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9.3 |
[환경 │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앵두나무 한 그루와 함께 하는 일년
관리자(2009-03-03 14:13:07)
앵두나무 한 그루와  함께 하는 일년 봄 햇살을 받으며 앵두나무 가지치기를 했다. 우리 집 앵두나무는 열매를 보면 앵두인데, 나무 생김새는 산벚나무처럼 가지가 길게 쭉 뻗는 나무다. 그래서 한번 심어 몇 년 지나 나무가 나이를 먹으면 마치 느티나무처럼 쭉쭉 자란다. 따먹으려면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곳은 좀 쳐내는 게 좋다. 또 나무뿌리에서 새 줄기가 올라오니 그것도 정리해 주어야 한다. 나무에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나무 전체를 보면서 어떻게 쳐내야 할지를 살펴보고, 가까이 다가가 원가지에서 곁가지까지 살핀다. 그렇게 나무 가까이 멀리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가지를 치며 나무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가지를 쳐내려니 이 앵두나무에 얽힌 여러 가지 사연이 떠오른다. 우리 앵두나무는 98년 봄 산청에서 이리로 올 때 얻어온 앵두나무다. 울도 담도 없는 우리 집에 이 앵두나무는 대문 노릇을 하며 길가 모퉁이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그 품이 넉넉할 뿐 아니라, 우리 집 과일나무 가운데 가장 열매를 일찍 맺는 나무다. 겨울을 나고 봄이 왔다 지나가도록 자연에는 과일이 없다. 오월 말 밭딸기가 하나둘 붉어갈 무렵 앵두도 따라서 붉어진다. 그때가 한창 모내기 철. 논에 맨발로 들어가 허리 숙여 모내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앵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 가운데 익은 걸 찾아 따먹을 때, 그 맛이란... 기다리고 기다리던 님을 본 듯 눈부시다. 그 앵두가 지난해에는 풍성하게 달렸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달라붙어 따먹고, 지나가던 어른들도 손 뻗어 몇 알 맛보고, 그러고도 남아 이 앵두를 따서 자연식초도 담그고, 또 속살만 걸러서 병조림도 만들어 두었다. 나무 한 그루가 여럿에게 그 열매를 나눠주고, 그리고도 자연식초로 우리 집 일 년 양념이 되고, 앵두 병조림은 겨울에 상큼한 게 그리울 때 드레싱으로 먹고 있다. 과일나무 한 그루가 주는 풍성함이 놀랍다. 우리가 이렇게 앵두를 잘 따먹었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십년.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했던가. 아니 지금도 내 딴에는 잘한다고 가지치기를 하는데 그게  나무를 괴롭히는 짓일 수도 있으리라. 해마다 봄이 오면 어린 나무를 심었지만, 나무를 심는다고 과일이 다 달리는 것도 아니고 과일이 달린다고 사람이 다 따먹는 것도 아니었다. 텃밭을 가꾸어 본 분은 알겠지만 콩 한 포기, 배추 한 포기 기르는 일도 쉽지 않다. 하물며 한번 심으면 그 자리에서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자라야 하는 나무인 데야……. 또 지금 시장에서 파는 과일나무 묘목은 열매를 얻기 위해 개량에 개량을 더해 나무의 자생력에 견주어 열매가 이상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량묘목은 전문 돌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애들 키우는 일과 견줄 수 있다. 어른들 말씀이 전에는 밥만 먹여주면 저 알아서 자랐다지만 요즘 애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집 장가가고 나서까지 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전문 농사꾼이 아닌 사람이 과일나무 묘목을 심어가지고 그 열매를 따먹는 게 결코 쉽지 않더라.   새로 시작하는 연재 글머리에 앵두나무 이야기 그러니까 십년 농사 끝에 가장 잘 한 걸 이야기했다. 무엇이건 십년을 꾸준히 하면 희망이 보인다는 걸,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게  보잘 것 없을지 몰라도 앞으로 십년을 내다보며 함께 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우리 식구는 96년 서울을 떠나 산청 간디공동체로 내려왔다가 98년 봄 무주로 옮겨와 농사짓고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십년. 우리 식구들은 낯선 땅에 뿌리내려야 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가장 힘든 건 사회와 따로 노는 기분이랄까. 같은 지역에 사는 분들한테 무슨 농사를 지어 얼마를 벌라는 충고를 들을 때, 텔레비전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를 볼 때, 골프장이든 뭐든 자꾸 세우려고 노력하는 걸 볼 때, 좋은 대학에 가려면 자식을 이렇게 관리하라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가 잘못인지 이 사회가 잘못인지!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자급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되도록 자연스레 살고자 하는데 이 세상은 영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우리 역시 사람이라 이러저런 곁길로 빠진 적도 있지만, 지난 십년 꾸준히 걸어온 길을 그래서 내세울 만 한 걸 하나 꼽는다면 ‘자급자족’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먹고사는데 필요한 거라면, 논밭 그리고 산에서 나는 거라면 하나하나부터 손수 해 보자.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 한 가지 농사를 크게 벌이지 않고 우리 식구가 먹을 거는 골고루 심어 가꾸는데 목표를 두었다. 돈을 벌어 쓰는 소비가 아닌 생산에 힘을 쏟았고, 그런 흐름에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며 살고 있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많은 이들이 자기 삶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빚내서라도 재테크를 하는 게 자랑이던 얼마 전과 달리 쓸데없는 욕구를 털어내고 진정 살아가는데 필요한 게 무언가를 생각한다. 잠시만 헤아려도 이런 추세대로 소비해 댄다면 지구가 견뎌내지 못하리라는 건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자급에 관심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식량 자급을 위한 로컬푸드운동, 학교급식에 지역농산물 공급운동, 도시텃밭 가꾸기……. 에너지 자급으로 자전거 타기, 햇빛 에너지, 산림 간벌제 활용, 축산분뇨로 매탄가스를 생산하려는 시도……. 여기에 지역통화, 의료협동조합.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지역순환사회 운동. 이런 움직임은 아직 부싯돌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꽃같다. 이 작은 불꽃에 우리가 부싯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급이란 자기한테 필요한 걸 자기 스스로 마련하는 일이고, 자족이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만족하는 일이다. 자급자족 이야기가 앞으로 글로는 어찌 풀려나갈지 모르겠지만, 이 작은 불씨가 피어나 개인과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나라와 지구 차원의 자급자족 운동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십년 실패를 거듭하면서 과일나무를 기르는 지혜가 조금씩 쌓이는가 보다. 아직도 어설프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지난해는 앵두에서 시작해 오디, 복숭아, 밤과 대추, 그리고 배에 이르기까지 제법 과일을 따먹을 수 있었다.   자기 몸 움직여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먹을거리 하나를 봐도 저거 먹으면 어디에 좋은지,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값이 얼마인지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 그걸 얻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한창 열심일 때는 소금 빼고는 다 손수 해 먹어보자는 과격한 목표를 가지기도 했고, 뭐가 먹고 싶으면 씨부터 구해서 심어 기르는 귀농의 정석을 실천해 보기도 했다. 한동안 손모내고 가을이면 낫으로 베고 홀태로 털어 나무절구에 방아를 찧어 먹기도 했으니 뭘 더 말하겠는가. 얼마전 그때 사진이 나와 보았다. 낡은 옷에 부스스하고 꾀죄죄한 몰골인데 얼굴 표정은 얼마나 진지한지. 정말 내가 저리 살았나 싶다. 그래도 아이들이 그런 부모를 떠나지 않고 지금껏 함께 살아주었고 아이들이 날로날로 자라면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을 떠난 큰애는 벌써 이십대 아가씨. 이 한창 나이 아가씨는 날마다 하루 한 끼 식구들 밥 당번에, 자기 방에 군불지피고 땔감하고, 자기 몫의 일도 하며 아직까지 우리랑 함께 살아준다. 이런 아이들 덕에 먹을거리에 이어 우리는 교육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거기에 집도 되도록 손수 짓고 관리하려고 하고, 산에서 땔감해서 불 피고, 낫에라도 베이면 쑥뜸 떠서 치료하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