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9.3 |
[저널초점 │ 일제시대 건축물 문화재등록반대법안 논란] 일제 유산, 청산과 보존의 갈림길
관리자(2009-03-03 14:23:44)
일제 유산, 청산과 보존의 갈림길 지난 1월 22일 장세환 의원(민주, 전주 완산을)이 대표발의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일제시대 건축물에 대한 보호논란에 불이 당겨졌다. 특히 2월 10일 김좌진 장군의 딸이자 배우로서 유명한 김을동 의원(친박연대)이 대표발의하고 11명의 의원이 서명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은 일제시대 건축물을 국가지정문화재 또는 등록문화재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 오히려 장세환 의원의 안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있다. 작년 9월 서울시에서 신청사 건축을 위해 태평홀을 철거하면서 보존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지난 백년, 20세기의 역사는 현재의 우리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어떤 시대의 역사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근대건축물은 그러한 우리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문화재의 지위부터 보다 세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북도내에도 많은 근대건축물이 존재하고 있다. 이번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발맞춰 도내 일제시대 건축물의 현황과 그 관리, 보존실태를 점검해본다. 문화재보호를 위한 제도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제도로서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국가지정문화재와 각 시도에서 정하는 지정문화재, 그리고 2001년 7월부터 시행 된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ㆍ관리가 필요한 문화재를 등록문화재로 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지정제도는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하여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로,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구별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ㆍ보물ㆍ중요무형문화재ㆍ사적ㆍ명승ㆍ사적 및 명승ㆍ천연기념물 및 중요민속자료 등 8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문화재로 지정된 외곽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서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시설물, 건축물 등의 설치행위에 대하여 사전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은 후 시행해야 한다. 등록문화재는 근대건축물이 현재도 소유자 등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정문화재만큼 강한 규제를 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보완조치로서 근대건축물을 보존 및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재로 등록하는 제도이다. 즉,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외관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부를 일상생활에 맞게 개조하거나 수선이 가능하며, 이는 소유자 및 지역주민들이 당해 건축물의 역사적ㆍ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지역문화 및 관광산업과 연계, 활용토록 하는 제도로서 프랑스ㆍ영국 등에서는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제도이다. 또한 지방세(종합토지세, 재산세)를 50% 감면하여 그 보존을 돕고 있다. 전국적으로 모두 만여 개소가 넘는 문화재 중 전라북도 소재 문화재는 2009년 1월 31일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173개소가 지정되어 있고, 시도지정문화재로는 511개소가, 등록문화재로는 45개소가 지정되어 모두 729개소가 문화재로 지정 또는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수치스러운 역사는 우리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출입구가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누어져 있다. 입구에서부터 인종차별의 뼈아픈 기억을 방문객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북도내 등록문화재의 현황 전국적으로 422개소에 이르는 등록문화재 제1호는 서울시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국전력 사옥이다. 2001년 7월 시행된 이후 현재 전북도내에도 모두 45개소의 등록문화재가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군산시에 11개소, 익산시에 8개소, 정읍 7개소, 김제 6개소 등으로 등록문화재의 상당수가 일제수탈과 밀접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가 모두 일제시대 건축물은 아니나 상당수가 일제시대에 건축되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그 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일제시대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현황이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한옥마을이 위치한 전주 풍남동에만도 74채의 일본식 건물이 있을 뿐 아니라 전주시 전체적으로는 모두 465채의 일본식 건물이 남아 있다. 특히 김제, 익산, 군산지역에 위치한 일제시대 건축물은 상당수가 일제수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지금도 그 당시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현존하는 일본식 개인가옥의 경우에도 대다수가 일제시대 대지주들의 거주를 위해 호화롭게 건축되어 있어 우리 민중의 고혈을 통해 부를 축적했던 일본 자본주의수탈의 역사를 아직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탈의 증거물, 근대문화유산 - 군산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보면 최근 근대문화도시를 도시발전의 기본구상으로 채택하고 역점적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는 군산지역에는 모두 11곳의 일제시대 건축물이 국가지정 또는 등록문화재로서 관리되고 있다. 군산시 금광동 월명산에 위치한 ‘동국사(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는 일제시대 건축된 사찰 중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건축양식의 사찰이다. 지붕의 물매가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외벽에 미서기 창문이 많은 등 외관에서 일본식 건물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세트로 사용되면서 알려진 군산시 신흥동에 위치한 ‘구 히로쓰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은 군산지역에서 포목상으로 부를 축적한 일본인 히로쓰가 건축한 일식 가옥이다. 그는 대부분 지주로 구성되었던 당시 일본인들 중 상업으로 부를 이룬 인물이다. 군산시 개정면 소재의 ‘구 시마타니 금고(국가등록문화재 제182호)’는 군산지역의 대표적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에 의해 1920년대에 만들어진 금고용도의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과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 등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불법 수집했던 인물인데, 이 건물은 자신의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3층 콘크리트 건물에 입구에는 미국산 철제금고문이 달려 있어 한국전쟁 당시에는 우익인사들을 감금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등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구 조선은행(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를 비롯하여 ‘임피역사(국가등록문화재 제208호)’, ‘해망굴(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 ‘제1수원지 제방(국가등록문화재 제207호)’, ‘구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372호)’, ‘어청도등대(국가등록문화재 제378호)’, ‘구 군산세관 본관(지방기념물 제87호)’, ‘이영춘 가옥(전북유형문화재 제200호)’등이 군산 지역의 대표적인 일본식 건축물이다. 이밖에도 전북도내 곳곳에서 일제시대 건축물을 찾아볼 수 있는데 김제의 ‘구 백구금융조합’, ‘신풍동 아리따 설계가옥’, 익산의 ‘춘포역사’,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가옥’, 정읍의 ‘화호리 구 일본인 가옥’, 장수의 ‘장수경찰서 관사’등을 들 수 있다. 전북도내 45개소의 등록문화재는 지방세감면 외에는 별다른 혜택이 없어 그동안 사실 방치되다시피 해 왔다. 관리주체도 개인소유인 경우에는 소유자에게,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경우에도 출입금지만을 해 놓고 특별한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존과 청산 그 갈림길 위에서 민족정기와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일제시대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건축물에 대해서 문화재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두 개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장세환의원(민주, 전주 완산을)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문화재의 지위를 취소하되 역사적 보존자료로서 그 보존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을동의원(비례대표, 친박연대)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문화재 지위를 박탈하고 따라서 각종 보존을 위한 지원도 금지하도록 되어 있다. 김을동의원이 주요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구 서울시청 건물이다. 중앙청 철거 당시에도 철거논란이 있어왔던 건물인데다가 작년 9월 서울시 신청사 건립시 태평홀이 철거되면서 오세훈시장이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 건물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日’, 서울시청은 ‘本’의 형태로 건축되어 있어 일본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경복궁의 기운을 누르고 있다는 풍수적 논란까지 거듭되어 왔었다. 수많은 논란의 대부분은 친일이냐 반일이냐로 귀결되고 있다. 일제시대 건축물의 철거를 주장하는 측은 반일을 넘어서 극일(克日)을 이야기하고, 철거를 반대하는 측은 친일로 비춰지지 않을지 조심스럽다. 문제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치욕의 역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역사의 일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독일 베를린에 남아 있는 장벽과 유태인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형무소, 중국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화혁명 당시 목 잘린 불상들,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원폭돔, 킬링필드로 기억에 선명한 캄보디아에 남아있는 크메르루즈 지배시절의 감옥 등 수치스러운 역사는 우리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출입구가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누어져 있다. 입구에서부터 인종차별의 뼈아픈 기억을 방문객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지나간 과거야 선택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기억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을 위해서는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 최소한의 점검을 거치는 절차적 정당성이 요구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두 의원이 제출한 법안의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문화재의 개념부터 다시 정립하고, 일제시대를 비롯한 근대사를 보는 시각도 재정비되어야 한다. 21세기 문화다양성의 시대에 걸맞는 문화재보호법이 국민적 합의 속에서 도출되기를 기대해본다. 윤영래  편집장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