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 |
[문화칼럼] 탐욕은 민주화되지 않는다
관리자(2009-04-06 09:51:03)
[문화칼럼] 탐욕은 민주화되지 않는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모든 국민이 운동한다고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면 어떻게 될까? 모든 국민이 자가용을 타고 거리를 활보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이 6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살고자하면 어떻게 될까? 사치와 탐욕은 결코 민주화되지 않는다.
요즘 이명박정부를 보면 ‘거짓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 권력의 태생적 한계인지, 벌어지는 일마다 펼치는 정책마다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일관한다. 미국산 쇠고기협상과 용산참사에 대한 일관된 거짓변명, 최근의 청와대 이메일 사건관련 한승수 총리의 ‘제가 영어를 좀 합니다. 외국에서는 편지(공문)를 메일이라고 합니다’라는 궁색한 거짓말. 단순히 말로만 하는 거짓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노점상 할머니 목도리사건 같이 실제 정부의 정책과는 반대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거짓 정치.
뿐만 아니라, 원자력 등 위험한 에너지 정책과 4대강 정비사업 등 토목사업을 녹색성장사업이라며 녹색으로 덧칠하는 정책 등은 거짓 정책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어렵고 힘든 서민을 위하고,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말뿐인 거짓이고 실제 행동은 말과 반대다. 정부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S기업도 검찰떡값관련, 편법증여관련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고 법적으로 처벌받지만 않으면 떳떳하고 도덕적이라는 억지가 팽배해 있다. 옛날 김추자라는 가수가 불렀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저절로 연상되는 총체적 거짓현실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을 더욱 가슴 아프고 답답하게 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행 사건과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강요하는 비도덕, 시민단체간부의 횡령사건 등이다. 원래 보수정권과 자본가의 전매특허가 부패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가장 도덕적이고 표상이 되어야 할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보수정권을 닮아가고 있는 현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가장 도덕적이고 순수해야 할 시민사회단체에서 부패한 보수정권과 자본가들에게나 일어나던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에 발생하는 비도덕적인 행위들의 가장 큰 이유는 시민사회단체의 권력화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활동가들이 현장과 민중들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화시기에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모두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과 동고동락했으며,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권력과 자본에 대항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를 거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동안 대립만 하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 정부가 일정 정도 거버넌스를 형성하게 된다. 민관거버넌스는 시민단체 간부들이 권력과 직접 소통하며 나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사례가 여성단체 대표들과 노조 지도자들의 정치계 입문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시민사회단체에는 시민과 현장지향의 활동보다는 정부위원회와 상층중심의 협상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속된말로 예전처럼 박박 기지 않아도 나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어느 정도 시민사회단체 간부의 말발이 서던 분위기가 있었으며, 이러한 조건들이 시민사회단체가 권력화되는 토대가 되었다. 권력화와 관료화는 정부기관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단체도 부패와 타락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옛말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구르지 않는 돌에는 이끼가 끼게 마련인 것이다.
또한,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발생하는 비도덕적 행위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루어냈지만 진정한 내용적 민주주의, 삶의 민주주의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민주화의 한계가 또 다른 원인이라고 하겠다. 종종 노동조합 운동을 하거나 진보운동을 하는 분들 중에 평소 행동을 보면 ‘평등’이라는 개념을 자본가나 부유한 자들과 동등할 권리, 동등하게 생활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행복의 기준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부재와 잘못된 가치가 최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까지 외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자본가나 부자수준으로 평등하게 소비하고 생활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남성이 접대부를 끼고 룸살롱에서 양주잔을 기울이며 하루 밤에 몇백만 원을 쓰면 어떻게 될까? 모든 국민이 운동한다고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면 어떻게 될까? 모든 국민이 자가용을 타고 거리를 활보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이 6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살고자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이러한 생활과 소비가 평등일까? 그리고 민주화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물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 부자들의 가치와 생활을 닮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적절한 소비와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가치기준, 절제가 없다면 일반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도 금새 부패한 자본가와 부자들의 행태를 닮아 갈 수밖에 없다.
최근의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시민사회단체의 사건들을 보면서, 타락한 시대상과 좌표를 잃고 흔들리는 시민사회단체가 떠오른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무한한 절제와 수도승과 같은 도덕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재 우리시대의 경제적 수준에 맞는 적절한 소비와 지속가능한 지구를 고려한 절제된 생활, 모든 사람의 인격적인 삶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우리의 행동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지구를 수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사치를 누린다면, 모든 사람이 탐욕을 성취한다면 세상은 지속될 수 없다. 사치와 탐욕은 결코 민주화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