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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 |
[환경]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관리자(2009-04-06 10:04:01)
씨를 고르며 봄은 꿈꾸는 계절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잘 안 되어서 생각보다 적게 나올 수도 있고, 심지어 씨도 못 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고 봄에 씨를 뿌릴 때야 다 잘 되리라는 꿈이 있지 않겠나. 해마다 농사의 시작은 씨앗을 정리하는 일이다. 어둡고 서늘한 쌀광 벽에 매달린 볍씨, 수수 이삭, 검은찰옥수수 다발, 여러 가지 콩 씨들, 양파 망에 담긴 씨고추와 대파 씨. 뭐뭐가 있나, 하나하나 괜찮은가 살펴본다. 그리고 자잘한 씨를 모아놓는 씨앗상자도 가져다가 묵은 씨는 정리하고 지난 가을 받아서 여기저기 놔둔 씨앗을 찾아서 채워놓았다.   이렇게 씨앗을 만지니 올해 어떻게 농사할지 그림이 떠오르긴 하는데 엉성하다. 지난해, 지지난해 농사지도를 참고하며 올해 농사지도를 그렸다. 돌려짓기를 꼭 해야 하는 고추와 야콘. 이 밭은 어디에 할까? 남편과 의논하며 고추밭 자리를 정하고 야콘 밭을 물색한다. 그 다음 땅콩 심을 밭, 고구마 자리, 참깨는 어디에? 하면서 우리 밭 사정에 맞춰 심을 것들을 표시한다.   한참 하다 보니 지난 가을 시어머니한테 받아온 검은깨 생각이 났다. 씨도 못 건진 뒤 이삼년 안 짓다가 지난 가을 시어머니한테 한 봉지 받아온 검은깨. 그 깨를 물에 담아 바닥에 가라앉는 걸 모아 그걸 씨로 빼놓고, 물에 뜨는 대부분은 깨소금으로 볶았다. <헝그리 플래닛>이란 책을 본 적이 있다.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 부부가 세계를 돌면서 한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먹을거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 보여주는 책이다. 호주에서 시작해 아프리카 말리, 남미 에콰도르까지 24개국 30가족 600끼니를 보여주는데, 이렇게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말로는 다 하기 어려운 걸 보여준다.   나도 우리 네 식구가 일년 농사에 드는 씨앗을 한번 정리해 볼까! 도대체 자급 농사라는 걸 한다는데 그게 뭔지 이만큼 살펴보기에 좋은 자료가 없을 듯싶다.   마침내 표가 그려졌다.   우리 식구는 아이들이 이제 다 커서 어른 넷이라 보면 된다. 우리 네 식구는 일년 내내 잡곡밥을 먹는다. 또 옥수수 철에는 옥수수, 감자 철에는 감자로 한 끼를 먹기도 한다. 그렇게 먹어서 하루 세 끼 일년 먹는 쌀은 대여섯 가마 정도. 여기에 찹쌀이 반 가마, 검은 쌀은 한 말 정도 있으면 풍성하다. 이를 위해 다락 논이 천오백 제곱미터에 볍씨는 2키로 남짓 준비한다. 논농사를 해 본 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적은 양이다. 이양기를 쓰지 않고 손모를 내기에 못자리를 논바닥에 직접 듬성듬성 볍씨를 뿌려 모를 키운다. 이렇게 튼실하게 키운 모를 모내기 때 두어 포기씩 널찍널찍하게 심는다. 기계를 쓰는 논에서라면 씨를 몇 배는 더 뿌리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해발 450 고지라 춥다. 밀과 보리농사를 하다하다 얼마 전에 놔버렸다. 손으로 심고 손으로 베어 털어 어렵게 거두어도 보리는 방아 찧을 데가 없고, 밀은 가루로 빻을 데가 없는걸. 우리 밭이 삼천 제곱미터쯤 되는데, 겨울 농사인 밀과 보리가 있을 때는 적당했지만, 그게 사라지니 좀 넓다. 야무지게 농사를 한다면 그 반만 해도 네 식구 먹을 농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표를 만들며 보니 만일 이 씨를 다 돈을 주고 산다면? 아마 그렇다면 자급 농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그래서 농사가 잘 안돼 씨를 잃어버리면 가슴이 덜컹 한다. 씨가 많은 것 같아도 해마다 씨 욕심이 난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면 하나라도 내 손으로 씨를 받으려고 토종 씨앗을 찾아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근, 양파, 토마토, 김장배추와 무, 수박 같은 여러 가지를 사다가 심곤 한다. - 이 밖에 다년생 구근인 미나리, 머위, 부추, 쪽파, 달래, 도라지, 더덕, 돼지감자는 새로 심는 해가 있고 안 심는 해가 있음. - 이 무렵 우리 집에 온 손님이 강원도 산나물 씨앗을 잔뜩 주고 가고, 토종씨앗 모임인 씨드림  <http://cafe.daum.net/seedream> 정기모임에 참가해 견물생심 새로운 씨앗을 잔뜩 챙겨왔다.  완두, 제비콩, 울릉도 분홍   감자 5알, 백하수오 뿌리 하나, 조선배추씨 조금….   - 이 밖에 양배추, 배추, 무, 당근 같은 채소 씨와 애호박, 단호박과 같이 개량종의 씨, 토마토 수박, 참외와 같은 여름 과일 씨는 장에서 사다 심음 - 생강은 씨보관이 안 되어 사다 심고, 감자 역시 그럴 때가 있음 - 마늘, 양파, 갓은 가을에 심기에 여기서는 뺐음. 장영란/ 산청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지난 98년 무주로 귀농하여 온 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자연에서 느낀 생각을 담은 <자연그대로 먹어라>, <자연달력 제철밥상>, <아이들은 자연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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