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 |
느리게 걷기
관리자(2009-03-03 14:10:50)
느리게 걷기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0만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관객들의 안목과 입소문이 상영관 수를 늘려가면서 새로운 흥행 기록을 써가고 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성공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워낭소리>는 ‘독립영화인데다’ 다큐멘터리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흥행과 거리가 먼 요소들이다. 4~50대를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점이 독립영화인 <워낭소리>가 성공하고 있는 지점이다. 농촌을 고향으로 둔 4~50대는 이 영화에서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관객이 줄을 서는 진정한 요인은 작품의 완성도이다. <워낭소리>에는 아름답고 한국적인 영상과 섬세한 소리가 있다. 웃음과 감동이 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응시가 있다. 그것이 얼마간 편집된 결과물이라고 해도 감독의 집요함이 빚어낸 진경산수의 풍경이 있다.
<워낭소리>의 흥행돌풍 뒷면에 걸출한 제작자가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할 대목이다.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PD는 독립 다큐멘터리의 신화로 남은 <우리학교>의 제작과 배급 경험을 살려 독립영화다운 마케팅과 공동체 상영 방식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한국영화가 침체기여서 극장에 걸리는 볼만한 장편 상업영화가 적었다는 배급 시기의 이점도 작용했다.
<워낭소리>는 무엇보다 ‘느리게 걷기’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참 느리다. 감독은 6개월 안에 숨질 소를 수소문했다는데 그 소가 3년을 넘게 살았다. 제작기간도 3년이 넘어갔다. 이 영화가 얼마나 느리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첫 장면에서 가파른 계단을 “아파. 아파”하면서 걸어 올라가는 노부부의 모습에서부터 이 영화가 느리게 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어릴 때 침을 잘못 맞아 오그라든 할아버지의 앙상한 왼쪽다리로는 애당초 빠른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40년을 살아 온, 엉치뼈가 가죽위로 불룩 솟은 늙은 소도 빠르게 걸을 수가 없다. 그래도 늙은 소가 끄는 달구지에 올라앉으면 할아버지는 못 갈 곳이 없다. 이들은 천천히 지난 40년 동안 그래왔듯이 논이며 밭이며 시내며 느릿느릿 자기들의 발걸음을 옮긴다.
카메라도 그들의 발길을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한쪽에서는 편리함을 위해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을 때 이들은 느려도 불편하지 않다고 웅변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소와 함께 써레질을 하고 밭고랑을 가는 곁에서는 이앙기가 순식간에 모를 심고 농약을 친다.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빨리빨리’를 외치며 산다.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도 속이 터지고, 차가 조금만 막혀도 답답해한다. <워낭소리>는 이런 속도전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80년 산 할아버지와 40년 산 소가 쌓아온 관계. 잘 익은 장맛이나 겨우내 묵은 김치 맛 같은 속 깊은 그런 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농약 치면 소가 죽는다며 끝내 할머니의 지청구를 외면하는 할아버지는 소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낸다. 소를 팔자는 자식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나선 우시장에서도 할아버지는 끝끝내 ‘오백만원’을 부른다. 아니 아마도 ‘오억’쯤 부르고 싶었으리라. 그것은 늙은 소에 대한 소박한 애정표현이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에게 늙은 소는 죽기 직전에 나뭇짐을 하나 가득 해 놓고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쉰다.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가슴속 깊이 울리는 워낭소리는 우리에게 진정한 관계와 애정에 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니 역시나 돈 얘기가 언론을 장식하고 촬영지였던 지자체에서는 테마파크를 만드느니 하며 부산을 떨고 있다. 차라리 소가 묻힌 곳에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을 담은 소박한 표석하나 세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워낭소리>가 일회성 신드롬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막장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점령한 요즘 같은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제2, 제3의 <워낭소리>가 꾸준히 만들어져 극장에 걸리기를 바란다.
김병직 전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