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 |
[숨 쉬 는 미 술 이 야 기] 전통 서화(書畵)가 말을 걸어오니
관리자(2009-04-06 10:00:29)
전통 서화(書畵)가 말을 걸어오니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장
그 삶이 불운했으나 뛰어난 예술적 감식안을 가지고 시문, 그림, 가야금 등에 두루 능했던 당대의 명필 안평대군(安平大君)이용(李瑢)이 15세기 지장보살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금니(金泥)로 감지(紺紙)에 사경(寫經)한 것이다. 글씨 쓴 이의 간절한 불심이 뛰어난 기량에 실려 금빛 찬란한 광휘를 뿜으니 문외한이라도 그 삼엄한 아름다움과 선정(禪定)에 든 듯한 정려(精勵)함을 찬탄하게 된다.
18세기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여동빈도(呂洞賓圖)>이다. 여동빈은 중국의 팔선(八仙) 중 하나로서 민중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준다 하여 높은 인기를 누리고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이 설화의 주인공을 김홍도도 여러 차례 그렸는데 만년 김홍도의 특징인 거친 하엽준법(荷葉?法)과 용수철을 풀어놓은 듯한 파도의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진준현의 해설 참조). ‘단구(丹丘)’ 낙관이 그의 만년작임을 말해주는데 자신의 여러 신선도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 듯 한 김홍도는 파란 많은 삶의 말년에 고고한 신선의 삶을 꿈꾸었으리라 〔인물과 바위의 포치구도〕. 시선의 각도, 유려한 수파묘〔파도의 묘사법〕 등 절제된 균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좌) 18세기 원교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로 그는 ‘광초(狂楚)’라 해서 분방한 초서로 유명했는데 이 시는 그래도 석문과 대조해서 읽을 만하다. “漢廷榮巧宦(한나라 조정에 처세에만 교묘한 벼슬아치들이 영화를 누리니) 雲閣薄邊功(운각에서 변방지키는 신하의 공은 미미하게만 여겨진다)”로 시작된다. 옛 그림과 옛 글씨를 읽는 데는 당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 18세기 무주 출신 최북(崔北)의 <현애소림도(懸崖疏林圖)>인데, 그는 여항문인(閭巷文人)으로 직업화가였고 중인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했다. 이 그림은 깎아지른 절벽과 성긴 나무 몇 그루를 뼈대만으로 소략하게 표현하는 몰골법(沒骨法)을 구사한 문기(文氣) 넘치는 남종문인화의 가작이다. 붓으로 먹고 산다는 뜻의 ‘호생(毫生)’이라는 낙관의 위치도 범상치 않다. 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그리는 이의 내면적 경지를 표현하는 이러한 문인화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 선인들과 시대를 초월한 소통이 가능해 질 것이다.
18~19세기 전북 서예의 태두로서 그 작품이 도립미술관에 8점 소장되어 있으며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었던 창암 이삼만(李三晩)이 도연명(陶淵明)의 시를 해서(楷書)로 쓴 작품으로, “連林人不覺(숲에 끼여 사람들 몰랐더니) 獨樹衆乃奇(홀로 남으니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네)”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해서와는 달리 창암의 서체는 왕왕 범인(凡人)이 그 진가를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졸(拙)한 경우가 많다. 노자(老子)가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함이 바로 창암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리라.
18~19세기 우봉 조희룡(趙熙龍)의 <진전한화헌(秦篆漢畵軒)>이라는 글씨로, 진나라의 전서(篆書)와 한나라의 그림을 수장하고 감상하는 집이라는 뜻의 당호 편액용이다. 이 정도 글씨는 평소 문외한이라도 석문을 보고나면 독해가 가능하다. 그리고 원본에 접하면 그 기운과 아름다움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서예의 아름다움에 눈 떠가면 되는 것이다. 단, ‘명품’의 ‘원본’에 많이 접해야 그것이 가능하고 그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미술관, 박물관이 할 일이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아라재(亞羅齋) 소장명품전 <보묵(寶墨) Ⅱ>가 열리고 있다. 과거 서화 미술의 본향이었던 전북의 서화(書畵) 전통을 오늘에 전승시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미술관은 2004년 개관 이래 산일(散逸)되어가는 서화 작품의 수집과 보존에 진력하여 왔다. 그간 감성들이 크게 변하였고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괴리가 심하여 서화 등 전통 미술의 정신과 어법에 대해 대중이 생소해 하는 듯하였고, 한국 현대 미술도 우리 전통의 맥과의 상관성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미술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필요성을 시각적으로 발제하며 미술관 주 컬렉션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의도로 전시를 기획하였다.
연전에 유사한 내용의 전시가 있을 때만해도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을 보며 “우리 미술의 전통 가치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멀어져 있구나”하고 느꼈었다. 젊은이들은 전시장 입구에서 휙 한번 고개를 돌려보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약 4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 전시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달랐다. 많은 이들이 “이런 걸 어디서 보겠느냐?”며 감탄을 하고 자칭 ‘문외한’들이 보고 나서 다른 이들에게 관람을 적극 권한다. 젊은이들도 서예나 문인화 제발의 해독 문제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탈초 해제 자료를 구하되 대체로 퍽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수년 사이에 대체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가정 하에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물극필반(物極必返)’, 갈 데까지 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이치가 떠오른다. 쓰나미 같은 세계화의 노도 속에서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무의식적으로라도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개를 든 것일 수 있다. 어렵더라도 자기만의 것을 지키는 것이 결국 득이 된다는 사례를 왕왕 접하게 되며 그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것일 수 있다. 지난 세기 일제에 의해 강제된 철저한 자기부정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은 뒤끝에, 근간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사건들도 왕왕 접하게 되며, 이제는 그 상처를 회복하고 자존감을 살려내는 도정(道程)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한 와중에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로 우리 옛 문화, 옛 그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촉발되기도 하였다. 그 한 예가 신윤복(申潤福)의 이야기이다. 드라마에서 무리한 면도 많았고 영화에서는 그것이 더 심했고 황당한 면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측면, 감탄을 자아낼만한 요소도 많았다. 소설의 경우는 조선 시대 문화에 대한 통찰과 이해와 상상력이 돋보였다. (더구나 이미지가 제시되지 않는 소설에서는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어 극적이었고 전개상의 무리는 없었다) 수만의 젊은이들이 혜원(蕙園)의 화첩을 보기 위해 간송미술관 전시장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과연 우리 고전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이번 전시의 의도대로 과연 전시장을 찾은 내방객들이 조선 시대 문화적 정화(精華)였던 명품 서화에 담겨 전해진 정신과 가치를 큰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비록 미약한 정도라도, 느껴 안 것이었을까? 그것을 궁금해 하며 앞으로 그분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려 한다(4월 26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반응도 퍽 궁금하다).
지난 세기 처절한 역사의 단절로 인하여, 조선 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적 감수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오늘 우리 대다수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인지 모른다. 그 문화, 그 정신을 오늘에 이어야 할 조선 시대의 그림·글씨·그릇들의 빼어난 정신, 무한한 깊이와 고아(高雅)한 아름다움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보아서 느껴 알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없는 길을 만들며 걸어온 사람들이 있다. 간송, 호암, 그리고 아라재 김명성 회장 같은 이들이 만금을 들여 명품을 수집하고, 사계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하고, 박물관·미술관의 기획자들이 수집하고 전시해 왔다. 누십년 그분들의 의식과 통찰과 신념과 열정과 헌신, 그 효과가 이제 지면 위로 드러나는 때가 온 것일지 모른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정말 어렵다. 그래도 머지않은 장래에 많은 이 시대의 미술인들도 과거로부터 뿌리를 찾고 영감을 얻어 그 정신을 오늘에 전승하여 구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에 미술관 전시로서 전례 없이 조선시대 도자기 67점이 전시되는데, 미국의 저명한 추상화가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가 그의 전작도록에서 조선 도자기가 자신의 미술세계에 큰 영감을 주었음을 밝혔듯이 우리 도자기는 한국 미학의 정수로서 인류 문화유산의 최고봉이며 현대 미술 분야에서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분청사기의 박지(剝地)나 음각(陰刻) 문양 등은 얼마나 현대적인가? 이제 몇 작품의 도판을 통하여 조선 미술 문화의 진면목에 한걸음 다가가 보자.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 하는데, 애정을 가지고 많이 보아야 알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읽어내기 쉬운 옛 글씨부터 자주 접하고 그 아름다움, 힘참, 독특함에 눈떠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각별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옛 문화에 대한 경외심과 선인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서화(書畵)를 대하면 개중에 내게 ‘말 거는 것’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마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명품’의 ‘원본’을 찾아 미술관, 박물관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