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 |
[저널초점 │ 대안학교를 가다] 김제 지평선 중학교
관리자(2009-02-06 12:08:33)
[저널초점 │ 대안학교를 가다 €] 김제 지평선 중학교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겨울답지 않게 따스한 햇살이 반짝거리던 날 오후 김제 지평선 중학교를 찾았다. 폐교였던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아담한 크기의 본관건물과 새로이 들어선 황토기숙사와 특별활동건물들이 소박하게 들어선 작은 학교에는 여전히 이순신장군이 큰칼 움켜쥐고 운동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옛 초등학교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기린이며 호랑이며 각종 동물상들도 여전해 이곳이 초등학교였음을 방문자들이 깨닫게 한다. 대안학교(교육부에서는 특성화학교라고 한다)로 뿐만 아니라 작년 말 일제고사에 학생들의 자율활동을 허락해서 신문지상을 달궜던 지평선학교는 겨울방학을 맞아 깊게 잠들어 있다. 이곳에서 새교육을 지향하는 선생님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절로 일어난다.
자발성이 최고의 기준
지평선중학교의 학생선발기준은 독특하다. 1박2일간 캠프형태로 진행되는 학부모와 동반하는 활동을 통하여 학부모는 구술면접을, 학생들은 단체활동을 통하여 선발한다. 학교의 교육이념을 이해하고 학생들의 자발성을 키우는데 동의하는 학부모와 그 자녀만을 학생으로 선발하는 것. 자발성을 강조하다보니 학생들 머리모양도 제각각이다. 댕기머리를 땋고 다녔던 남학생이 둘이나 있었고, 여느 학교에서 볼 수 있는 교복도 없다. 전원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교라 교복이 자연스러울 거란 생각이 여지없이 깨진다. 최근에 지어진 남학생기숙사는 정기용선생이 설계를 맡아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독특한 외관과 내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벽지 없이 황토로 마감을 해서 흙집에 들어온 것만 같은 분위기. 남자중학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황토흙벽에 흠집하나 찾아보기가 힘들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데 익숙한 아이들이다보니 자기 집에 흠집내는 일도 하지 않는다는 박병구 교무부장 선생님의 설명이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이다 보니 기숙사내부에서 문제가 생길 듯 한데 “1학년들은 초등학생적 사고와 행동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학년이 올라가면 생각과 포용력도 같이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전체모임을 갖습니다. 같이 토론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라며 박선생님이 지평선중학교만의 문제해결방법을 일러준다.
마음바라보기
교무실 칠판에 걸려 있는 수업시간표에서도 이 학교만의 독특한 교육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눈길을 끈 것은 ‘마공’과 ‘태격’. 마공이라니 무슨 무협지 속 악인들이 연마하는 무술이름인가 하는데 “마음공부의 줄임말이에요. 원불교 교립학교인 저희 학교에서는 원불교 교리를 가르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마음을 수양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박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내 마음을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나니 자발성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권도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태격은 방과후활동으로 인근 학성강당 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다. 김제지평선축제에서 선보인 적이 있는 태격은 부드러움과 강함을 고루 갖추고 있어 심신수양에 제격인 무예다. 학성강당에서는 일반 학교와는 다르게 한문이 아닌 ‘국학’이라는 이름하에 사자소학 또는 명심보감 등을 통하여 학생들이 기계적으로 한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리를 깨우치는데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1학년 과정에만 있는 예절시간도 독특하다. 다도, 펜글씨 등을 통하여 사람사는 예절을 배우는 이시간도 결국은 마음공부의 연장인 것. 국학시간에 배운 것을 마음공부와 예절시간을 통하여 되새겨 마음을 다스리고 태격을 통해 몸을 다스리는 아이들. 몸과 마음이 하나인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 현장이다.
모둠에서 토론하고 결정
이 학교에서는 매년 삼월 첫째 주에 신입생이 입학하고 나면 하루 산행을 한다.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될 신입생들과 고학년들이 자연스럽게 산행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 유월에는 격년으로 지리산과 설악산을 정해 4박5일 동안 종주코스를 밟는다. 선생님들은 산행에서 벌어 질 수 있는 안전사고에 관한 것만 신경 쓸 뿐 다른 모든 일은 각 모둠별로 3학년이 리더가 되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고. 모둠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선후배들이 모둠에 자연스레 섞여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자발성과 협동심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과정이다. 학생들 서로간의 관계형성에 두 번의 산행이 큰 역할을 한다고 박 선생님이 귀뜸한다. 기숙사에도 사생장을 중심으로 자율성이 최대한 부여되어 학생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이 학생들 휴식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이렇듯 이 학교의 모든 과정은 자발성에 맞춰져 있다. 학생 스스로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과 다르다는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배우는 것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2003년 3월에 각 학년 당 한 학급으로 출발한 학교가 지금은 학년 당 2개 학급 총 정원 120명으로 커졌다. 현재는 열 세 명의 선생님들과 백 열여덟 명의 학생들이 같이 부대끼고 호흡하는 지평선중학교. 방학이라 식당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학교 뒤편에서는 자발적으로 나선 미술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해 방학에도 땀 흘리는 선생님들,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어내지 않고 옮기지도 않고 살려내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 바로 지평선중학교가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 아닐까. 원불교 교립학교이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평등하게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교육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일제고사거부라는 세간의 이목으로 이 학교를 바라본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정경진/ 군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군산에 살며 지역 내 문화운동에 관심이 많은 그는 소설가이자 문화기획 ‘판’ 대표를 맡고 있고, 문화동아리 ‘아리랑’ 사무국장도 겸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경진 소설가>