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 |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사투리] 흥미로운 비교
관리자(2009-05-08 14:11:39)
제보자는 두 분 모두 팔십객이다. 백운 할아버지와는 고려장 터를 확인하기 위해 차를 타고 산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무장 할아버지와는 볼 일이 있으셔서 읍내에 모셔다 드리는 길이다. 두 경우 모두 주변에 보이는 산을 거리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운 할아버지와의 대화>
제보자 : 요 꼴짝이 되너미여. 되너미여.
조사자 : 아! 되너미. 그러먼 요리 넘어가먼 어디여?
제보자 : 아, 대실, 여그가 대실 넘어가는 구렉여.
조사자 : 아! 그러먼 저그가 탄곡여?
제보자 : 응, 탕괵여.
조사자 : 거기 가먼 어디 차 돌릴 디가 있어?
제보자 : 하, 널렸지 머.
조사자와 백운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 같다. ‘요리 넘어가먼 어디여?’, ‘대실, 여그가 대실 넘어가는 구렉여’, ‘아, 그러먼 저그가 탄곡여?’, ‘응, 탕괵여’. 백운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불과 한 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둘 다 아무런 거리감 없이 반말을 해가며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장 할아버지와의 대화>
제보자 : 저기 저 바우 보이죠잉?
조사자 : 아.
제보자 : 저기다가 배 놋줄,
조사자 : 음,
제보자 : 옛날에 여그가 바단디 배 둘오먼
조사자 : 음
제보자 : 거그다 배 놋줄을 맺다는 그런 설이 있습니다
조사자 : 그렇군요.
무장 할아버지와는 이미 이틀 동안이나 함께 지냈으면서도 깍듯하다. 할아버지도 조사자도 응당 차려야 할 격식을 갖추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깍듯한 존대법과 격식적인 말투 그리고 지형에 대한 설명 등에서 대화에 임하는 자세와 둘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장 할아버지와 백운 할아버지는 비슷한 연령층인 데다가 두 분 모두 사시는 곳이 읍내와는 한참 떨어진 산골짜기라는 점,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자녀들의 교육 정도와 사회적 성취 등도 서로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말투는 전혀 다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무장 할아버지는 고창고보 2년 중퇴, 백운 할아버지는 무학자라는 점이 우선 눈에 뜨이는 차이다. 그리고 무장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부단히 해왔으며 지금도 무장 노인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거의 날마다 읍내 출입을 하시는 데 비해 백운 할아버지는 날마다 동네에서 소일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백운 할아버지의 삶은 그야말로 구름처럼 바람처럼 여건이 형성되는 대로 주어진 삶에 적응하며 살아온 여정이었다. 따라서 무장 할아버지는 조사자의 사회적 지위를 염두에 두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알맞게 말하기를 구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제보자와의 대화 역시 그러한 태도를 바탕에 둔 반면, 백운 할아버지는 그런 사회적 관계 따위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고 그냥 좋은 이야기 상대로서 가장 편안한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조사자의 말투 역시 ‘그러먼’, ‘저그가’ 등의 말투를 사용하다가 ‘그렇군요’ 식으로 동요를 보이는데 그 역시 백운 할아버지와 무장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맞추어 구현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한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 사이에도 말투의 차이가 난다. 차이의 정도는 무장 할아버지와 백운 할아버지를 극단으로 치고 그 사이의 어느 지점쯤에, 편안함과 체면 사이의 거리만큼 달라질 수 있다. 방언과 표준어 혹은 일상적 말투와 격식적 말투의 차이는 바로 그 선택, 남과 나의 관계 속에서 기왕이면 폼 나게 살고자 했는가 아니면 이런저런 것 제쳐두고 그저 사는 데 몰두하며 살아온 것인가의 반영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