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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 |
전주국제영화제 10년, 78% 감동?
관리자(2009-06-03 18:56:23)
전주국제영화제 10년, 78% 감동? 김창주  전주문화재단 연구원 기억과 형식 모든 음악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좋은 음악은 그 선율이 쉽게 떠오른다. 그리고 흥얼거리게 만든다. 이것을 확장해 생각해 보면 좋은 음악은 기억과 관련된 것 같다. 위대한 작곡가는 기억술의 달인들 아닐까? 또는 예술가는 기억술의 달인들 가운데 하나의 부분집합? 이것을 한 번 더 확장해보면 예술작품이란 것은 결국 작가가 그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데, 좋은 작품은 주제 전달이 잘되었던 것 같다. 예술가의 주제가 효과적으로 전달 될 때, 관객은 감동한다. 나는 얼마나 많이 또는 깊이 감동했던가? 예술가는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떤 형식을 택한다. 시라는 형식을 택하기도 하고 소설을, 음악을, 그림을, 조각을, 춤을 택하기도 한다. 어느 장르 안에서 또 다시 형식은 분화 된다. 음악을 도식화하면 주제를 반복하고 변주하는 방법에 따라 형식이 존재 한다. 결국 형식이 어떤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주제를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면 기존의 형식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주제가 잘 전달된다고 모두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唐詩』와 『안나와의 나흘 밤>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한 것은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다. 장률 감독의 영화 <당시唐詩>와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영화 <안나와의 나흘 밤>에서 기억과 형식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당시唐詩>는 지루한 영화였다. 어느 백수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흔히 보는 대중영화와 달리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심심한 영화였다. 영화의 중간 중간에 제목처럼 당나라 때의 오언율시五言律詩가 등장한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장률은 이런 말을 했다. “자유시는 못 외우지만, 사람들은 형식이 엄격한 이 시들을 하나쯤은 외울 겁니다.” 구술문화에서는 기억을 위해 엄격한 형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어떤 예술적 주제를 담는 주된 형식이 존재한다. 문자의 시대, 영상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당시唐詩>는 영화제 기간 동안 재미나게 본 다른 영화 보다 더 깊은 기억을 남겼는데, 그것은 이 영화의 형식 때문이었다. 대중영화의 내용은 일상이 아니다. 그 안에는 드라마틱한 영화의 형식이 존재한다. 이런 형식을 무시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이 일상을 대중 앞에서 영화라는 이름으로 상영한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 영화가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영화의 문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는 재미나게 읽히고, 빨리 잊혀지는 것이 각광을 받는다. 전달하는 매체에 따라 익숙한 또는 보편적인 형식이 존재한다. 흔히 사람들은 그 문법에 맞춰 내용을 해석하고 주제를 찾아낸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전할 때 “사랑한다”는 말과 진심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이성간의 사랑이라면 격식이 필요하고, 정치라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안나와의 나흘 밤>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천성적으로 아둔한 남자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실천하지만, 보편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영화의 말미에서 여자는 남자의 진심을 알지만 외면한다. 나는 남자의 모습에서 억압 받는 지식인과 명쾌한 진실의 전달을 위한 형식의 파괴를 대입해 보았다. 진실과 진리를 전달하는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표현이 억압되면, 대안이 되는 형식을 찾기 마련이다. 보편적이지 않고, 어딘가 뒤틀린 형식은 거부감을 주기 마련이다.   실험 위의 영화를 보고 나서 몇 가지 실험을 했다. 1,000자 내외의 글을 지어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장르는 모바일 문학이라고 지었다. 수차례 보내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반응이 왔지만, 문자테러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문화산업은 대중을 향한 테러? 그렇다면 대중예술 역시 테러 행위인데, 사람들은 왜 좋아할까? 대중의 외면, 대중과의 영합, 주제, 형식, 프로파간다, 문화산업, 예술이란 단어가 정리되지 않은 채, 아직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빙빙 돌고 있다. 78% 감동 사실 이런 생각과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문화산업과 아도르노’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런 생각과 논쟁은 그렇게 친근한 이야기는 아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말할수록 주위 사람들과 멀어진다. 그러나 전주국제영화제 10년은 우스개로 상처라는 말을 트라우마로 바꿔서 말하고, 실험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안목을 넓혀주는 기회를 제공했고,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것을 전주국제영화제가 브랜드화 했고, 성공했다고 평가를 내려도 손색이 없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의 판단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사람이 판단을 할 때는 합리적인 요소와 정서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합리적인 요소가 통계와 수치를 나타낸다면, 정서적인 요소는 브랜드 가치를 말한다. 매년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나면 관객 점유률이 발표된다. 올해는 78% 가량이다. 그럼 나는 78% 감동을 받은 것일까? 물론 이런 통계와 수치는 평가를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다. 브랜드 가치가 더 중요한 평가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쌓은 브랜드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전주국제영화제라는 실험실에서 꿈과 낭만을 먹은 괴물이 태어나길 기대한다. 김창주/ 전북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였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하였다. 대표작으로 GP32용 게임 '은행나무 소녀 밀'의 음악을 작곡하였고 저서로는 "아리랑 기원설 연구"가 있으며 현재 전주문화재단 정책연구팀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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