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 |
[저널기획 │ 대안학교를 가다?] 변산공동체학교
관리자(2009-04-06 09:56:33)
건강한 생산공동체를 꿈꾼다
김희정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변산공동체는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가 땅의 소중함을 체험하면서 공동체의 삶과 생활방식을 스스로 깨달아가는 곳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그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김희정교장은 이곳 공동체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대안교육을 고민하고 또 스스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의 담백하고 진솔한 글을 통해 변산공동체 학교의 교육방향과 목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공동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돈을 한푼도 내지 않습니다. 일년내내 공동체 학교의 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대신에 변산공동체학교가 추구하는 교육목표에 부모님이 동의를 하셔야 하고, 아이들이 공동체에 있는 것을 즐겁게 여겨야 합니다.
변산공동체학교는 199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충북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던 윤구병 선생님이 대학에 있는 것보다 농사짓고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며 여기저기 농사지을 터를 알아보다가 산·들·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 좋겠다 싶어 이곳 변산에 터를 잡으신거지요.
초기 공동체 식구들은 대부분 <실험학교 이야기>, <조그마한 내 꿈 하나>라는 책과 멀쩡한 대학교수가 교수직 팽개치고 시골 가서 공동체 꾸리며 농사짓는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처음 공동체를 꾸렸을 때는 지금처럼 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학교는 공동체 식구들이 짝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면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질것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러나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기농을 지으며 건강하게 살아오신 토박이 분들의 생각은 공동체 식구들의 바람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농사는 농사꾼인 우리들이 지어서 먹여 살려 줄테니까 당신들은 우리 아이들 교육을 책임져 달라 이런 간절한 요구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공동체 식구들은 농사일 익히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 교육을 시킨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지요. 그래도 학부모들의 요구가 워낙 간절해서 식구들끼리 긴 시간 토론을 갖고, 제도권 학교와는 전혀 다른 공동체 교육의 원칙에 학부모가 동의한다면 아이들을 맞아서 함께 지내겠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게 1997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변산공동체학교가 아이들을 맞이하게 된 게 바로 지금부터 13년 전이네요.
지금도 공동체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공동체학교 아이들은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역사, 철학, 음악, 미술, 풍물, 목공 등 이른바 지식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농사일, 집짓기, 음식 만들기 등 살림을 익히는 공부를 합니다. 머리로만 하는 공부가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공부를 함께 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공동체 학교를 거쳐 간 아이들은 20여명이 넘습니다. 그중에는 중·고등 6년을 마친 아이들도 있고, 3년만 마친 아이, 1년만 다니다 그만둔 아이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들 어엿한 청년들이 되어서 공동체 식구로 살고 있기도 하고, 직장을 다니기도 하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공동체 학교의 학생들은 초등학생이 열 명, 중학생이 네 명, 고등학생이 두 명입니다. 초등학생들은 공동체식구로 살다가 독립해서 변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대부분이고요. 중·고등학생들은 부모님이 변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도시에서 온 아이들도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다닙니다. 수업도 특별한 선생님을 모시는게 아니고 학부모님들이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합니다. 하루 종일 뛰어노는 게 가장 큰 공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공동체 안에서 기숙생활을 합니다. 흔히 생각하시는 학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모두 지역주민들이고요, 수업내용도 입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서로 배우는 셈이지요. 공동체가 곧 학교이고, 학교가 곧 공동체입니다.
변산공동체학교는 인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학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공동체 내에서도 아이들에게 굳이 학력인정을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학력이 없어도 농촌에서 제 앞가림하면서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힘만 기르면 교육의 목표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굳이 대학에 가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중·고등과정을 모두 마치고 공동체에서 2년 동안 살림살이를 야무지게 익히고 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모든 지원은 해준다는 약속이 되어 있는데, 지금 공동체 학교에 있는 아이들 중에 몇 명이나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공동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돈을 한푼도 내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오든 농촌에서 오든 마찬가지입니다. 일년내내 공동체 학교의 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대신에 변산공동체학교가 추구하는 교육목표에 부모님이 동의를 하셔야 하고, 아이들이 공동체에 있는 것을 즐겁게 여겨야 합니다.
공동체의 문은 아이들에게만 열려 있지 않고, 어른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다만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우리 식구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손님을 받지 않고요, 봄, 여름, 가을에는 3박4일 이상 머물면서 식구들과 일하고, 술 마시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귀농하려고 하시는 분들은 1년 이상 머물러도 상관이 없구요.
지금 농촌에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우리 마을만 해도 공동체 식구들 빼면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들 입니다. 농사짓는 게 힘들고 돈이 안 되니까 모두들 도시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농촌공동체가 무너지면 우리사회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입니다. 식량주권을 남에게 빼앗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는 없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다고 해도 사람이 컴퓨터나 자동차, 돈을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변산공동체학교의 교육목표는 단순합니다. 스스로 제 앞가림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 경쟁하면서 사는 삶이 아닌 남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살자. 농촌에서 건강한 생산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길, 그것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 공동체를 그려보면서 이만 줄입니다.
김희정/ 27살에 부안에 내려와 13년째 변산공동체에 터 잡고 부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윤구병 대표의 뒤를 이어 2008년부터 변산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