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 |
[문화현장 │ 대보름제] 우리, 대보름달 아래 어우러지다
관리자(2009-03-03 14:10:22)
우리, 대보름달 아래 어우러지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전북지역에서 다양한 대보름축제가 열렸다. 전통적인 대보름 행사를 체험하기가 어려운 요즘, 대보름축제는 유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전통문화를 함께 나누기에 좋은 자리다. 지난 2월 7일에 열린 익산 대보름제와 임실 필봉 대보름축제를 다녀왔다. 최근 '사리장엄'의 출토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익산의 미륵사지. 그리고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인 필봉굿으로 유명한 임실 필봉. 그곳에서 펼쳐진 푸진 풍물굿 한마당에서 관객은 비로소 신명으로 하나가 되었다.
체험으로 문화나누기, 문화로 벽 허물기
7일 오후,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익산의 10개 시민단체가 주관한 익산 대보름 축제가 열렸다. 평소 한산하던 주차장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차량으로 만원을 이루었다. 행사장 곳곳에는 단체줄넘기, 귀밝이술 마시기, 떡메치기, 부럼깨기, 새끼꼬기, 투호던지기, 전부치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열렸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새끼를 꼬아 달걀 꾸러미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함께 연을 날렸다.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듣게 된다는 귀밝이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30여 명이 넘는 긴 줄을 서야만 했다. 떡메치기 부스에서는 건장한 외국인이 떡메를 치면서 자꾸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모인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바람은 공중에 놓인 줄을 휘돌아 나가고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풍물패는 한바탕 신명나는 무대 공연을 마친 후, 모인 군중들 사이로 행진하면서 익산시민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태권도 체육관에서 마련한 태권도 시범공연은 어린 학생들의 멋진 시범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백미는 남사당패의 '줄타기 공연'이었다. 줄타기는 '줄어름타기'라고도 불리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이다. 물론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이제는 친숙한 부분도 있지만, 실제 줄타기 공연은 전북권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날 남사당패의 공연은 풍물공연, 버나공연(접시돌리기), 줄타기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사뿐사뿐 줄 위를 걸어 다니다 못해, 뛰고 날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어름산이(줄타는 사람)의 멋진 공연과 매호씨(줄타는 사람과 재담을 주고 받는 어릿광대)의 맛깔 나는 입담은 이 날 공연을 지켜본 수많은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익산 대보름제, 그 새로운 시작
이번 축제를 준비한 황인철 익산참여자치연대 시민사업국장은 "지금까지의 대보름 축제는 영등동 시민공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올해부터는 이곳 미륵사지에서 펼쳐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륵사지로 장소를 옮긴 이유에 대해 황인철 국장은 "미륵사지에서 사리장엄이 출토된 것을 기념하고 미륵사지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조명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미륵사지로 터를 옮긴 익산 대보름 축제가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지 기대할만 하다. 물론 내년 축제에서는 사리장엄의 '장엄'한 모습도 이곳에서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임실 필봉, 그 새로운 세계로부터의 울림
이 날, 전북 임실군의 필봉마을에서도 묵은 액을 털어내고 새해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필봉 정월대보름 굿' 행사가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제11-마호)인 필봉농악보존회의 주관으로 열렸다. 전국 각지의 풍물동호인과 마을주민 관광객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는 기굿,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 판굿, 달집태우기의 순서로 이루어졌으며, 호남좌도농악을 대표하는 필봉굿의 묘미를 잘 드러낸 행사로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관광객들이 스스로 굿판에 뛰어들어 공연자와 함께 어울려 참여하는 모습은 주로 관람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여타의 공연진행과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흡사 고대의 제천의식을 방불케 하는 필봉굿의 이색적이고 흥겨운 모습에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필봉농악보존회에서는 이번 행사를 맞아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여 흥겨운 한마당 잔치에 모인 손님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우리, 대보름달 아래 어우러지다
판굿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필봉굿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또 올해 어떤 소망들을 가지고 있을까?
남원의 '소리울림' 동아리 멤버인 박현희(37)씨는 필봉굿의 매력으로 다른 굿에 비해 "푸진 굿"이라 말했다. 남녀노소가 무대 안에서 어울려 놀 수 있는 것도 필봉굿의 매력이 아닐까 덧붙였다.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즐긴 전주에서 온 이승희(13)양은 생소한 문화에 대한 즐거움과 함께 도시에서 전통공연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을 함께 표현했다. 서울 북부 시민회 풍물굿패에서 온 신명덕(38)씨는 필봉굿의 매력을 "막걸리 같은 전통의 맛"이라 설명했다. 또한 필봉굿의 명인이었던 故양순용 선생님과의 다양한 일화를 전하며 늘 선생님께서 "그 말이 말이냐? 막걸리냐?"라는 말씀을 하셨더라는 말로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이날 대포수로 활약한 최상길(50)씨는 "공연이 무척이나 힘들지만, 이렇게 함께 신명을 즐겨주시는 관객들 덕분에 큰 힘이 난다"고 먼 길을 찾아와준 많은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나라가 어려운 탓일까? 올해 소망을 이야기 하는 모두의 말 속에는 경제에 대한 걱정과 상심이 묻어났다.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남의 안부를 먼저 걱정하고, '나'가 아닌 우리의 어우러짐을 말하고자 했다. 함께 신명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달집을 태우는 동안 모인 사람들은 또 한 해 소망을 빌었다. 춤사위를 나누고 흥겨운 가락 속에 또 지난 한 해를 흘려보내고 새로운 한 해가 희망으로 다가오길 기원하고 있었다. 서로 마주보며 웃고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 하나. 너와 나, 우리와 너희가 이 모습처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희망이 아니겠는가, 그것.
전승훈 마당 기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