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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5 |
[환경] 초록이 넘치는 생생삶
관리자(2009-05-08 14:10:32)
콘크리트 건물에 자연의 색 입히기   “ 천연염색 참 어렵지 않더라” 화창한 봄볕과 살랑살랑 봄바람, 염색하기엔 딱 좋은 날이었다. 그동안 환경 캠프나 기념일 행사에서 황토, 치자, 소목, 오배자로 천연염색을 해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체험 환경 교육에 그친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사한 사무실에서 사용할 커튼과 방석, 손수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남부시장 천 집에서 천을 사서 재단을 맡긴 후 직접 천연염색을 하기로 했다.  10년만의 이사에 정신도 없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 블라인드로 시공을 맡길까 생각해 봤지만 맨 벽돌과 교실 마루바닥, 철 등 자연 소재와   느낌이 나는 사무실 인테리어와  자연의  색이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물론 기댈 곳도 있었다. 오랫동안 환경연합의 천연염색 선생님으로 봉사해주신 유은영(유일여고 교사)님의 도움을 받았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우선 사무실 창문의 넓이와 길이를 쟀다. 5.4m대형 유리벽이 3개, 4.5m 유리벽이 3개, 작은 창문이 3개, 방석, 테이블보는 남부시장 커튼 수예점에서 주문했다. 사무실인 점을 고려해서 치고 닫기 좋게 끝에 고리를 달았다. 천은 가장 저렴한 광목으로 했다. 차도 마시고 모임도 하는 방은 멋에 비중을 둬 치자로 염색을 하고 얇은 천을 하나 더 댔다. 나머지는 다 황토 염색으로 했다. 노란 치자색이 곱기는 하나 햇빛에 바래기 때문이다. 커튼만 40m에 이르는 광목 값과 레일, 수공 비를 다해 들어간 비용은 총 95만원이었다. 인터넷에 판매하는 블라인드에 비해서도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다음은 황토와 치자를 구입하는 일. 직접 좋은 황토를 골라 소금을 넣고 오랫동안 삭이면 좋겠지만 직업적으로 염색을 하지 않는 분들에겐 어려운 일이라 천연염색을 하는 공방이나 천연염색 재료를 파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우리는 문화저널 광고 지면을 항상 지키고 있는 예사랑에서 황토와 치자 달인 물을 구입했다. 황토는 1년 이상 푹 삭은 좋은 황토였고 치자는 잘 달여져 있었다. 황토는 시간 관계상 정제된 것을 쓸 수밖에 없지만 치자는 한약 상에서 구입해 달여서 쓰면 된다. 황토는 20ℓ들이 한통에 2만원씩 4통, 치자는 20ℓ 한통에 5만원씩 두통을 구입했다. 치자는 커튼 일부와 회원들에게 나눠 줄 손수건 염색에 사용하기로 했다. 면 60수 300장과 엷게 그림이 입혀진 얇은 손수건 원단 50장을 서울 동대문 원단가게에서 아주 저렴하게 구입했다(가격은 문의하시는 분에게만 살짝 알려드림). 드디어 햇빛다냥한 토요일 오전 10시, 전주천 한벽당 아래 자리한 생태박물관 분수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마음 같아서야 전주천 맑은 물에 염색한 천을 씻고 징검다리에 펼쳐 말리고 싶었으나 천연염색을 잘 모르시는 시민들이 빨래를 한다고 할까봐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 큰 고무통 3개, 작은 고무통 3개, 대형 석유버너 1개, 찜통1개, 휴대용가스렌지 1개, 세수 대야 1개에 치자 달인 물과 황토 물통을 펼치니 꽤 짐이 많았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이 석유버너에서 막혔다. 가열해서 사용하는 등산용 석유버너와 원리가 비슷한데 막상 들은 대로 해도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1번 더 염색할 시간을 여기서 다 까먹었다. 불은 물을 끓이기 위해서 필요한데 염색한 원단의 표면에 처리된 약품을 제거하거나 염색이 잘 들도록 삶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이 끓고 있는 사이 남자들은 튼튼하게 빨랫줄을 높이 매고 여자들은 세수 대야에 손수건을 삶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짜장면을 시켜 먹은 후 작업에 속도를 냈다. 팔팔 끓는 큰 찜통에 천을 푹 삶아야 하지만 시간 관계상 살짝 데치듯 삶아야 하는 아쉬움이 뒤따랐다. 삶은 광목은 우유가 담긴 물에서 푹 담궈 발로 밟거나 손으로 비빈다. 우유는 염료가 원단에 잘 배이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다음은 본격적인 염색하기, 황토 물에 매염제(염색을 한 후 천에서 염색이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재료)로 천일염을 넣는다. 이 속에 염색할 천을 넣고 역시 발로 밟거나 비빈다. 구석구석 잘 배이도록 열심히 뒤집어 가면서 밟고 비벼야한다.   황토나 치자염료는 따뜻하게 해서 염색을 하면 물이 더 잘 든다고 한다. 천을 삶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다. 물이 들었다 싶으면 꺼내서 맑은 물에 헹군 다음 볕이 좋은 곳에 잘 펴서 말린다. 치자는 매염제인 백반을 약간 풀어놓은 물에 헹궈야 한다.  어느 정도 마르면 다시한번 염색을 반복한다.  여러 번 반복할수록 색이 곱게 드나 하루 안에 끝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루 안에 최소 두 번 이상 염색을 하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서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이 날 우리는 10명 가까이 일에 매달렸지만 삶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잘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한번 더 하고 끝낼 수밖에 없었다. 황토는 볕에, 치자는 그늘에 말리는 것이 좋다. 볕이 사위어 가고 갈 즈음 전주천변에 걸린 황토와 치자 염색천은 산보를 나선 시민들이나 외지인들에게 눈요기 거리나 사진의 소재가 되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화려한 색감은 아니지만 치자는 연 노랑이 가볍고 화사하게 하늘거리고, 황토는 대지의 주인답게 묵직하게 붉은 빛을 띠었다. 하루 종일 밟고 널고 짜고 말리고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완산칠봉 너머에 걸렸다. 부지런히 걷어서 넓은 사무실 교육장에 빨래 줄을 치고 다시 널었다. 치자 손수건은 다리미를 가져다 정성스레 다렸다. 커튼을 다는 것도 직접 했다. 거는 위치가 복잡하고 나사못을 박기가 쉽지 않아서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으나 끝까지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의지를 앞세워 부족한 기술을 시간으로 때웠다. 마침내 치자 염색한 광목과 얇은 천이 창문에 스르르 펼쳐지자 사무실은 은은한 노란 빛으로 아늑해 졌다. 반듯하게 다린 손수건도 사무실은 찾은 사람들이 다 달라고 할 정도로 고왔다. 천연염색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염색하는 방법과 원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이 다 나와 있다. 5월의 반짝이는 햇살과 산들바람과 함께 사랑하는 아이의 내의나 턱받이,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는 커튼이나 가림막, 연인을 위한 손수건, 자연의 선이 살아있는 생활한복 천연염색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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