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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 |
아하! 거기, 전주에서 오롯이 찍은 영화 세 편
관리자(2009-03-03 14:17:11)
아하! 거기,  전주에서 오롯이 찍은 영화 세 편 영화 인프라 서울에서 온 영화인들은 전주시와 전주영상위의 행정처리와 교통통제, 소방장비 등을 지원하는 ‘원스톱 로케이션 서비스’를 칭찬(사실 당연시 하면서)한다. 촬영이 끝나고 서신동에서 1차를 하고 경원동에서 행해지는 싸고 건전한 2차에서 그들은 전주의 음식점과 술문화를 예찬한다. 홍도주막이나 전일슈퍼야 기업이지만 다른 가게들이 갖는 패밀리 비즈니스의 자기 착취적 성격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푸짐하고 맛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에 그들을 같은 장소를 데려가면 '아니, 거기 또?'라고 한다. 이 서울깍쟁이들은 무성의하게 조리된 음식이 아닌데도 새로운 그 무엇을 찾으신다. 새롭다 해도 또 '민속 티'가 나는 주점 또한 싫어하는 폼이 낙차 큰 커브를 좋아하는 변덕장이시다. 이런데도 전주가 영화촬영의 최고의 도시라는 것은 그동안 이 양반들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못할 것도 없다. 문학과 달라서 영화에는 일필휘지가 없다. 일필휘지를 느끼게 하는 것은 감독이 갖는 호흡의 리듬을 활용한 편집에 있을 터. 영화는 이미지의 집합체들이니까 말이다. 120분의 러닝타임 동안 캐릭터와 스토리가 이미지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 감독은 공간 헌팅에 노심초사하면서 영화작업이 시작된다. 로케이션 헌팅이 끝난 후 150여 개의 커트를 단 한 도시에 채우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바보스런 짓이기 때문에 감독들은 이곳과 저기를 취사선택해 그럴 듯하게 꾸밀 뿐이다. 당연히 감독들은 영화공간에 관해서만큼은 연애는 해도 결혼은 하지 않는 바람둥이다. 좀 꼬인 심성으로 말하자면, 전주는 영화를 찍기에 제법 도움이 되는 도시일 뿐이다.   뉴욕에는 관광객을 위한 <섹스 앤 더 시티>투어 팩키지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드라마 세트 관광이 초기 형태를 보이지만 이제 2단계로 지자체마다 스토리텔링으로 영화 속 공간을 관광화, 상업화 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전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주의 풍경을 '오롯이' 담은 영화는 그리 많지 않고(영화의 본질상) 솔직히 그저 몇 장면 스친 것을 가지고 짝사랑하는 모습이지만 어쩌겠나? 어쨌거나, 전주에는 전주라는 고정된 어떤 이미지가 있다. <용의 눈물>이나 <궁>이 촬영된 경기전 혹은 <약속>의 전동성당 같은 클래식한 공간 혹은 <단팥빵>이나 <사랑해 말순씨>처럼 엄마의 추억이 있는 '오래된 정원'의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오래된 추억을 찍은 <클래식>의 성심여고 강당은 헐리고 팬시한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데다 노송동도 꽤 많이 우려먹었으니 말이다. 전주를 다 담은 영화치고 거대한 플롯을 다룬 영화는 드물다. 거대자본으로 판이 벌려진 영화에서는 당연히 인간의 세밀한 감정들은 생략되고 또 희생된다. 장르영화가 주는 시각적 쾌감은 스크린 앞에서는 즐겁지만 그 쾌감은 분명 오래가지 못한다. 절절함은 휘발하고 이미지만 남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전주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영화 세 편을 둘러보자. 무늬만 전주인 영화는 빼고 속내까지 전주에서 찍었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고른 것인데 영화의 지향점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다면, 작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밀한 감정을 다룬 영화라는 것이다. <사랑해 말순씨>의 노송동 박흥식 감독의 <사랑해 말순씨 2005>는 청소년기의 소소한 묘사가 아름다운 성장담으로 그 누구도 이기적이지 않다. 박정희 유고시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한 소년에게 '행운의 편지'가 배달된다. 수취인불명 아닌 발신자불명의 어줍잖은 협박 말이다. 교복에 가방 들고 그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안 받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광호는 고민 끝에 교실 친구와 사랑스러운 옆방에 세 들어 사는 간호조무사 누나(윤진서)에게도 보내고 쥐 잡은 듯한 입술 화장에 실제로 부지깽이로 쥐를 잡는 엄마(문소리)에게도 보낸다. 아모레 태평양 초록색 가방을 들고 노송동 골목을 누비는 화장품 외판원 말순씨는 행운의 편지를 우습게 여기면서도 아픈 말순씨는 철없는 아들에게 밥하는 걸 가르쳐 준다. 마치 <팔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아빠에게 비디오 조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엄마는 허퉁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지만 눈물을 쥐어짜거나 가난을 극도로 과장되이 표현하는 영화는 아니다. 좌익과 우익들이 충돌하던 시대의 이야기는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오래된 고향을 풀숏으로 잡고 그 다음에 카메라가 집안을 비추는 것이 패턴이었다면, 이 영화는 바로 골목 아니면 집부터 시작한다. 노송동은 386 감독들에게 자신의 소년시절을 보낸 추억하는 공간으로 ‘말을 걸어주는 동네’겠지만 정작 이 동네를 지나노라면 가느다란 탄식이 나올 것이다. 어깨를 맞댄 골목길 안쪽에는 빨간색 고무다라이가 놓여있는 수도간과 빨래가 널리는 마당, 그리고 하얀 타일이 붙은 부엌 등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노송동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찾는 소년처럼 힘든 제트자 길을 뛸 정도는 아니다. 미장센을 담아내는 소품으로서의 이 공간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공간이긴 하지만 노송동 사람들은 가난과 '싸우'지는 않는다. ‘1979년의 서울, 완벽한 재현! 살아있는 거대한 박물관’이란 기사를 내보내는 촬영후일담의 속내는 이 동네 사람들을 섭섭하게 한다. ‘추억의 파노라마’라며 영화를 팔려는 것에 이 동네 주민들의 불편함은 생각지 못하는 것일까. <집으로>, <말아톤>,<웰컴 투 동막골>같은 휴먼드라마의 계보를 이을 말순씨를 관객들은 사랑하지 않았다. 황우석 사건과 겹쳐서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핑계도 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한 잔상이 남아서일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면서 학교에서 행해지는 폭력에 대한 부분은 스스로 넘버2를 자인한 격이다. 비운의 수작인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엄마 얼굴 예쁘네요>였는데 간판이 바뀐 의미는 '사랑해 ㅇㅇ씨' 자리에 자기 엄마 이름을 넣어보라는 의미는 아닐는지? <날아라 허동구>의 진북초등학교 지능지수가 60인 동구가 제일 잘하는 일은 노란색 물주전자를 들고 급우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11살 허동구(최우혁)는 학교가 제일 좋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시험 날은 학교에 나오지 마란다. 심한 것은 선생님께서 동구아빠에게 동구를 특수학교로 전학가기를 강요하는 것. 게다가 교실에 물주전자를 대신하는 정수기가 들어오고 나서 동구는 할 일이 없어진다. 엄마도 없는 동구에게 이럴 때 힘이 돼 주는 것은 아빠다. 통닭 배달하는 아빠 정진영의 간절한 목표는 물배달하는 아들이 무사히 학교만 졸업하는 것. 동구 아빠 역을 맡은 정진영은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부지런히 스쿠터를 타고 한옥 마을과 천변을 오갔다. 천변과 교동집을 달리는 스쿠터는 전주에 어울리는 작은 탈것이다. 이 발달장애 소년에게 야구가 학교살이의 붙드는 힘이 된다. 동구는 정수기가 없는 운동장의 주전자 멤버가 되는 것. 워낙 야구부에 들어오려는 학생이 없으니까. 그러나 야구는 ‘머리’가 필요한 운동인데 개념 없는 동구는 배트에 볼을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룰을 익히는 것조차 버겁다. 개념을 집어넣느라 고생하는 코치 권오중과의 대화는 영화 보는 내내 웃음을 연발하게 한다. 엄벙한 감독이지만 기다릴 줄 아는 코치와 ‘오케바리’를 외치는 장면은 너무나 느린 직구이다. 진북초등학교의 비밀병기 허동구는 승리를 위한 최고의 미션을 준비하는데…. <날아라 허동구>는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인정하려는 태도를 갖는다. 좀 기다려 주라는 인간극장류의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다고 <아이 엠 샘>이나 <말아톤>처럼 눈물샘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친구를 위해 밤새 공책에 숙제를 해온 나마자데 못지않게 심장이 약한 친구를 위해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도는 허동구는 우리를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 또한 마지막 장면 한 번의 번트로 인해서 허동구가 정상 아이로 돌아오는 식의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자식이 공부 안 해서 열 받는 부모들 꼭 웬수와 함께 보시라. <좋지 아니한家>의 전주천 기타노 타케시가 그랬다.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가족 말이다. 이 좋지 아니한 가족의 대빵인 아빠 심선생(천호진)은 학생들에게 인기 없는 교사로 한 방 쥐어박으려면 아이들은 핸드폰을 치켜든다. 이 고개 숙인 남편은 무감하고(미세한 연기력으로), 딸네미가 드나드는 노래방 총각을 사모한 나머지 꽃무늬 원피스를 사고 커피자판기를 사들이는 욕쟁이 엄마의 아들은 원조교제를 일삼는 여학생을 사랑한다. 여기 얹혀사는 무협작가가 꿈인 이모 김혜수는 털털하기 이를 데 없고 아들놈은 잔머리쟁이다. 이 심스패밀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한 마디로 '각패'다. 고스톱에 각패가 나쁜가? 천만에, 이 칠칠맞은 각패들을 한데로 이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전주천이다. 각패로 플롯을 잇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으로 때워가며 풍경이 이를 뒷받침 하지만 사실 전주천은 한강이 아니다. 한강의 열주는 거대하고 아름답지만 전주천 다리 아래는 아줌마들이 활기차게 워킹을 하고 노인들은 십원짜리 고스톱을 한다. <간 큰 가족>, <울어도 좋습니까?>같은 작고 따뜻한 영화와 드라마 <단팥빵>이 이곳에서 촬영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 무심히 흘러가는 물길은 깊지 않아 가족 모두를 모두 감싼다. 이곳 어은골 쌍다리의 여름날, 솜털 같은 갈대 모가지가 나오는 즈음 이 각패 가족들을 위해 둥근 보름달이 솟아오른다. 좋지 아니한가? 원조교제 논란을 빚는 아빠를 가족들은 갖다 버리고 싶지만 아빠는 돈을 벌어오는 존재니 그럴 수도 없다. 퇴직하려는 남편에게 아내는 퇴직만은 안 된다고 말하는 곳이 이곳 전주천이고 원조교제하는 여학생을 사랑하는 아들놈이 쓰레기 더미에 분풀이를 하는 곳 역시 쌍다리다. 키치 같고 때론 현란한 짬뽕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민속 티를 내지는 않는다. 아! 딸네미가 좋아하는 비정규직 교사 박해일이 사람이 보지 못하는 달의 뒷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은 새겨들을 만하고 터진 밥솥을 허리띠에 묶어서 쓰는 것이 가족일 것이라는 메시지만은 확실하다. 좋다. 가족관계에서 감추고 싶은 부분을 열어 제끼는 플롯이지만, 작다. 플롯이 작으면 스토리나 캐릭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누구 한 사람 한 사건에 올인하지 않고 적당히 가는데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이 스토리와 캐릭터의 빈곳을 채운다.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김혜수가 산만하긴 하지만 괜찮은 배우들이 연기한 인물들은 청승맞거나 희생하지도 않는다. 생각 없이 예쁜 애들만 나오는 시트콤이 아니라 의미있는 작품이란 말씀. <가족의 탄생>이 수작 판타지라면 이 영화는 판타지 없는 수작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영화 <좋지 아니한家>는 1주일 만에 교차상영(하루에 1, 2회만 상영하면서 스크린쿼터 하루를 채운 척하는 불법 행위)하면서 일찍 극장에서 내려진 영화다. 그러나, "<말아톤>감독 정윤철의 영화는?", "백만 불짜리 영화다" 서울 영화쟁이들 사실 각기 다른 주제의 개별성으로서의 영화를 전주라는 장소의 보편성으로 묶어 보았다. 공교롭게도 세 집 모두 작은 툇마루가 붙은 집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안타까운 공통점은 더 있다. 착한데 머리 나쁜 허동구는 박스오피스 선두로 날지 못했고 화장품 외판원 말순씬 사랑받지 못했다. 또한 좋지 아니한 이 집은 평가가 극도로 엇갈리고 말았다. 세 영화 모두 명품은 아니지만 삼류 또한 절대 아니다. 모두 다 밥이 익기까지는 좀 기다려 달라는 영화들이었는데 말이다.   대상과 그림사이에는 공기가 있다. 그런데 세트에는 그런 햇빛과 공기가 없다. 밥을 짓고 빨래를 너는 노송동의 골목과 서민들과 친근한 전주천에는 우리 세대가 살아온 기억과 시간의 반추를 다루는 부드러운 공기가 스며있다. 여기 소개한 세 편의 영화는 사실 인물보다는 오래된 시간과 공간이 주는 그 햇빛과 공기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들이다. 이 주인공들을 엮는 가족이라는 동어반복의 촌스러움이 켤코 보는 이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드리 햅번이 로마를 빛냈고 로버트 드니로의 <택시드라이버>는 뉴욕을 제대로 보여주었지만 오롯이 전주를 담아서 전주를 빛낸 영화는 '아직은' 드물다. 그저 착한 도시의 착한 영화로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열등감을 자극한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브래드 피트나 주윤발이 나타날 도시가 아니고 더더구나 <섹스 앤 더 시티>는 아니지 않는가. 밥이 익기까지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일 것이다. 디지털로 일컬어지는 21세기를 전주에서 산다는 것이 영광은 못 돼도 썩 괜찮은 일이지 싶다. 선택의 자유는 어차피 영화를 찍는 그분들 몫이다. 전주라는 상품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것도 그렇다. 영리한 저들은 한옥마을을 더 이상 스크린에 담지 않는다. 공사 중이거나 인원통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세트장화 하고 있다는 것을 서울 변덕쟁이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달라지는 한옥마을의 공기는 옛 맛을 잃고 눈썹을 밀고 입술을 칠하는 말순씨 같은 느낌이다. '지금' 새로 단장한 '이곳'에서 영화를 찍을 바보는 없다. 디지털일수록 돈가스보다는 청국장이고 샤워부스보다는 말순씨네 수돗간의 고무다라이가 그리운 것은 그분들이나 우리나 다 마찬가지다. 어차피 이미 극장 개봉이 끝난 영화니만큼 DVD나 비디오 혹은 다운을 받아서 영화를 보실 때, 엔딩크레딧에서 '장소 협찬'을 먼저 살피시라. 리와인드해서 플레이 버튼을 누른 다음에는 '월리를 찾아라'처럼 그 공간 공간을 찾아보시길.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공간을 새겨두었다가 아! 거기구나 하며 노송동과 전주천을 한 번 걸어보시라. 소녀시대와 빅뱅, 그리고 <꽃보다 남자>도 하루 이틀이지, 질리지 않는가 말이다.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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