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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 |
[저널기획 │ 대안학교를 가다?] 실상사 작은학교
관리자(2009-04-06 09:57:15)
이 작은 학교의 큰 꿈  -  생태적 공동체를 향하다 김선경  소설가 지독한 안개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도로 위에서 나는 잠시, 다시 되돌아갈까를 고민했다. 전조등을 켜도 발치 언저리만 뿌옇게 비칠 뿐,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허나 되돌아간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 마치 안개귀신에 씌우기라도 한 것처럼 굽이굽이 산중도로를 헤매고 있는 내가 좀 우습기도 했다. 인월읍내에 도착해서야 조금씩 자리를 내주던 안개는 산내면에 도착해서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정말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지리산 산내마을의 하늘은 청량했다. 몇 몇 산봉우리에 구름이 도넛처럼 뭉쳐 있을 뿐, 실상사 너른 터는 고요하고 깨끗했다. 앞을 흐르는 냇물도 봄을 만난 탓인지 제법 기운차게 흘러내렸다. 논밭 가운데 드문드문 사람들이 서 있다. 봄농사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나는 멀리 보이는 작은학교를 향해 자신 있게 걸어갔다. 바람 부는 방둑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로 지어진 작은학교가 나타났다. 아이들의 낙서와 그림은 어찌나 생동감 있는지 금방이라도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쉬는 날이기는 했어도 학교가 너무 조용했다. 미리 선생님들께 취재요청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냥 엿보고 싶은 생각이 컸기 때문. 그러나 이렇게 한 사람도 없다니! 하는 수없이 사람을 찾아 나섰다. “작은학교 이사 갔는데요!” 근처에서 흙을 부리고 있던 한 남자가 그것도 모르고 찾아왔냐는 듯이 책망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저기 계신 분들이 작은학교 선생님들이니까 가서 물어보세요.” 다행이다. 아이 한 명과 어른 세 명이 밭둑길에 둘러 서 있다 남자 두 명이 고랑을 파고 비닐을 씌우고 무언가를 심느라 부산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이사 간 작은학교 위치를 알려준다. 모종을 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족히 두 시간. 옆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새로 지어진 작은학교가 못 견디게 궁금해 쉬엄쉬엄 발길을 옮겼다. 인드라망 정신을 품은 작은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2001년에 문을 연 중학교 과정의 불교계 대안학교다. 작은학교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1999년부터 시작됐다. 작은학교를 알기 위해서는 실상사와 도법스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인드라망’이라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이 작은학교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적 세계관이란 우주의 모든 것들이 그물코처럼 서로 얽혀있는 공존의 세계관을 일컫는 말이다. 이 속에서 귀농학교가 세워지고 작은학교가 만들어졌다. 실상사 작은학교 준비팀이 꾸려질 무렵, 나는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작은학교를 준비하고 개교하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은 욕심에 준비팀의 이경재 선생님과 몇 번 통화를 했다. 그러나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학교 개교는 쉽지가 않았다. 99년 6월부터 준비를 했지만, 해를 넘기고 또 넘겨 2001년도에야 겨우 개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시간이나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다큐멘터리 촬영은 무산됐지만, 그때 이경재 선생님이 보여줬던 완벽주의에 가까운 깐깐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은 변하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일 보러 함양에 나가 있어서 바로 돌아올 수가 없다고 했다. 취재차 온 것을 설명했더니 “홍보팀과 공식적으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으니 별도의 인터뷰는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혹여 작은학교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져서 보여질까봐 무척 조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편한 마음으로 학교나 구경하시라”는데 나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뻘쭘해져서 전화를 끊고 작은학교로 향했다. 자립적 인간, 생태공동체 찻집 <귀거래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도로가 나오고 마을 몇 개가 이어진다. 눈을 똑바로 뜨고 가야 <실상사 작은학교>라고 씌어진 팻말을 발견할 수 있다. 가파른 도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면 그림 속 마을 같은 집 몇 채가 보인다. 집 앞에는 <00네집>이라고 나무 팻말이 꽂혀 있고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다. 작은학교 식구들은 기숙사가 아닌 ‘작은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 작은 가정은 교사 1명과 3~6명의 학생이 마을에 있는 생활관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자율적으로 합의한 생활 방식에 따라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공동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인내와 양보를 요구한다. 굳이 이것을 감수하면서 작은학교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저한 교육철학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마침 아들놈을 이 학교에 보낸 친구가 있어서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작은학교의 가장 큰 교육철학은 자립적 인간과 생태적 공동체다. 이 두 가지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의지가 있는 사람만 작은학교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2년 전 아들놈을 학교에 보낼 때 친구는 덩달아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교육관, 철학관, 살아온 길 등도 학생을 뽑는 중요한 선발기준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레포트에 준하는 장문의 글을 쓰면서 친구는 무척 힘들어했다. 다행히 아들놈은 합격을 했고 지금 작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기대했던 만큼 아들은 좋아졌을까? “백번 잘했다고 생각해. 2년 다니더니 우리 아들놈 사람 됐다!” 나도 몇 번 본 적 있는 아들놈은 외아들이어서 그런지 자기 통제력이 약했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키가 작아서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랬던 아들이 이제 세상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멋진 청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아예 실상사로 거처를 옮겨서 아들놈과 같이 살고 있다. 대안학교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역사는 이제 겨우 12년을 넘어섰을 뿐이고, 모든 대안학교는 아직도 실험단계에 있다. 누구도 대안학교에 대해 한마디로 단정을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작은학교는 학부모들이 찾아오면 “대안학교의 환상을 없애는 데” 더 주력한다고 한다. 작은학교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버릴 것. 학교, 학생, 학부모의 지향과 열의가 같을 것. 안정된 학교, 인정받는 학교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일찌감치 포기할 것…. 등등이 작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습득해야 할 기본자세다. 1등과 일류를 지향하는 학부모라면 작은학교 따위에는 절대 발걸음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큰 학교’를 찾아가면 된다. 작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생태 자립적으로 사는 법, 식구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이다. 그래서 교육과정도 일반학교와는 확연히 다르다. 국어, 영어, 수학, 철학 등을 가르치는 ‘지식공부’가 있고, 자치살림, 미술, 연극 등을 가르치는 ‘체험공부’가 있다. 또 발우공양, 야단법석, 작은가정 생활 등을 아우르는 ‘생활공부’가 있다. 학기마다 5박6일 동안 ‘기능익히기’ 공부를 하는데, 이때 배우는 것이 나무를 다루는 법, 흙을 다루는 법, 몸을 다루는 법 등이다. 4박5일간 진행되는 ‘세상보기’에서는 지리산 탐사, 문화 답사, 인물 탐방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작은학교 강단에 걸린 문구처럼 “깨달음은 나무처럼 자라난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창의력을 존중하고,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살리는 만남을 통해 성숙한 인격과 조화로운 삶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은학교의 교육목적이다. 학교 운영을 위한 의사 결정은 교사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 교사 1명, 교사 10명, 전임 강사 1명 등 총 12명의 교사가 근무하고 있다. 건물을 새로 지어 옮긴 것은 2007년 9월. 그러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고 아직도 모든 건물들이 완벽히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은 내년부터 중·고등 과정을 통합하여 5년 과정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아무나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거니와, 아무나 잘 받아주지 않는 까다로운 학교. 이름은 작은학교지만 그 안에는 참으로 큰 뜻을 품고 있는 학교. 혹시 관심이 있다면 지리산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지독한 안개를 뚫고 작은학교를 찾아가 보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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