 의상이어서 공연 중 벌거벗은 스틸 샷은 보는 이의 유쾌한 미소를 자아내고, 벨라스케스 그림 앞에서 하는 연기나 마드리드 거리 여기저기를 잡는 카메라는 레알과 바르셀로나 축구 말고도 스페인을 가고 싶은 나라로 만든다. 그런데 극단 노벰버가 길거리 공연을 더 이상 집행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에서 총을 쏘는 퍼포먼스는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것. 앰뷸런스가 오고 119가 와서 맥박을 재는 등 한 바탕 소란이 벌어진 후 그들은 공권력을 우롱한 죄로 체포되어 테러리즘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기소된다. 당국은 그들의 소란스런 해프닝이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헤친다는 이유로 휠체어를 압수하고 유치장에 가두는 것.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시위가 잠잠해진 스페인의 강박관념이 읽힌다. 자유냐, 공연이냐? 공연을 하지 못하는 그들은 지쳐간다. 그 고통 속에서 아이가 생기지만 돈을 벌어오라며 다투지 않는다. 아내가 아이를 낳다 수술 하느라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한국식 막장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 11월당 멤버들에게 유수의 PD가 쇼를 요청한다. 수치스러운 돈을 안받겠다는 그와 주겠다는 공연기획자 사이에서 공연에 대한 욕구가 결국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독립극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그들의 규약은 깨어지고 비극은 다가온다. 공연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료 공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최초의 유료 공연 「메시아」를 두고 배우 입장에서 이들은 불편하다. 공연을 망치는 행위를 하는 배우나 관객들 역시 불편한 모습을 보일 때, 십자가 위의 예수 역의 알프레도는 중얼거린다. ‘주여, 왜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문화부에 서류를 보내는 행위 같은 푼돈을 위해 몸 파는 것을 가장 큰 죄악으로 느끼는 극단 멤버들 사이에 당연히 균열이 찾아온다. 대형 극장공연은 혁명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기에. 시장주의를 무시하는 이 문화적 탈레반들은 사실 부정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왕 온 것, 마지막으로 2000석 짜리 로열극장을 털 계획으로 그들은 무대를 점거한다. 천정에 매단 줄에 의지하여 광대 복장을 하고서 알프레도는 부자들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고 관객들을 조롱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린 자유롭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인종과 종교를 떠나 평등하게 작용하는 꿈을 꿀 것이다. 예술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표적은 맞춰져야 한다. 세상이 날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 총성은 들려져야만 한다. 예술은 미래를 장전한 무기다.” 라는 말과 함께 방아쇠를 당긴다. 그의 총구에서 나온 것은 총알이 아니라 꽃 한 송이 던지는 것이었는데, 그에게 순진한 친구 후앙의 진짜 총알이 날아온다.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이 담배연기를 뿜고 얼굴을 찡그리며 죽음을 맞는다면, 알프레도는 서커스 줄 위에 매달려 죽음을 맞는다. 자살이자 타살인 것. 참된 죽음이란, 예술이란 신전의 제단 앞에 목숨을 바치는 것. 시장이냐, 예술이냐?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 아닌가? 이 상투적인 세계에 그나마 예술적 충격이 없으면 인간들은 정말 스스로 파멸할 것이다. 예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건조한 세상이 재미없다 보니 예술이 위대한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백남준- 지겹게 광고에 등장하는 김연아의 스케이팅도 예술이고 몸을 날려 안타성 타구를 잡아도 예술이라 한다. 불상 머리 위에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엄청난 액수를 부르는 것이 예술이자 또한 사기라고 백남준은 고백한다. 뱀파이어가 피를 마셔야 살아갈 수 있다면 요즘의 예술은 돈을 마시며 유지된다. 이제는 문화 뒤에 산업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붙여대며 마을의 애틋한 전설마저도 스토리텔링이란 이름으로 스토리셀링을 하는 세상 아니던가. 노예계약서라도 무대만 서게 해달라며 신인은 정신없이 틈새시장을 찾는다. 해프닝과 이벤트 사이에서 예술의 새로운 시도는 쉽지만 그러나 장벽은 두텁다. 그러니 멀쩡한 다리를 자르고 아픈 다리 내놓고 장사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겨우 차비나 되는 상병 말호봉의 작은 수익금의 세계를 지나 브루주아 세계에 발을 디디고 돈과 이름이 함께 오길 기대하지 않던가? 소수지만 새로운 모험과 시도가 성공한 뒤에는 셀러브러티의 명성과 함께 돈이 따라온다. 그 다음에는 프리에이전트가 되고 VIP 전용출입구를 이용하는 명사가 되는 것이 오늘날 예술가의 꿈 아니던가. 요셉 보이스, 백남준 그리고 앤디 워홀 뿐 아니라 영화 <바스키아>의 명대사 역시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이다. 기성의 삶을 조롱하며 새것에 대한 열망으로 대중을 한 방 먹이는 것.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하는 공감을 이끄는 것으로 한 세상을 치부하는 예술가들도 많다. 그들은 남이 안 한 새것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예술가 아닌 스타일리스트로 한 세상을 돈과 함께 살아가는 것. 어찌 다 그러겠는가? 아버지의 영화를 거부했던 누벨바그의 정신과 라스 폰 트리에 등의 95년의 도그마 선언 ‘순수의 서약’이 지금도 새롭듯, 이 11월당의 청년들의 자세는 영화 속 퍼포먼스만은 아니다. 생전에 작품을 팔지 못한 고흐와 이중섭이 그렇고, 『오리막』이란 좋은 시집을 낸 시인 유강희와 혼자 사는 함민복의 에세이가 <노벰버>의 진가를 증명하지 않는가. 영화제 영화라지만 비주얼한 충격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시장과 학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예술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작품. 사실 이 영화는 돈이 되지 않을 게 뻔해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돈부터 벌어놓고 구애받지 않고 공연하겠다고 헛심 쓰는 예술가들, 스폰서의 입장에 따라 충분히 내용조정과 가격조정을 할 자세가 되어있는 예술가들이 꼭 보셔야 할 영화다. 아 참, 미국 영화 <노벰버 2004>와는 다르다.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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