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 |
[문화현장] 정세청세
관리자(2009-05-08 14:13:59)
청소년, 세상과 소통하다
윤영래 편집장
지난 4월 11일 최명희문학관 비시동락지실. 20여 명의 청소년들과 학부형들이 모여들었다. 전주에서 갖는 첫 번째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토론회.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해 서로 세대차이를 느낄만한 다양한 구성이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밝게 빛났다. 전주 모임 첫 자리의 사회자는 강선희(고2)양. EBS의 방송물 시청으로 토론회는 시작됐다. 이날 주제는 ‘선택한다는 것-자유, 주체성, 인문학’.
‘선택’을 주제로 한 이날 토론회는 동영상 시청에 이어 조별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동영상은모두 네 편. 미완의 시도로 끝났지만 지금 유럽을 지배하는 세대인 ‘68세대’라는 명칭을 남긴 ‘1968 실패한 혁명’을 비롯, ‘시나브로’, ‘어느 사회 초년생의 사직서’, ‘위험한 힘’ 등이 연속 방영됐다. 주제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다소 무거운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 역시 기우였음이 바로 확인되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동영상에 집중했으며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자신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자유롭게 털어놓았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이하 정세청세)는 부산에 위치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청소년들이 기획, 진행하는 토론회다. 청소년들이 직접 꾸려나가는 이 토론회는 2007년 5월 시작됐다. 미국에서 진행된 노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인문학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얼 쇼리스의 책 <희망의 인문학>이 계기가 됐다.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하루가 부담스러운 노숙자들이 인문학을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직접 인문학을 얘기해 보겠다고 기획한 것이 바로 ‘정세청세’다.
2년 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부산을 비롯해 서울, 울산, 대구, 순천, 전주 등 6개 도시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선뜻 어른들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문학 토론회 ‘정세청세’ 의 전주 첫 토론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주 토론회는 지난해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초록시민강좌에 초청되었던 인디고서원 허아람대표의 강연이 계기가 됐다.
‘정세청세’ 회원들은 부모와 같이 강연을 들었거나, 강연을 들은 부모의 권유로 참여한 청소년들이다.
한번의 강연을 통해 인문학 토론회를 조직해 낸 허아람씨의 강연이 미친 영향력도 놀라웠지만 단순히 생각에 머물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여 토론회를 실천해 내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주목을 끌기게 족했다.
동영상시청이 끝나고 최명희문학관 앞 잔디밭에서 조별토론이 이어졌다. 아침을 거른 회원들을 위해 우유와 빵이 돌려지고 각 조마다 하얀 종이와 필기구가 놓여졌다. 저 큰 하얀 종이위에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 놓을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2학년 최지연양은 “서로 간 벽허물기가 먼저 필요하다. 남을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 자신에게 또는 남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 경우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소풍 때 부모님께 호두과자를 사다 드렸는데 돈 없는데 왜 사왔니라고 할 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사소한 것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지만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이야기했다. 고3생 김학수군은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자유나 사랑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성숙한 답변을 내 놓았다. 사회를 맡은 강선희양은 “직업선택은 기본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지만 직업활동을 통하여 타인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한다. 장래희망이 법조인이다. 법조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고, 한비야씨 책을 통해 읽고 한 생각이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정세청세’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이명희씨(강선영 양 어머니)는 “아이가 먼저 원했어요. 부산 인디고서원에 가서 ‘정세청세’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구요. 작년 환경운동연합에서 주최한 초록시민강좌에서 허아람씨 강연을 듣고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중학교 일학년 아들과 함께 참여한 이영선씨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렸을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요즘 들어 그런 생각들이 더 절실해져 아들과 함께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좋은 책 한권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날 아이들과 참여한 학부형들은 모두 단순한 길잡이의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라며 아이들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규율과 형식에 얽매여 있던 아이들에게 열린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자신들이 할 역할의 전부라는데 공감한 학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각을 교류하는 공간을 함께 마련할 수 있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주장과 생각을 주저없이 쏟아놓았다. 아이들의 생각을 어른들의 잣대로 평가하고 어른들의 생각을 강요하는 문화속에서 그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주장과 생각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나기 어려웠던 청소년들의 토론회는 뜨거울 수 밖에 없었다.
아직은 어리고 미숙하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고 그것을 활기차게 이야기 하는 모습.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서 우리의 미래가 보였다. 이제 첫발을 디딘 ‘정세청세’는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인문학토론회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학문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인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을까.
'정세청세'는 이날을 시작으로 ‘의심을 갖는다는 것-진실’, ‘아는 것과 믿는 것-가치관, 신념’, ‘저항한다는 것-용기’, ‘뛰어든다(참여한다)는 것-실천성’, ‘대화를 한다는 것-배려, 공존, 연대’, ‘창조한다는 것-희망, 변화’, ‘지켜낸다는 것-정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명희문학관에서 계속 진행되는 ‘정세청세’는 인터넷카페(cafe.naver.com/jscs)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