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 |
[저널기획 │ 대안학교를 가다®]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관리자(2009-03-03 14:18:15)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얘들아 너희 ‘끼’를 숨기지마!
푸른꿈고등학교를 찾아 가는 길은 오랜 겨울 가뭄에 바싹 말라 목이 타는 산길 속으로 이어졌다. 용담댐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무주군 지역은 제한급수를 하거나 배급제로 식수를 공급받는 지역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산과 숲이 울창한 이 지역이 이 정도라면 올 한해 농사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산천은 목이 타지만 끊이지 않고 마르지 않는 열정의 샘을 길어 올리는 곳, 푸른꿈고등학교. 일반 학교에서는 주체할 수 없었던 끼가 무주 산골에서 120개의 푸른 꿈으로 자라고 있는 곳, 무주 안성면의 푸른꿈고등학교다.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위치한 푸른꿈고등학교. 지난 99년 3월 개교하여 올해로 개교 10주년을 맞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하루 뒤로 다가온 졸업식 때문에 3학년들과 일부 저학년들이 학교에 나와 있기는 했지만 학교는 고요했다. 고요한 교정과는 별도로 학교 옆에서는 신학기를 맞아 학생들이 사용할 각종 공간들이 새로이 터를 잡고 마무리에 한창이어서 단지 잠자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이 폐교된 옛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첫눈에 들어오는 푸른꿈고등학교의 외양은 너무 왜소했다. 그러나 작은 본관 건물 뒤로는 그 보다 훨씬 큰 건물들이 기숙사와 식당, 도서관, 특별활동실 등을 이루고 자리 잡고 있었다. 뒷편에서 내려다본 교정은 아담한 뒷산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운동장이 좀 작은 것이 흠이라면 굳이 흠일 수 있겠다.
자급자족하는 생태순환시스템
설립단계에서부터 학교와 인연을 맺은 정기준 교감에게 어떤 계기로 학교가 세워졌는지를 물었다. “96년 10월에 서울에서 학교설립을 위한 발기모임을 가졌어요. 전ㆍ현직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모여서 수많은 세미나를 통해 학교설립의 방향과 목표를 공유했지요. 그렇게 고민 끝에 나온 개교이념이 ‘생태이념을 실천하는 실천가의 양성’이라는 것입니다.” 정 교감은 학교의 교육방향을 설명했다. 초기 모임부터 학교설립까지 2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 처음에 이 학교는 원래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단다. 무주로 내려온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 인근 마을에 살고 있던 허병섭 목사(전 녹색대 총장)가 이곳을 추천해서 학교건물 구입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마련한 이곳에서 현재 14명의 선생님(외부강사진 별도)과 120여명 학생들의 푸른 꿈이 계절과 관계없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교육이념을 듣게 되니 어떤 학생들이 오고 어떤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는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생활면접으로만 학생을 뽑았어요. 그런데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교육청의 지적에 지금은 중학교생활기록부(30%), 글쓰기(30%), 면접(40%)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정교감이 설명을 이어간다. “지금 들어오는 학생들은 소위 부적응학생들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이 확고한 친구들이죠. 물론 부모님의 권유로 오는 경우도 있지요.”
정 교감에게 푸름꿈만의 독특한 교과과정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했다. “저희 학교에는 3년 동안 정규교과과정으로 ‘생태농업’이 있습니다. 야외화장실에서 나온 분뇨를 퇴비로 쓰고, 아이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그것을 또 학생식당에서 소비를 하죠. 장류는 학생들이 직접 생산도 하구요. 쌀 같은 경우에는 주변 마을에서 구입하는데 오리농법으로 지은 쌀입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농법으로 농사짓던 분들이었는데 학교 개교 후 친환경농법으로 전환을 하셨어요. 이런 형태로 생태적 순환시스템을 갖춰 가고 있습니다.”
너희들의 끼, 숨기지마
생태농업을 중요시한다고는 하지만 이 학교가 농업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지금 새로 보수 중인 특별활동실 중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아치형문을 가진 영어교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실, 미술실, 도예실 등 다양한 교과활동공간을 통하여 아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학생동아리가 아이들이 자신만의 끼를 발산하는 촉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장 열성적이라는 밴드부에서부터 24시간 개방되고 있는 도예실에서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 내는 도예반은 오히려 흔한 동아리. N&P(Natural & People)라는 동아리는 학부모나 학생들이 쓰다 버린 물건을 재생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동아리다. D&C는 공예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여 목공예나 비즈공예를 하고 있는 공예반으로 수준이 꽤 높다는 정 교감의 귀뜸이다. 이 학교에서 주목할 만한 것 하나 더. 도서관과 특별활동실 옥상에는 태양광발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몇 년 전 산업자원부에서 실시한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설치한 이 발전시스템으로 낮 동안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구조가 부분적으로나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를 돌아보는 동안 과자봉지를 손에 들고 오는 남학생 세 명과 마주쳤다. 이후택(서울), 나종서(공주), 한윤상(안산)군. 2학년 동기간인 이들에게 푸른꿈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후택군은 “이모가 추천해서 왔어요. 사제관계가 돈독한 게 너무 좋아요”라며 모범답안을 얘기한다. 공부하는 것을 싫어해서 엄마가 끼를 발산하라고 보냈다는 나종서군은 “춤추는 것을 좋아해요. 동아리에서 춤을 춰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춤을 추고 싶어요”라며 끼를 살릴 수 있는 학교가 좋단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아이들이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 한윤상군은 “모두 좋은 애들이에요. 물론 가슴에 담고 말하지 않는 애들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우리 학교는 일체의 몸싸움이 금지되어 있기도 하구요.” 거침없이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넘쳐난다.
올해부터 교감을 맡은 정기준 교감은 교장, 교감이라는 직책도 처음에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외부에서 손님이 왔을 때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단다. 선생님들 사이에도 위계질서가 없이 서로 격의 없이 논의하고 토론하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푸른 꿈을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태계이건만 자연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욕심과 욕망을 가질 뿐. 크고 작은 산에 안겨있는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하며 그 생명의 순환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들어가는 교육, 바로 푸른꿈고등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이다.
윤영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