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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 |
[문 화 시 평] 영혼을 울리는 그 소리
관리자(2009-04-06 10:07:54)
장사익 <꽃구경>  (3월14일) 영혼을 울리는 그 소리 정경진 소설가 때 이른 ‘꽃구경’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버리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신대유 아 솔잎을 뿌려서 뭐하신대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김형용 시 ‘꽃구경’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화이트데이’라는 문구와 휘황찬란하게 포장된 사탕꾸러미로 뒤덮인 지난 3월 14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덕진 공원 연못을 가로질러 꽃구경 잔치가 펼쳐지는 소리의 전당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손님을 마중하는 듯 장사익의 열창하는 모습이 그려진 걸개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바라보았다. 질끈 눈을 감고, 핏줄이 솟아오르도록 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장사익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전해져왔다. 조금은 낯설고, 언젠가 한번은 느껴봤던 그런 기운이. 1994년 어느 날. 기가 막히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말을 어느 선배에게 들었다. 뽕짝도 그 사람이 부르면 예술이라고 침을 튀기며 꼭 들어보라는 선배의 권유를 ‘노래하는 사람이면 가수(歌手)인데 가수가 노래를 못하면 가수라고 부르지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렸다. 그러다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찔레꽃’이란 노래를 듣고 ‘아! 진짜 노래 잘 한다’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3월 14일. 소복(素服)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올라 눈을 질끈 감은 채 토해내는 만가(輓歌)에 나도 모르게 눈가로 손이 올라갔다. 아내는 이미 손수건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물 한 모금으로 뛰는 가슴을 달랜 장사익은 이어서 꽃구경 가자는 아들의 비장한 음성과 그 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흔쾌히 아들의 등에 업힌 어머니의 애끓는 모정을 너무도 절실하게 묘사했다. 집으로 돌아갈 아들 걱정이 앞서 자신의 남은 삶을 버리듯이 솔잎을 뿌리는 어머니. 아내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손수건이 간절히 필요했다. 연이은 절창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대전부르스, 아리랑 등이 이어진 후 꽃구경 무대의 불이 꺼졌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누구나 그렇듯이 조금의 아쉬움과 들뜬 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우리는 공연장을 나서면서부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의 감동과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 행렬을 비웃듯이 우리는 천천히 손을 잡고, 찔레꽃 향기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장사익류의 창법과 노래는 대중적이지 못하다. 그러기에 소위 마니아들을 위한 전문공연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아내에게 공연에 가자고 말하면서도 이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 무언가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낸 사람처럼 한결 환해진 아내의 표정에서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느꼈던 그 기운을 실감했다. 지난 달 진도군 소포리에서 보고 들었던 진도 상여소리와는 또 다른 맺음과 풀림의 음률이었다. 죽음은 살아남은 이들과의 단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어준 상여소리처럼 장사익의 노래는 오선지 위에 정렬된 것만이 음악이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전해주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손바닥으로 배를 쓸어주며 ‘엄마 손이 약손이다’라고 읊조리던 어머니의 음성과 촉감을 되살려주는 장사익의 음률과 일상의 모습을 표현해낸 노랫말. 그리고 죽음은 삶과의 이별이 아닌 또 다른 만남이라는 메시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감동과 희열로 다가선, 때 이른 꽃구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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