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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 |
[문 화 시 평]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다가온 이유
관리자(2009-04-06 10:07:10)
이시카와 그래픽 디자인·한국전  (2월27일 ~ 3월13일 )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다가온 이유 김병철  산업디자인 전문회사 컨티뉴 대표 이시카와. 가나자와. 사람들에게 낯설다. 낯선 곳이 친근해지려면 당연히 익숙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아야, 무엇을 해야 익숙해질까. 가나자와와 우리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낯선 도시에 홀로 있을 때 우리 기분은 어떤가. 보통의 경우 불안하고 초조하며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낯선 곳을 헤매다 아는 길이 나왔을 때는 어떠한가. 그 반가움과 안도감이란 말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시카와 그래픽 디자인 한국전 ‘이시카와 가나자와 마음의 형상’은 꼭 그렇게 다가왔다. 전시관에 들어가 발걸음을 시작할 때 즈음. 그 낯선 기운이 유쾌하지가 않다. 강렬한 색에 선이 굵은 포스터들은 확실히 우리가 자주 보던 눈에 익은 형상은 아니다. 아무리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 디자인이라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을 지나쳐 갈 때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잠시 멈칫하게 된다. 그 멈칫한 사이! 그 다양한 작품들 속에 숨어 있는 질서가 보인다. 일순간 소름이 돋는다. 질서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바로 이시카와, 가나자와! 서서히 보이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처음 느꼈던 어색함과 낯설음의 이유는 다름 아닌 이시카와, 가나자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관성 없는 개개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모두 그것들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과만화경’이라는 작품은 영락없는 비빔밥이다. 이들이 표현한 만화경이 비빔밥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전주 사는 사람 눈에는 다시 봐도 비빔밥이다. 가운데 붉은 원은 강한 메시지를 뿜어낸다. 원 속의 원. 만화경 속의 가나자와. 비빔밥 속의 가나자와. 가나자와는 그렇게 여러 가지 그릇 속에 담겨져 있다. 가운데 'Lovely Sweets'라는 문구가 자칫 미궁에 빠질 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쉬운 설명을 덧대어 준다. 'KANAZAWA PEOPLE'은 간단한 타이포에 수많은 사람들을 빼곡하게 채워놓았다. 무릎을 탁 치게 했던 이 작품.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이지만 포스터 안에 가나자와 사람들이 모두 여기 와 있는 듯하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 넥타이를 맨 사람, 운동복을 입은 사람, 야구 선수까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가나자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 눈에도 이 곳 사람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디자인은 문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 할 만하다. 굳이 다른 것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모습이 바로 우리 문화 아니겠는가. ‘국화주 한잔’이란 작품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포스터다. 하지만 포스터를 보자마자 맨 먼저 보게 되는 가운데의 작은 국화꽃이 모든 것을 더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국화주 몇 방울을 보태니 국화가 나왔다. 국화가 잔에 부딪혀 다시 술이 되는 그 찰나. 물방울과 국화꽃이 절묘하고 세세한 표현이 감탄스럽다. 국화가 떨어지는 주변에는 작은 파동이 원을 그린다. 손에 쥐고 있는 잔을 금새 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의 낯선 기분은 온데 간데 없다. 전시회를 거의 다 볼 무렵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가 점점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잘 단련된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비주얼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와 철학이 더욱 강렬하게 와 닿는 기분이다. 전북과 교류협약을 맺은 이시카와현 역시 우리 전북처럼 전통과 문화를 한데 잘 섞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중심에서 디자이너는 지역의 문화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이어가도록 형상화해야 한다. 전통은 낯설지만 익숙하다.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의 다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곧 디자이너가 할 일인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전주를 찾은 이시카와 현 15명의 디자이너들과 VIDAK,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전북지부 회원들과 함께 전북도청에서 이런 문제로 포럼을 가졌다. 지역디자인의 현황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아울러 향후 두 지역 간의 활발한 교류를 약속했다. 지역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아직이라는 표현이 쑥스럽지만 분명 ‘아직’ 저변도 작고 디자이너 수도 부족하다. 이사카와현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수가 300여명이라는데 전라북도는 그 십분의 일 수준이다. 기업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디자인을 관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당연히 제품이나 상업적 디자인보다 편집디자인이 그 주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디자인과 관련된 우수 인력들이 대도시로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분명 좀 더 넓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때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고군분투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떤 문화적 사명감 때문이다. 문화와 전통은 그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이것이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것이 곧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함이다. 지역에서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 그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야 말로 디자인의 최고 가치라 할 만 하겠다.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아! 이시카와 그리고 가나자와. 이제 손에 잡힌다. 디자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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