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 |
[신귀백 영화엿보기] <파이트 클럽, 1999>
관리자(2009-05-08 14:08:50)
데이비드 핀쳐의 ‘자본주의 천사의 詩’ <파이트 클럽, 1999>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地平線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나는 너다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經도 없다.
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중략-
나는 너니까. /우리는 自己야.
우리 마음의 地圖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황지우 詩 「나는 너다 503」)
에드워드 노튼 그리고 헬레나 본햄 카터
작은 입, 가는 턱선, 반듯한 이마, 조금은 비겁하게 떠보는 듯한 눈, 자본주의 시대 소비에 중독되었지만 벗어나고픈 존재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잘 생긴 이 남자, 잭(에드워드 노튼)이다. <레리 플랜트>, <아메리칸 히스토리 x> 같은 영화에서 나약하면서도 때론 야비하기까지 한 다층적 인물을 표현하는 데는 역시 근육보다는 곱상한 얼굴이다.
‘삶은 매순간 사라져 간다. 헬스하는 놈들은 결국 켈빈 클라인의 노예들이다. 어떤 옷이 나를 잘 표현해줄까? 특이한 것은 꼭 사야 직성이 풀렸다.’이렇게 중얼거리는 남자 잭은 6개월째 불면에 시달리는 환자다. 의사는 야채 많이 먹고 운동하란다. 선홍빛 세코날을 권하면서 불면증으로는 잘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의사는 시니컬하다. 그는 불면증 치료를 위하여 고환암 환자 모임에 가짜 환자로 위장잠입하여 환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낯선 자의 솔직한 간증’ 끝에 그는 평화와 위로를 얻는다. 희망을 포기하니 자유가 찾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여기서 여인 말라를 만난다.
알고 보니 그녀 역시 백혈병, 에이즈, 암환자들 주위를 돌아다니는 나이롱 환자였던 것. 파티에서 한번 쓰고 버린 1달러짜리 옷을 입고 무료급식을 타먹는 그녀에게 잭은 강하게 이끌린다. “인간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그녀는 혀로 자꾸 건드리는 입천장의 상처와 같은 존재, 이 여자는 달려드는 자동차를 향해 거침없이 길을 가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쉼 없이 담배를 빨아대며 삶을 향해 툭툭 내려놓는 어투와 표정이나 의상은 그녀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존재라는 것. 말라의 타락에는 위선이 없다.
어 근데, 이 여자 어디서 봤더라?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에서 나온 그 여자다. 아하! 헬레나 본햄 카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아줌마, <프랑켄슈타인>의 엘리자베스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팀 버튼의 연인이라면, 됐는가?
브래드 피트의 파이트 클럽
보험회사 사고처리반으로 맨날 비행기 출장을 가야하는 잭은 사장 앞에서 쥐처럼 죽어 살지만 계속해서 좋은 가구를 사고 멋진 옷을 사들이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때려 치고 아르바이트나 하자니 품위유지가 곤란하다. 개기면 돈 들고, 때리고 부수면 역시 돈이 드니까.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등산을 다니지도 않으면서 빅토리녹스 칼을 사고, 결국은 셔터만 누르면서도 DSLR 카메라를 사지 않던가. 안티에이징에 돈을 쓰고, 중고차보다 더 비싼 가방,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어찌 현대 미국만이겠는가?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돈을 쓰는 사회행위의 규칙 속에서만 변화가능한 면을 찾으려니 자연히 잠이 안 올밖에.
‘예쁜 척 하는 팬더의 궁둥이에 총알을 박고 싶다. 프랑스 해변에 유조선을 침몰시키고 싶다’며 그가 뱉는 나래이션의 아포리즘은 우리 사회의 내면화된 규칙에 복종하지 못하는 자의 외로움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 이런 아비투스 속에서 그는 비행기 안에서 그와 똑 같은 가방을 가진 한 남자 타일러 더든을 만난다. 바로 브래드 피트!
선글라스에 왁스 바른 짧은 머리, 꽃무늬 셔츠 그리고 근육으로 건들거리는 이놈은 뭘 해도 이쁘다. 기름이나 넣어주고 웨이터로 개처럼 살 순 없다며 주방의 버섯 수프에 오줌을 싸는 이 남자를 만나 주먹을 날리고 나서부터 잭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젊은 도사 더든은 “싸워봐야 나 자신을 알게 돼!”라고 할을 내부치는 것.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는 잭은 파이트 클럽의 맞고 때리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존을 회복한다. “누구와 싸우고 싶어? 헤밍웨이와 한 판 붙고 싶어.” 나라면? 예술과 돈을 함께 즐긴 피카소랑 한판 붙고 싶다.
주먹맛을 알게 된 잭은 쓸데없는 것은 무시할 줄도 알게 된다. “싸운 뒤에는 모든 게 하찮게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망가진다. 텔리비전을 못 본들 어떻고, 냉장고가 뜨뜻한들 어떠랴.”열 받으면 겨우 집안 청소나 하던 남자가 대담해진달까? 새로운 시간의 질적 체험을 하게 되면서 묶여진 존재들이 파이트 클럽을 조직하는 것. 대책 없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만국의 외로운 놈들아 단결하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음, 낭만적이다. ‘그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쓰레기나 치우고 운전이나 경비를 서던 존재들은 이제 러다이트요, 유나보머로 변신한다. 니체적 초인이랄까, 이들이 전국적 파이트 클럽 체인망을 조직해 자본주의에 귀여운 테러를 감행하는 것, 오버지만 봐주자.
이들 싸움구락부는 자동차와 커피 체인점을 부수고 부자동네를 향해 한 밤 중에 골프공을 날린다. 화염병도 안 던져본 미국 아이들이지만 공공조형물을 박살내고 반대차선으로 차를 달린다. 물건에 의해 소비되던 존재, 움직이던 쓰레기들이 단체로 먹고 자고 일하는 클럽이 또 하나의 직장이 되었다고 고민하지만, 그는 얼굴에 난 상처가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된다. 눈을 뜬 것이다.
죽이는 반전
굴욕을 통과하면 더 성숙되었다고 믿는 우리들에게 한 번 개겨 볼 것을 권하는 영화일 것이다. 주제의식도 괜찮고 스릴러물답게 후반부 반전은 머리를 망치로 친다. 사실 스릴러물의 반전은 이 반전을 어떤 과정을 통해 관객을 설득시키냐에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치밀하지만 반전 이후가 확실하게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너그럽지 못한 비평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개운하지 못한 감도 있을 터. 남녀 주인공이 반사회적 단체로서 카드회사 파괴하기를 실행하며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바라보는 마지막 신이 조금은 무모하다는 것. 9.11 사태 시 금융 빌딩을 파괴해도 그 자료는 스토리지 회사로 간다는 것을 몰랐나 본데…
한 판 붙어라, 부숴라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액션영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장르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히트하지 못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반전이 어떤지는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말러의 눈빛을 잘 보라는 힌트를 드리고 싶다. 마치 <장화 홍련전>의 김갑수의 눈빛이 어딜 향하고 있는가가 열쇠였듯이. 보너스로 한 마디 더하자면, 마지막 장면을 잘 보면, 정말 망칙한 장면이 있다. DVD 캡쳐 장면으로 챙겨보고 싶지 않으신가. 하하.
데이비드 핀쳐의 시간
좋겠다, 브래드 피트는. 인생의 굴곡을 지날수록 젊어지니까. 그러나 그 조우는 때론 비극이겠지. 특수 분장이 백미인 또 하나의 인생극장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감독이 바로 데이비드 핀쳐다. 잠깐 이 감독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자면, 평론가의 찬사와 함께 관객에게 저주받은 걸작 <조디악, 2006>이 그의 것이다. <SE7EN 세븐, 1995>으로 이 바닥을 평정한 그는 이때부터 브래트 피트와 같이 작품을 한다. <에이리언3, 1992>로 할리우드에 발을 디딘 그는 <게임>에서 마이클 더글라스와 숀 펜과 일하고, <패닉 룸>에서는 조디 포스터 또 조니 뎁 등 대선수와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변방에서 한 마디 하자면, 신인을 키우는 모험이 있어야 진짜 감독인데….
동안 데이비드 핀쳐의 작품은 스릴러나 복수 등 주로 피 튀기는 남자들의 ‘쎈’ 영화들이었다. 그런데 이참에 보여 준 ‘벤자민의 거꾸로 연대기’를 말랑말랑한 아줌마 영화라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역시 ‘시간 속 존재의 엇갈림과 조우’라는 성찰일 것이다. 여기 열연한 브래드 피트는 다만 잘 생긴 배우를 넘어서 시간의 결을 따라 존재를 탐구하는 영화 어디에도 어울리는 ‘물건’이다. 배우를 동지로 믿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브래드 피트가 이 징그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겠는가? 정리 하자. 데이비드 핀쳐, 그가 다루는 작품의 주제는 상투적이지 않고 낡은 형식은 취급하지 않는다. 그렇다. 그의 시간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 앞에 올린 황지우의 시 한편은 이 스릴러의 또 다른 힌트. 끝으로, <파이트 클럽>이 괜찮았던 남자가 되고 싶은 남자들에게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소설가의 각오』를 추천한다.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